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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핏속에는 배워야한다는 DNA가 있다"


입력 2012.01.23 08:06 수정         김소정 기자 (bright@dailian.co.kr)

<인터뷰>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장선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자학적 역사관보다 장점 캐내는 것이 교육…모든걸 스토리화해야"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한글의 과학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때 서둘러 스토리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교육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요.”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인기를 모은 것은 28자로 음운이론을 완성시킨 한글의 과학성을 확인하는 감동이 컸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로서 세종의 리더십에 관한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은 “한글의 우수함도 세종의 애민정신과 합쳐질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처럼 브랜드 작업의 노하우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창제는 세종의 ‘역지사지’하는 애민정신에서 나왔고, 이것이 사회통합을 이루고 조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면서 “역사가 교과서 내용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때 교육도 되고 경제적인 부가가치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사를 거짓으로 재미있게 꾸며내라는 말이 아니라 전후 상황과 내면 이야기를 더해 제대로 가르칠 때 그 가치가 살아난다는 의미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특히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1418년 22세의 나이로 조선의 4대 임금으로 즉위한 세종대왕은 농법, 의약, 문화 분야를 총 망라해 기존 정책을 점검하고 손질해 조선왕조의 기틀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런데 세종은 노인과 노비, 빈곤층, 길 잃은 아이를 나라가 특별히 보살피는 정책을 실현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이 스토리화되어 국가브랜드로 널리 알려진다면 교육적인 효과는 물론 국민화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세종 시절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의 관비에게 산후 100일의 휴가를 주고, 그 남편까지도 한달을 쉴 수 있게 해 도합 160일의 산후휴가를 줬다”며 “이는 동서고금에도 유례가 없는 최고의 복지정책이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세종은 집 없는 노인에게 음식물을 주고, 노인들에게 의복, 의약품 등을 지급했으며,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작위까지 부여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백성들에게 심어줬다”고 한다. 역사 속에 지혜와 묘안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학적 역사관보다 장점 캐내는 것이 교육

이화여대 총장 시절부터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몰두해온 이 위원장은 우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뛰어난 스토리텔러로도 유명하다.

외국 정상과 중요 외국 인사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설명하고 감동시켜왔던 그는 특히 한국의 ‘서원’을 빼놓지 않고 소개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취임 이후에도 전국에 있는 국가사적 서원 9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키려는 노력을 펼쳐왔다.

“개인이 돈을 내서 세운 학교가 이처럼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 것을 볼 때 우리에게 ‘배워야 산다’는 DNA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그는 “병인양요 때 한국땅을 밟았던 프랑스 해군의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대목도 ‘어느 초가집에 들어가도 책이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서원의 매력에 대해서는 “나무와 돌, 집과 담장 그대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외에도 서원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사명을 품었는지가 스며 있다. 이런 것을 설명할 때 외국인들도 더 큰 감동을 받더라”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우리 조상들은 서원에서 상생의 정신과 인류평화의 길을 가르쳤다”는 그는 “‘문화교육이 성공하면 인성도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역사교육을 강조하면 학교폭력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우리 조상들이 부엌에서 쓰던 식칼을 보면 모양이 버선처럼 휘어져 있다. 휘게 만들어 흉기로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다. “이런 교육을 강조한 우리 민족에는 분명 평화의 인성이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내년에 서원의 유네스코 등록이 성사되면 즉각 사찰과 무형문화재 등록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아리랑, 태권도, 자수, 나전칠기 등 무형문화재를 살리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수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정교하고 따뜻한 매력이 있어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크다”면서 “하지만 우수한 문화가 전승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제자가 단 한명도 없는 한국화가가 있을 정도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만 사승관계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유네스코 등록 추진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비쳤다.

“한류도 지속력 가지려면 내면 강조해야”

이 위원장이 브랜드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대한민국 브랜드에 대한 외부 평가가 7단계나 오르는 성과가 나왔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내부에서 국가브랜드를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을 더욱 큰 성과로 꼽고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를 1년3개월째 이끌고 있는 이 위원장은 “국가브랜드는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자산”이라며 “위원장으로서 문화로 국가브랜드를 높이고 경제도 살리는 데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지난해 11월 30일 프랑스에서 최초로 조선왕조 궁중혼례를 재현하는 ‘조선의 왕비, 파리에 가다’ 행사를 열었다. 프랑스 외에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등에서 ‘한국주간’ 행사를 이어가면서 유쾌한 한류의 바람에 뒷심을 실어주고 있다.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최근 한류의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K-pop에는 다이내믹함이 있지만 이보다 더 묵직하게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한류가 지속력을 갖기 위해서도 내면에 흐르는 정신을 강조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대표 브랜드는 우선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가 견지해온 자학의 역사관을 버리고 잘못된 점은 인정하되 더 좋은 점을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자연과 유적을 잘 가꾸는 데에도 국민의 역사관이 바탕이 된다’는 의미로 “문화와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 올바른 가치관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과목을 사회과목에서 독립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도 남겼다.

이 위원장은 “학교에서 역사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방법도 중요해 초등학교의 경우 역사교육은 현장체험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했다. “주입식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우리 역사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문화와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오늘을 내일로 이어주는 다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는 “오늘의 유산을 내일의 영광으로 넘기는 게 이 시대의 임무이고, 우리 모두가 한 구간씩을 책임지고 있는 릴레이 주자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데일리안 = 대담 : 이의춘 편집국장 / 정리 : 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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