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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20살 성년인데 웬만한건 제발 냅두자"


입력 2013.09.19 10:10 수정 2013.09.22 09:54        김지영 기자

<추석특별 인터뷰>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권한 안주니 책임도..."

"국비 80%에 지방세 20%, 이러니 중앙의존도 높아지고 자율성 낮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관선 서울시장 시절이던 1994년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에겐 꿈이 있었다. 유럽이 EU(유럽연합)로, 동남아시아가 ASEAN(동남아국가연합)으로 힘을 합칠 때, 동북아시아는 여전히 모래알에 불과했다. 역사적 문제로, 영토와 경제주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차이로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위원장은 중국과 교류가 재개된 기회를 틈타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는 베이징시장을 만난 뒤, 일본으로 가 도쿄도지사를 만났다. 그리고 이들에게 베이징과 서울, 도쿄를 잇는 ‘베세토(BeSeTo)’를 제안했다.

베이징·톈진·신의주·평양·서울·대구·부산·후쿠오카·오사카를 거쳐 도쿄에 이르는 경제벨트를 구성하자는 것. 인구 20만 이상 도시만 120여 개, 벨트에 걸친 도시들의 인구만 1억 명이 넘는다. 베이징시장, 도쿄도지사는 흔쾌히 수락했고, 3개 도시는 실무단을 꾸려 경제·문화·예술 분야 교류를 시작했다.

하지만 베세토 협력선언을 일주일 앞둔 10월 21일 이 위원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든다.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의 시민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 이 위원장은 그대로 서울시장직을 내려놓았다.

이 위원장은 “누가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느냐. 물론 내가 만든 다리도 아니고, 내가 무너뜨린 것도 아니지만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이 있다”며 “그래서 ‘아, 이제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생각하고 사표를 냈다. 베세토는 흐지부지됐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고 회고했다.

“현재 지방의 정서에는 지역발전은 중앙정부에서 집행하는 SOC(사회간접사본) 사업, 또는 대형 프로젝트라는 등식을 깔려 있는데, 그건 아니다. 그건 당연히 이뤄지는 것이고, 새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은 과거에 손대지 못한 섬세한 것들을 채워줘서 국민의 생활을 불편 없이,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난 이 위원장은 관선 충북지사와 서울시장, 두 번의 민선 충북지사를 거친 지역발전 전문가다. 그런 이 위원장에게 베세토는 광역단체장 재직 기간 폈던 정책 중 유일한 오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4일 광화문 지역발전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의 표정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하지만 지역발전위원회 활동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이 위원장의 표정은 이내 다시 밝아졌다. 베세토가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면 지역발전은 이룰 수 있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이기 때문이다. 선진강국, 이 위원장의 새로운 꿈이다. 그는 지역발전위원장으로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7월 18일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지역일꾼으로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은 없다. 네 차례의 광역단체장과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사장, 서울연구원 이사장을 맡았던 경험이 그의 선임 이유를 말해준다. 말 그대로 지역발전 전문가다.

최근에는 지역 순회일정으로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 위원장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필드에 심었을 때 싹이 나고 꽃이 펴야 한다. 그걸 수행하는 건 각 지역”이라며 “추석 전까지 각 지역을 돌면서 토론을 하고, 좋은 의견은 받아들여 정책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한다”고 말했다.(이 인터뷰는 추석전에 이루어졌음 편집자 주)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새 정부의 지역발전위원회가 추구하는 정책의 기본 방향은 지역행복생활권을 조성해 지역 스스로 정책을 수립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더불어 낙후된 지역에는 도로와 수도 등 인프라를 지원하고, 일자리·교육·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위원장은 “중동 국가들이 오일달러를 많이 번다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소득도 높아야 하지만 사회가 안정돼야 하고, 문화·복지·의료와 같은 국민이 누리는 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변층이 대폭 줄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더 쉬운 말로 말하면 농어촌의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북유럽의 핀란드나 스웨덴을 보면 다 농촌이 잘 산다”면서 “우리가 그간 고도성장, 경제성장을 해오면서 농어촌의 수입도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도 상수도가 들어가지 않는 지역이 있는 등 섬세함이 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새 정부는 섬세하게 손길을 끼쳐 지역이 느끼는 행복의 수준을 높여주려 한다”며 “소득이 높고, 사회도 예측 가능할 정도로 안정되고, 생활 인프라부터 문화·복지 수준까지 높아진다면 선진강국이 안 되겠는가. 그래서 우선 뒤처져있고 소외된 지역, 이것부터 채워가는 그런 걸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광역·지역발전 특별회계에 광역계정과 지역계정이 있다. 사실 지역계정을 자율계정이라 하지만, 자율성이 크지 않다. 각 지역을 돌아봐도 ‘이름이 자율계정이지, 자율이 너무 제한됐다’는 말을 하더라.”

문제는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지역의 재량권과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다. 지역 스스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 위원장은 “지방의 공통적인 의견은 예산의, 사업의 자율성이 좀 커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이건 키워줘도 좋은 게, 우리나라 지방자치 20년이 넘었다. 사람도 20살이면 성년인데 웬만한 건 맡겨보고, 안 되면 주민들이 책임을 묻고, 그런 거지. 자율성이 좀 더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율성이 커지면 잘하는 곳과 뒤처진 곳의 격차가 생긴다. 여기서 역동성이 생긴다. 한쪽은 더 잘하려고, 다른 한쪽은 따라가려 한다”면서 “경쟁을 통해 발전을 촉진시키는, 천편일률적인 모습과 정책을 가진 지방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예산과 관련해서도 이 위원장은 “조세체계를 보면 국비 80%에 지방세 20%밖에 안 된다. 혹자들은 비관 섞인 말로 ‘20% 지방자치’라 한다”면서 “포션 자체가 작다보니 중앙 의존도가 높아지고. 자율성도 떨어진다. 지방의 재원확대 노력과 함께 중앙정부의 조세개편과 지도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 위원장은 “재원이 충족되면 지방도 자신들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일부 지자체처럼 호화청사를 짓고, 나중에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을 만들고, 그러면 그 지역뿐 아니라 전체 지자체의 부실을 자초한다. 그래서 지역 차원에서도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선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원회 차원에서도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방안을 연구 중이다. 안전행정부 소속 지방세연구원에선 지방소비세를 독립세로 분류하는 방안과 소비세를 현행 5%에서 10%로 인상하는 방안, 소득세를 지방세로 귀속시키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지방에 독자적으로 세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이 검토되고,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그럼에도 발생하는 지역 간 격차에 대해선 중앙정부의 교부금 등으로 메워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지역축제나 전시성 사업 등으로 재정이 낭비되는 부분에 대해선 정치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완화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그는 “민선 초기엔 단체장의 치적 쌓기가 심각해 중앙의 예산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도 그 문제가 제기되고, 지역에서도 반성이 생기기 시작했다”면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은 이런 관행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치적 쌓기와 같은 악습들이 정리가 잘 돼가는 과정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또 “이제 지역에 의회도 생기고, 시민단체도 생기고, 그에 대한 비판과 대안도 나오고 있다”면서 “오히려 지금은 그런 지역축제들이 지역의 독자성(identity)을 확립하고, 소득과 연계되는 것으로 많이 발전이 됐다. 지역의 특화발전을 촉진하는 이런 부분들은 바람직하지 않나 본다”고 덧붙였다.

괴산과 음성의 고추축제, 청원의 생명축제, 제천의 한방바이오엑스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위원장은 “우려되는 지역이기주의도 SOC 사업이나 대형 국책사업에선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가 하자는 건 생활현장에 섬세히 다가가 주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피부에 닿는 일인 만큼 정책이나 정치의 영향을 받아 추진에 장애가 생길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광도 그렇고, 상품도 그렇고 성공했을 때 안주하면 안 된다. 그때 이미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관광지는 상품과 같다. 한 번 대박을 친 상품은 오래 가지 않는다. 새로운 걸 개발해야지, 이 스마트폰만 봐도 요즘 다들 스마트폰 들고 다니지 옛날 휴대전화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아울러 이 위원장은 각 지역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 위원장은 특정 기반산업으로 번창했던 지역이 해당 산업의 쇠퇴와 함께 몰락하는 문제에 대해 “그 지역의 약점이 돼버린 상황을 강점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이원종 위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는 “로키산맥 아주 높은 곳에 굉장히 춥고, 눈이 많이 쌓이는 도시가 있다. 그 도시는 겨울에 눈이 쌓인 것을 이용해 스키를 탈 수 있도록, 또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관광지로 만들었다”며 “또 날씨가 선선하니 여름에도 음악가들이 몰린다. 춥고, 높다는 단점을 강정으로 반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강원도 남부의 탄광지역들도 탄광지대가 가진 특별한 여건을, 폐광이 돼버린 곳을 다시 탄광으로 쓰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는 없는 매력 포인트로 바꾸려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위원장은 광역단체장 시절 기억에 남는 정책이나 사업이 있느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오성에 바이오 산업단지를 조성했던 일을 꼽았다. 이는 이 위원장에 대한 인터뷰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는 “내가 충북지사로 재임했던 90년대 말 충북은 작고, 힘없고, 뒤떨어진 지역이고, 전통산업인 농업에 의존하고 있는 가라앉은 호수와 같다는 정서가 지배했던 곳”이라며 “그때 충북을 살리기 위해 생각했던 게 ‘첨단산업으로 가야겠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바이오산업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처음엔 다들 턱도 없는 소리라고 귀담아듣지 않았다. 목표를 이루려면 공무원과 함께 가야 하는데 말로는 설득이 안 됐다”며 “그래서 2002년 바이오엑스포를 했다. 바이오가 무엇이고, 왜 이걸 해야 하고, 21세기 부강한 나라로 가기 위해 이게 꼭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내 주장은 ‘바이오엑스포는 끝나는 날이 새 출발’이라는 것”이라며 “도정목표, 캐치플레이즈를 바이오테크에 유토피아를 더해 ‘바이오토피아’로 했다. 그래서 그 수단으로 오성에 생명과학단지를 만들었다. 결국 첨단산업의 불모지와 같은 곳을 바이오토피아 충북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지금 바이오 하면 오성, 바이오 하면 충북이라고 한다. 내겐 아직도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지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지역발전위원회가 추구하는 지역행복생활권과 모든 지역발전 정책들이 이 위원장이 말한 ‘오성 바이오토피아’에 담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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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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