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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남한만 있고 북한은 없다"


입력 2008.12.11 10:43 수정        

<인터뷰①>´한국 연구 20년, 한국 생활 10년´ 란코프 교수

"남한 주류사회, 북한 무관심…무조건 포용도, 배격도 지양해야"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매력적인 나라"라고 말했다.

“남한은 북한 문제에 대해 자국내 문제인 양 다룹니다. 남한 헌법에 북한은 ‘영토’라고 되어 있으니 그렇겠지만, 남북관계를 올바르게 풀려면 남과 북의 차이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라 접근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우파학자”라 칭하고 “대북정책의 방향성은 수정돼야 한다”고 쓴 소리를 하는 외국인 학자. 러시아 출신의 북한학자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45)는 ‘보수의 박노자’로 불린다.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에 대해 그의 언변은 거침없고 명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자유로움’에서 기인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오랜 시간 한반도, 특히 북한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로서, 그리고 남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애정을 갖고 있는 생활인으로서 느낀 감정에 가까워 보였다.

란코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다른 매체와 인터뷰 중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 이후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에 대한 언론의 러브콜이 잇따랐기 때문.

“최근 더 바빠졌다”고 차를 건네고서야 란코프 교수는 한숨 돌리는 기색이었다. 쉬는 날에도 연구실에 나온다는 그는 ‘성실한’ 학자로 보였다. 연구실 책장에는 빈틈없이 손때 묻은 책들이 빼곡했고, 벽에는 북한 전도가 걸려 있었다. 란코프 교수는 언론매체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면서도 북한 관련 토론회에도 꾸준히 발표자로 참석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특권’을 통해,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경험한 경험을 통해 남한 사회에 보다 많은 정보를 주고 싶어서다.

란코프 교수는 지한을 넘어 친한의 감정을 갖고 있는듯 했다. 그는 “한국은 재미있고 매력적인 곳”이라며 “어떤 점이 좋은지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재밌는 국가”라고 말했다. 슬쩍 미소 짓는 그에게서는 한국화된 외국인의 인상이 풍겼다.

그러나 란코프 교수는 이방인의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남한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정치권은 남북문제를 정치적인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고 국민들은 북한을 ‘존재하지 않는 국가’인 양 외면하려 한다”며 “그러나 북한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문제의 해법이 보인다”고 비판했다.

란코프 교수는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경’(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본다. 북한을 객관적 협상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국내 정치로 다루려다 보니 남북관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전쟁과 분단을 거쳐 앙금이 남은 상황에서 민족주의 또는 대결주의와 같은 다소 감정적인 정책을 펴다보니 합리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에 남한은 있지만 북한은 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남북한의 통일로 이어질진 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합’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2, 3의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의 교류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향적으로는 햇볕정책이 맞지만 조건없는 식량지원보다 북한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술, 교육 등을 전수하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법들이 모색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김정일 독재 체제는 수명을 연장할 것이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은 길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철창이 쳐진’ 제한적 개방일지라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하며, 이를 통해 남한의 정보들이 ‘입소문’을 타고 북한 사회 내 유입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정권이나 정책보다 사회의 변화가 더욱 깊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남한의 발전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면 이는 북한 주민들의 ‘의지’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킨다는 것.

란코프 교수는 무엇보다 남북통일 이후 겪을 사회문화적 갈등과 혼란을 줄이려면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대안 엘리트를 양성해 이질화를 줄이는 한편, 북한 주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에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고등학교 때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에 들어가 중국 역사를 전공했다. 당시 동아시아 문화권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지도 교수님이 ‘한국 역사를 배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해주었다.

그 전에는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몰랐지만 1982년부터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꿔 호주 국립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나 역시 한국학은 현지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를 위한 1차 자료들에 대한 접근이 쉽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으며, 진짜 ‘한국 전문가’가 되려면 현지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좋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서 10년, 호주에서 8년을 지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공부하고 연구한 것도 20여년이 넘는데 한국행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고 한국은 ‘재밌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냐고 묻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인들이 한국의 멋진 점을 설명할 때 딱 한 가지를 꼬집어 말하기 어렵듯이 그런 느낌을 갖는다. 매력적이고 재밌는 곳이지만 설명하긴 애매하다.(웃음) 그러나 (한국이 나쁘다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다. (아마) 이미 생활이 됐기 때문에 객관적인 설명이 어려워진 걸지도 모른다."

-북한과 구 소련의 관계를 생각하면, 한국에서는 북한에 너그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은 북한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그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소련과 북한의 관계는 실제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소련은 북한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용할 수 밖에 없었지만 60년대부터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김일성의 우상화 때문에 소련에서는 북한을 ‘웃음거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련에서 북한만큼 인기없는 공산권 국가는 없었다. 북한의 독재체제나 우상화 등에 대해 소련은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이 때문에 북한에 갈 때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와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것은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에 갈 때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말로는 소련과 북한의 외교, 동맹 등을 강조했지만 내심 적대국 이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198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소련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북한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북한에 대해 공감이 생긴 것은 1990년대 말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 내에서 반미 민족주의가 커지면서부터다. 미국에 반대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공감했던 것이지 그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독재국가’ ‘가장 악독한 독재체제’였던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는 없었다.

또 국민들을 학대하고 민중의 기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극소수의 세습적인 엘리트의 특권만을 보호하려는 사회체제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북한에 살면서 북한 체제의 실제 모습을 접했고, 스탈린주의 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무너졌는지를 경험한 사람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부정적으로 변하는 북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로 인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이번 중병설은 남한이 북한에 대해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못하고 있다고 여기나.

"확실히 한국은 북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의 주류사회는 북한이라는 국가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양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현실 등에 대해 배우기 어렵다고 말한 순 없을 것이다. 탈북자도 국내에 1만명 이상이고 북한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정보도 많아졌다. 국내 언론 뿐 아니라 외신을 통해서도 북한에 대한 여러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결국 남한이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자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무관심’ 때문이다.

북한의 현실은 정말 비극적이고, 이런 현실을 남한 사람들이 알게 되면 ‘북한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줘야 하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을 돕는 일은 돈을 주거나 식량이나 비료를 지원하나 탈북자를 도와주는 등, 남한 사회에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일이므로, 북한을 ‘무시’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편리할 수 있다. 물론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부담으로 인해 상대국을 외면하는 일은 분단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다.

동서독과 남북한을 흔히 비교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동독은 북한보다 자유롭고 물질적으로 잘 사는 나라였다. 동서독은 1960년대 말부터 교류를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늘려왔고,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 사람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매년 동독을 방문하는 서독 사람들의 숫자는 수십만에서 100만 정도에 달했다. 동독 사람들도 서독을 방문할 권리가 있었고, 서독 방송이 개방되면서 동독 가정에서는 서독 방송을 보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가 됐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인 차이는 2~3배가량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 시내 관광은 진짜 북한 구경이 아니다. 북한을 방문하면 한정된 공간만을 볼 수 있고, 그것도 일반 주민들과의 접촉은 불가능하고, 선발된 소수의 인원, 좋은 출신 성분을 지닌 특수 계층 사람들하고만 만날 수 있었다. 경제력의 차이도 남북한은 17~50배 정도 차이가 난다.

남한이 북한에 관심을 갖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남북한이 혹독한 ´열전´을 치렀고, 이념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독은 감정적으로 얽히지 않았다. 서로 죽이는 비극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앙금이나 한이 남지 않았지만 남북한은 다르다. 적대감이 있다. 체제 경쟁도 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도 생각하는 듯 하다."

-북한학자의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비핵화나 개방은 북한에는 거북할 수 있다.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비핵화와 개방이 조건이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계에서는 밝은 미래는 없다."

- 일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남북정상회담을 함으로써 북한을 공개석상으로 끌어내는 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상회담이 나쁘진 않지만 정상회담만으로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변화는 정부의 정책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다.

정상회담은 일종의 타협이기 때문에 북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조치들에 대해 동의를 얻을 수 있을 순 있다. 개성공단과 같은 시설을 늘리고 평양 시내 관광을 요구하는 것 등 말이다.

그러나 다음 정상회담도 평양에서 이뤄진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순 없을 것이다. 유교 전통에 보면 사대주의가 있다. 형의 위치에 있는 국가의 수도를 아우에 해당하는 국가의 사절단이 방문하는 것이다. 조선이 명의 수도를 방문한 것이 그 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2차례의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연 뒤 ‘남한이 우리보다 못해서, 우리 장군님을 존경하고 사랑해서 평양에 왔다’고 왜곡된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이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 교수

-최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려 했던 것과 관련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분단이 지속되는 상황이고, 이념 갈등이 현재까지도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과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당신은 ‘북한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독재를 반대하는 좌익세력에게 역할이 있다’고 했는데 국가보안법이 건강한 좌파가 육성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어떤 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의 간첩 첩보활동은 막아야 하지만 이것은 가로막기 위해 특별한 법은 필요없다. 북한만을 마치 특별 관리하듯 대하기보다는 다른 국가와 같이 대할 필요가 있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남한의 좌파들은 북한에서 노동운동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남한의 좌파들은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에서 오는 적대감과 괴리감을 느낀 북한 노동자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안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김정일에 대해 비판적인 좌파들이 필요하며, 오 교수는 사실 북한을 많이 비판하는 좌파학자라 생각한다. 우파학자인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많지만 그렇다고 ‘친북’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의 측면에서도 국가보안법은 국민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지 못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법을 훼손하지 범위 내에서는 비폭력적인 정치활동을 다 포용해야 한다. 물론 친북좌파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조금 화가 나고 그들을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걸 막는 것은 민주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폭력적인 행위로 국가에 혼란을 주거나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은 찾아서 이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유아’가 아니라 ‘성인’처럼 대해야 한다. 오판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건 국가가 대신 해줄 수 없다. 국민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야지, 모든 걸 국가가 간섭하려 해선 안 된다.

더욱이 남한이 개인숭배, 지도자 우상화를 하고 있는 후진국에 대해 위협적으로 느낄 필요가 있나. 그런 거짓말들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순 없는 일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쟁은 남한 사회가 건전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계속)


☞<란코프 교수 인터뷰②>"통일 대비 탈북자를 대안엘리트로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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