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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넘치고 공화 실종 허울뿐인 민주공화국"


입력 2011.08.08 09:21 수정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인터뷰>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포풀리즘 민주주의의 과잉"

"무상급식은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모든 정책 입안의 표준이 될것"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무상복지는 혜택을 받을 필요가 없거나 받아선 안 되는 사람들마저 수혜 대상이 되려고 하는 자가당착에 빠뜨리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논쟁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지금 우리 정치권이 말하는 보편적 복지란, 이름만 차용했을 뿐 유럽사회가 60여년 동안 점진적으로 확대시켜온 것을 일시에 도입하려는 급진적인 플랜이어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은 “사회 발전 수준에 따라 확대되어야 할 복지 정책이 선거를 앞두고 표만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전락했다”면서 “포퓰리즘의 가장 큰 폐해는 국민을 감성적으로 자극해 이성적인 판단과 합리적인 논의를 축소시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포퓰리스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포퓰리즘의 가장 큰 폐단은 집단 이기심에서 시작돼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는 데 있다”면서 “특히 우리는 포퓰리즘에 이념이 결부되면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념이 아니라 그저 성향을 나누는 기준일 뿐인 진보 대 보수 편 가르기로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신포퓰리즘의 사례가 있었던 미국, 일본, 유럽에선 일자리나 인권, 경제적 부흥 등이 목적이었지 신자유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기조를 흔드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민주당에서 보편적 복지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나 이에 한나라당이 가세하는 전략 모두 사회적, 정치적 합의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복지의 사각지대가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무상, 반값 등의 구호가 난무하는 것은 결국 대중을 지지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행태일 뿐”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지금 선거를 앞두고 있어 극복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여지지만, 포퓰리즘에 대한 반발도 커져가고 있는 만큼 희망을 가질 만하다. 포퓰리즘이 아무리 난무해도 이를 국민이 수용 안하면 효력을 잃는다”면서 “포퓰리즘은 그 속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나므로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행정학 박사인 박경귀 원장은 국책연구기관과 외국계 컨설팅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공공부문 컨설팅 시장에 BSC(균형성과관리, Balanced Score card)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2002년 민간연구기관인 한국정책평가연구원을 설립, 정부부처·지방자치단체·공기업의 정책개발 및 정책평가를 담당해왔다. 최근의 공공부문 BSC 확산은 물론 정부부처의 연두업무보고, 정부업무평가 등으로 나눠진 성과관리제도의 중복 운영을 개선하기 위해 2005년 국내 최초로 통합성과관리 컨설팅 모델을 개발해 각 부처가 통합성과관리체계로 전환하게 만드는 선도적 역할을 했다.

현재 박 원장은 서울시 자치구공단 경영평가단장, 국토해양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정책학회 국방안보안전분과연구회장 등을 맡고 있다.

다음은 박 원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정치권에서 복지 논의가 활발하면 좋은 것 아닌가.

“보편적 복지란 용어 자체에 문제는 없다. 사회 발전 수준에 따라 복지는 확대돼야 한다. 그러나 민의를 한꺼번에 수용하는 것은 과욕이다. 현재 우리 복지수준은 낮은 편인데 그 갭을 일시에 메우려고 하고 있다. 방향이 아니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잘된 복지로 손꼽히는 유럽사회는 어떻게 발전시켰나.

“지금 유럽 국가들의 복지는 지난 60여년간 정책을 점진적으로 확대시켜온 것이다. 특히 노동자와 서민 정책이 우선됐었다. 이를 위해 사회적·정치적 합의를 거쳐 탄생한 사회민주주의 방식이라는 정치의 틀이 바탕이 됐다.”

-포퓰리즘은 왜 나쁜가.

“포퓰리즘이 정체된 사회에 자극을 주고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폐해가 너무 커서 항상 문제가 된다.

포퓰리즘의 폐해는 그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포퓰리즘은 정상 정치나 제도를 통하거나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중에게 호소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거나 사적 지원군을 활용해 연대나 지지자를 형성시킨다. 바로 계급연대전략이다.

여기서 ‘적과 나’를 구분하는 전략이 나온다. 예로 ‘2대8 사회’처럼 포퓰리즘에는 보호해야 할 대중과 적대시할 대상을 부각시킨다. 대개 서민 대 대기업 및 지배 엘리트로 양분된다.

이렇게 ‘우리’와 ‘그들’을 양분해 감성에 호소한다. 이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지만 ‘단순정치화’를 불러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사실 대중의 정서를 고무하는 선동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감성과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 득세할 때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합리적 논의를 축소시키게 된다.

노예제 채택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에 대해 미국 링컨 대통령이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했듯이, 무조건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선동에 의해 ‘다수의 우리’가 만들어져서 ‘합리적 소수’를 지배하고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니까 문제가 된다. 감성적으로 자극받은 집단을 다시 이성적으로 이해시키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사회적 제도와 규칙에 대한 현상타파를 주장하면서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것도 포퓰리즘의 해악이다.”

-외국의 포퓰리즘도 모두 실패했나.

“사실상 유럽의 포퓰리즘은 일자리를 위한 우파 포퓰리즘이었다. 도시노동자와 서민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슬람 계통의 이민자를 겨냥한 일종의 인종 차별주의에서 포퓰리즘이 탄생해 이민정책 강화 등을 낳았다. 이렇게 자국민 보호를 위한 배타적인 정책이 유럽의 포퓰리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 포퓰리스트인 텍사스의 성공한 기업가 H. 로스 페로는 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자극했다. 특히 국가보조금을 거부하고 자신의 돈으로 선거자금을 충당하는 등 기성 정치인과 기성 체제의 현상 타파를 주장했다. 결국 현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경우 석유기업의 국유화 선언에 이어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빈민에 전액 지원을 주장하고, 이것도 모자라 주변국에까지 우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쿠바에 반값석유를 공급한 인물이다. 영국 등 유럽에도 빈민지원책을 펴 대중교통비를 부담하는 등 세계 각국의 좌파와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2003년 이후 30조원 이상을 퍼부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포퓰리스트는 누구였나.

“대표적으로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포퓰리스트로서의 특성은 지녔지만 신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기조를 흔들지 않고 오히려 강화시켰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신자유주의 포퓰리스트였다. 그는 경제적 부흥을 추구하기 위해 기득권층인 대기업, 관료, 특수이익집단들을 ‘신성한 소(sacred cows)'라고 부르며, 개혁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 포퓰리즘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일본의 어느 학자가 동양의 대표적인 포퓰리스트로 고이즈미 전 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미디어를 통해 직접 대화를 추구하고, 외부 지지세력을 모아 계급연대전략을 가장 잘 쓴 인물로 꼽힌다. 바로 ‘노사모’로 기존 정치 세력을 타파하는 도구로 삼았다.

노 전 대통령의 해악이라면 반대 세력에 대한 낙인과 압박이 너무 지나쳤다. 이로 인해 편 가르기가 심화됐고, 과거 민주 대 반민주였던 패러다임이 보수 대 진보로 고착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실 지금 쓰는 진보와 보수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하나의 가치 성향일 뿐인데도 이념적 이분법으로 우리 사회를 양분시키고 있다.”

-반값등록금,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반값등록금은 한나라당이 복지전략을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다. 민주당의 복지전략에 대항하는 일종의 ‘물타기 작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론적으로 수혜자 연대를 확대시켜 촛불집회까지 불러온 점에서 물타기가 아니라 ‘기름붓기’가 돼버렸다.

무상급식도 똑같은 포퓰리즘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수준의 복지라고 수용하게 되면, 발만 하나 들여놓겠다는 것으로 시작한 것이 몸통도 들여놓고 결국 눕고 싶어지는 것을 허용하는 전략적 실패를 낳게 된다. 어쨌든 혜택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이기심을 충동하여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는 선동 전략으로 나쁜 것이다.

무상급식의 문제는 금액으로 따질 게 아니라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간파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추진되고 있지만) 무상급식(에 대한 시민의 선택 결과)은 앞으로 모든 (정책 입안에서) 원칙의 적용 잣대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포퓰리즘의 폐해는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만 영합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된다. 지금 대의민주주의가 위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를 살려내는 것이 해결책이다. 가령 (정치인들은 정책 입안에 앞서) 시·도별 토론 등을 통해서 정책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또 하나, 공화주의를 되살려야 한다.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에 민주는 넘치고 공화는 축소돼 있다. 따라서 공화의 가치를 살려야 할 때이다. 이기심에 충동된 다수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이 지향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법이 존중받고 공동선이 추구돼야 한다.

정치인들은 정치흥행을 위해 언제나 포퓰리즘을 활용하게 마련이다. 지지세력을 모으기 위해 수혜 대상을 확대시킬수록 국민도 부담하는 계층에서 빠지고 혜택만 받으려고 하는 모순에 빠진다. 국민들이 이기심을 절제하고, 시민사회가 정치선동에 면역력을 가져야 포퓰리즘을 이겨낼 수 있다.

특히 균형추를 잡기 위해서는 각성된 시민과 언론, 건강한 시민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복지가 시대정신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풀어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선거철을 앞두고 표만 생각하는 포퓰리즘은 국가의 재정과 정책을 망가뜨리고 결국 국민을 희생시키게 된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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