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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도시의 외딴섬 미아리텍사스...그곳은 지금


입력 2014.07.01 17:55 수정 2015.03.15 14:45        박민 기자

재개발 추진 말만 수년째...'미아리텍사스' 슬럼화

성매매 업주 "재개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생계만 보장해달라"

도시계획 입안과 승인, 관리 책임질 행정기관은 정작 외면

6월 29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텍사스 윤락가 골목에 들어서자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속칭 이모라 불리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6월 29일 저녁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미아리텍사스 윤락가 골목에 들어서자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속칭 이모라 불리는 아주머니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모든게 멈춰선 도시의 외딴섬 '미아리텍사스'

반세기 넘게 어둡지만 붉은 역사를 지닌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 '미아리텍사스'. 수년째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다는 말이 무성했지만 행정기관의 지지부진한 일처리에 밀려 모든게 멈춰 있었다. 도심 개발에 밀려난채 철저히 외면받은 이들의 현 주소는 마치 도시 내 '외딴섬' 같았다.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 위해 주말인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성북구 신월곡 1구역, 미아리텍사스를 찾았다. 윤락가 가까이 접근하자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듯 이들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애써 모른척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외면 받고 있지만 여전히 도심속에서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었다.

미아리 텍사스는 지난 1960년대만 해도 정릉청 주변의 허름한 선술집으로 운영되던 판자촌이었지만 서울역과 종로3가 등에서 활동하던 성매매 여성들이 단속을 피해 모여들면서 지금의 집창촌으로 형성됐다. 행정구역 명칭상 '하월곡동'이지만 근처에 미아리 고개가 있어 '미아리'라는 지명과 미국 유흥가를 상징하는 '텍사스'가 붙여져 지금의 '미아리텍사스'로 불려졌다.

취재에 앞서 미아리 텍사스 윤락가의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인근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사다리꼴 모양의 대지면적은 5만5196m². 어림잡아도 400~500채의 낮은 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고, 복잡한 미로처럼 좁은 골목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었다.

윤락가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만 해도 길음역 10번출구부터 종암사거리까지 약 십여군데나 위치해 있었다. 특히 미아리텍사스를 휘감는 8차선 도로의 광폭한 움직임과 주변 건물의 반짝이는 불빛과 달리 희미한 붉은 조명은 묘하게 대조적이었다. 확연히 성매매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삶을 구분 짓고 있었다.

6월 29일 늦은 밤, 윤락가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신월곡 1구역 남쪽구역(미아리텍사스). 주변 8차선 도로와 건물에게서 내뿜는 번쩍이는 불빛과 달리 어둠컴컴한 윤락가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데일리안 박민 기자 6월 29일 늦은 밤, 윤락가 근처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신월곡 1구역 남쪽구역(미아리텍사스). 주변 8차선 도로와 건물에게서 내뿜는 번쩍이는 불빛과 달리 어둠컴컴한 윤락가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데일리안 박민 기자


미아리텍사스 재개발 지정된지 10년...여전히 답보상태

미아리텍사스 전경을 확인하고 옥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파트 주민을 만났다. 취재 중인 기자임을 밝히자 주민은 "요즘 미아리텍사스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것 같아 치안도 불안하다"면서 "(윤락가)근처를 지나갈때마다 불안한 것은 물론 아이들 교육에 생활환경, 게다가 집값도 많이 떨어지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안된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근처 부동산중개업소를 방문해 물어보니 "2012년 입주 당시 4억6000만원(112㎡형) 하던 매물이 지금은 4억원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며 "근처 길건너 길음뉴타운도 2만세대 정도가 들어섰는데 집창촌 때문에 집값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미아리텍사스가 재개발이 된다는 말이 나온건 지난 2003년부터다. 당시 서울시는 이 일대를 '미아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하고 대규모 개발을 공언했다. 특히 이듬해인 2004년 9월 성매매 특별법이 발효되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는 업소가 늘어났고 자연스레 재개발은 탄력을 받은 듯했다.

그러다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성매매 종사자들의 반발로 잠시 난항을 겪다 2008년 최고 39층 높이의 아파트 9개동, 총 1192채를 짓는 내용의 '신월곡1 도시환경정비계획' 수정안이 다시 고시됐다. 2009년 8월 들어 토지 소유자 70% 이상이 찬성하며 조합까지 설립되면서 '재개발'은 다시 속도를 내는 듯했다.

이 시기 성매매업소가 대거 철거되면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신월곡 1구역 땅값은 3.3제곱미터당 3500만원 선까지 치솟았고, 조합원들은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

하지만 주거비율에 비해 상가가 너무 많아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업추진의 발목이 잡혔고, 서울시는 2012년도에 근처 성북2구역 한옥마을과 용적률을 나눠갖는 '결합개발방식'을 최초 도입해 주거비율을 늘리며 재개발을 본격화를 했지만 또 다시 답보상태다.

기약 없는 재개발 소식에 인근 주민들은 물론 거주민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었다. 특히 이들 지역은 지은지 30년이 넘은 노후한 집들이 대다수여서 폭우나 폭설때 지붕이 무너져내리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재개발로 묶여 대수선을 할 수 없는 노릇. 임시방편으로 천막을 씌운채 위험한 생활을 연명하고 있었다.

6월 30일 낮에 바라본 미아리텍사스 윤락가 전경.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6월 30일 낮에 바라본 미아리텍사스 윤락가 전경.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윤락가 세입자 "재개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밥만 먹게 해달라"

땅이나 건물 주인의 입장과 달리 정작 이곳에 세들어 사는 성매매 업주나 종사자들은 재개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들의 속사정을 듣기 위해 직접 윤락가 골목안까지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이모(손님과 아가씨를 연결해주는 사람)들을 먼저 만날 수 있었다. '쉬었다 가라'고 말을 건네는 이모에게 '취재 중인 기자'임을 밝히자 "여기 취재할게 뭐가 있냐"며 경계의 눈빛을 쏘아붙였다.

그는 이어 "아무리 기자에게 속 사정을 얘기해도 나쁜 내용만 잔뜩 써서 오히려 피해만 보고 있다"며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재개발 관련해 업주들과 세입자 심경을 듣고 싶어 왔다'고 말하자 조금은 안심한 듯 "우린 종업원일 뿐이다"며 미아리텍스사촌 대표자격인 정화위원회를 가서 물어보라고 응답했다.

근처 정화위원회에 가서 '취재 목적'을 알리자 정화위원회소속 장씨는 금새 넋두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재개발을 하던지 아니면 공창제(성매매 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해 제발 먹고 살게 해달라"며 말을 이었다.

미아리텍사스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직격탄을 맞았다. 계속되는 단속으로 업소의 1/5이 문을 닫았고 한번 단속에 걸리면 1000만원(업주500만원, 건물주5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기 때문에 현재 업주들 상당수가 빚더미에 앉은 사람이라고 말을 아꼈다.

장 씨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이 '내 직업이 이거(성매매)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일을 그만두고 나가고 싶어도 기본적으로 빚이 3~4억원씩 있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는 처지다"며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미아리텍사스 재개발에 대해 세입자들은 크게 반대하지도, 크게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며 "살길만 열어준다면 뭐든 빨리 됐으면 좋겠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세입자이주, 상가영업권)보상이라도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라며 지지부진한 사업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장 씨는 또 "미아리텍사스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음성적으로 성매매가 이뤄지는 것을 사실상 다들 알면서도 우리만 단속하면 죽어나간다"며 "모두 똑같이 강하게 단속을 하던지 아니면 재개발 전까지라도 합법적으로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대화 끝에 그는 "직접 골목안으로 가보라"며 "요즘은 단속이 심해 지나다니는 사람 한명 없다"며 막막한 생계에 대해 토로했다. 정화위원회에 따르면 4~5년전 500여개에 달하던 업소는 문을 닫고 떠나 현재 100개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정화위원회를 나와 골목길을 한바퀴 돌아다녀보니 2~3명 지나가는 무리외에는 남자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 우둑커니 자리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업소 이모와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 생계에 대한 막막함이었다.

그는 "여기서 일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40살 이상 되면 식당에서도 우릴 받아주지 않아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며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나도 딸 둘을 키운다. 아침에 집에 들어가서 집안일하고 밤에 나와 이렇게 일을 한다"며 "요즘 같이 손님이 없는 날엔 하루 3만~5만원 번다. 그나마 많이 번 날이 7만원인데 여기(미아리텍사스)마저 없어지면 난 뭐 해먹고 살건지 막막하다"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6월 30일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신월곡 1구역 북쪽구역(주거지역), 주변의 높은 건물과 달리 2~3층의 낮은 주택들은 대부분 지은지 30년 이상된 건물이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6월 30일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신월곡 1구역 북쪽구역(주거지역), 주변의 높은 건물과 달리 2~3층의 낮은 주택들은 대부분 지은지 30년 이상된 건물이다.ⓒ데일리안 박민 기자


재개발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는 묵묵부답

기약 없는 재개발 소식에 인근 주민 피해는 물론 세들어 사는 집장촌 업주들과 종사자들 역시 살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조합원들 역시 지지부진한 재개발에 5년 넘게 은행이자에 시달리고 있다.

백승윤 신월곡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사무장은 "서울시청에 찾아가 면담도 하고 시위도 했지만 왜 (사업시행인가) 승인을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며 "승인을 늦게 해주면 도대체 누구에게 이익이 되길래 이렇게 시간을 끄는지 알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관할구청인 성북구청은 지지부진한 재개발 사업에 대해 "지난해 10월 서울시에 '결합개발방식의 정비계획수정안'을 제출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며 "이제 남은 일은 서울시가 해야 할 일이다"며 나머지 책임을 서울시에 떠넘기는 모양새를 보였다.

반면 서울시 담당자는 "세월호 사건에 서울시장 선거 등까지 굵직한 일이 많아 아직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 가지 않는 상황이다"며 업무적인 답변만 늘어놓았다.

미아리텍사스(신월곡 1구역)와 성북 2구역은 '별도조합형 결합개발방식'으로 서로 떨어진 정비구역을 단일구역으로 지정하되 사업은 각 조합에서 별도로 추진토록 하는 방식이다. 이때문에 윤락가 세입자 보상 문제는 물론 앞으로 조합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나 협의 등 해결해야 될 숙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사실상 공공기관은 두 손놓고 관망하고 있었다.

도시개발을 유지, 관리, 추진해야 할 책무가 있는 행정기관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이 미아리텍사스는 대중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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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기자 (myparkmi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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