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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진실 매몰되면 나치처럼 전체주의 된다"


입력 2013.12.28 10:28 수정 2013.12.28 20:05        이충재 기자

<인터뷰>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교과서논란은 비판의 순환과정의 하나"

“비판정신이 살아있을 때 역사적 진실은 보장이 된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이 바라본 ‘역사교과서 전쟁’의 총부리는 좌우가 아닌 남북을 서로 겨누고 있었다. 23일 서울 강남 한 카페에서 만난 오 원장은 “우리 국민가운데 북한의 역사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자들이 많아지면, 대한민국 정체성은 침해 받을 수밖에 없다”며 “그만큼 우리의 내적 안보는 약화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고교 한국사 교과서 편향서술 논란으로 촉발된 역사전쟁은 좌우 간 진영 싸움을 넘어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른 이념과 체제에 대한 아직 끝나지 않은 ‘총성없는 전쟁’이라는 진단이다. “역사는 국가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내적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 원장은 “남북과의 무기로 싸우는 전쟁은 멈췄지만, 담론전쟁은 계속되고 있다”며 “국가정체성이 국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담론 전쟁의 의미도 대단히 크다”고 강조했다.

"비판정신 펄펄 살아서 개입해야 역사적 진실 보장 된다"

오 원장이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말은 “역사의 진실”과 “비판정신”이었다. 그는 “역사의 진실이 매몰된 체제는 필히 전체주의체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필히 ‘역사적 진실’에 입각한 ‘비판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휘하의 독일을 배경으로 성장을 거부하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전체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을 보여준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을 예로 들며 역사의 진실과 비판정신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전체주의체제 하에서의 역사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소설 중 하나가 ‘양철북’이다. 소설에서 나치 치하의 역사는 ‘난장이 오스카’로 상징화하고 있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전체주의 역사의 질곡 상황을 난장이로 함축한 것이다. 전체주의 역사가 올바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비판정신이 필수적이었다. 오스카는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에 정수리를 맞게 되고, 성장점이 자극을 받아 일순간 키가 자라게 됨으로써 마침내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난장이 오스카가 성인의 키로 커진 것은 곧, 역사의 회복을 의미한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만큼 “오스카의 정수리를 때린 비판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것은 그 체제를 살린다”는 의미다. 전체주의체제의 특징은 ‘거짓된 역사 서술’이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비판정신을 허용치 않는 것”이다.

그는 “역사를 평가할 때는 관점에 따라 해석되겠지만, 역사의 보편성에 따라줘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비판정신이 펄펄 살아서 항상 개입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비판정신이 살아있을 때 역사적 진실은 보장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역사의 진실이 매몰된 체제는 필히 전체주의체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교과서 논란, 역사가 바로 정립되는 과정 보여줘"

특히 그는 “이번에 고교 한국사 8종 교과서 논란은 ‘교학사 대 7종교과서’의 격돌이 있었지만, (그동안 비판이 없던 상황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던 전쟁이었다”며 “비판을 하면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그러면서 역사가 바로 정립되는 과정을 보여준 역사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교학사 교과서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나머지 7개의 교과서도 교육부의 권고에 따라 수정을 했다”며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논쟁이 심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 또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시간이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이번 교과서 논란으로 인한) 충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다. 이런 순환과정 속에서 흡수되면서 (역사의 진실에 비판정신이) 녹아들어오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원장은 “역사는 단순히 과거라는 시대적 의미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미래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며 “그런 점에서 올바른 역사를 정립해 나간다는 것은 한 나라의 운명과 관련해 매우 중차대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 국가의 역사는 그 나라의 정통성은 물론, 국민 개개인의 국가정체성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내적 차원의 국가안보 확립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며 “그러한 면에서 역사가 어느 특정세력의 정파적 편견에 사로잡혀 마음대로 재단되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정세력에 의해 쓰인 역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아"

오 원장은 “특정세력에 의해 역사가 쓰이면 그것이 좌든, 우든 간에 역사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법”이라며 “스탈린주의체제도 그랬고, 나치와 같은 파시스트체제도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유신제체 당시에 역사가 바르게 기술되지 않았다. 정권을 가진자들의 의도대로 역사가 기술된다면 굉장한 불행”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역사교과서 논란에서 ‘우파진영 인사’로 거론됐지만, “어떤 한쪽 편을 들고자 했던 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역사적 진실이 중요한 것이지, 특정 역사적 관점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은 옳지 않다”며 “특정 이념 이론에 메여있는 연구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는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표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파적 입장에서 상대를 비난하고, 꺼꾸러뜨리기 위한 담론이 되어선 안 된다”며 “서로가 경청하면서 ‘저 비판이 나에게 해당되는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사료를 바탕으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빨간 안경을 쓰면 온통 붉게 보이듯, 우리가 투명한 안경을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끊임없이 읽고 연구하는 데서 방법론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를 특정 개인의 신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며 “끊임없이 책을 읽고, 정보를 습득해야 한다. 내 것만 사수하고 그와 관련된 서술만 보고 강화시키는 방식이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좁게는 역사학계, 넓게는 역사전쟁을 둘러싼 사회에 던진 외마디 외침은 ‘각주구검(刻舟求劍)’이었다.

그는 “좌파시각에서 연구를 한 사람 중에도 현재는 우파의 입장이 된 사람이 있다. 그만큼 끊임없이 공부한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서 함께 변해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특정이론에 붙박여 그 이론만 공부한다면 이미 한 쪽에 붙들려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고정적 관념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신이 공부하던 시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자들은 새로운 저술들을 읽어 나가야 한다. 시간과 공간의 위치 속에서 자신이 가진 관점은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인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머물러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키가 자리지 않는 ‘오스카’가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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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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