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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보다 진한 우정을 말한다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4.09.27 14:01 수정 2024.09.27 16:57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플라톤이 저술한 ‘향연’에서는 사랑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소년과의 동성애를 옹호했던 파우사니아스는 아가톤과의 사랑을 언급하며 여성적 요소 없이 남성적 요소만 갖는 사랑을 성스러운 것으로 추앙했다. 고대 그리스는 여자를 폄훼하는 남존여비 문화 탓에 동성애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의 시작은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다. 동성애는 기독교 전래 이후 탄압받으며 종언을 알렸지만, 인권 문제와 함께 정치적 환경이 긍정적으로 조성되면서 다시 가시화되고 있다.


21세기 들면서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한결 관대해졌다. 개봉을 앞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13년 동안에 걸쳐 성 소수자를 친구로 둔 주인공의 우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비밀을 숨긴 채 캠퍼스 라이프를 시작한 스무살 흥수(노상현 분)에게 신입생 재희(김고은 분)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과감한 스타일과 눈치 보지 않는 거침없는 성격을 지닌 자유로운 영혼이다. 여느 남자 동기들처럼 흥수 역시 재희에게 이끌리지만 이성적 설렘이 아니다. 특별한 접점 없이 지내던 두 사람의 관계에게 변화가 생긴 건 어느 늦은 밤, 우연히 클럽 앞에서 만나면서부터다. 재희는 흥수가 동성과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비밀을 지켜주고 오히려 흥수를 아웃팅 위기에서 구해주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급기야 동거를 시작하고 가족보다 가깝고 애인보다 애틋한 관계를 시작된다.


멜로보다 진한 우정을 말한다. 영화는 20살부터 33살까지 재희와 흥수가 함께하는 13년의 세월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지녔지만 서로를 존중한다. 영화는 스무 살 청춘, 가장 반짝이고 찬란한 그들의 시간에 집중한다. 영화 초반에는 서로를 의지하고 지켜주는 관계성을 보여준다면 중후반부에선 성장의 서사에 집중한다.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적인 관계로 만나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며 서로의 성공을 빌어주는 두 친구의 우정에 집중한다. 남녀의 관계를 떠나 친구의 우정은 시간이 흘러도 함께 할 수 있음을, 친구와의 우정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어 우리에게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성 소수자를 향한 사려 깊은 시선이 담겨 있다. 흥수 탓에 영화는 퀴어 영화로 흘러갈 수도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성 정체성에 관한 사회적 이슈나 갈등을 포인트로 삼지 않는다. 또한 정상적인 사랑의 범위를 규정하는 이들을 강하게 바로잡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특정 사랑의 형태를 강제로 이해시키거나 주입 시키지도 않는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겠어!” 영화 속 대사처럼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라는 감독의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용기를 전해준다.


탄탄한 서사가 몰입도를 높인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10만 독자의 선택을 받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단편 소설이 영상화되면서 수많은 곁가지가 덧대어져 이야기와 감정의 폭이 풍성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는 단순 퀴어물을 넘어 청춘물로 전환되었고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여 대중성을 갖게 되었다.


변화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변화의 초기에는 기존 전통적 사고의 강한 반발과 저항에 부딪치지만, 대부분의 변화는 시간이 감에 따라 수용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는 동성애라는 또 다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두 젊은 청춘의 우정을 통해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눈길을 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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