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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방송인 김아라 "5년전에 멘토가 있었으면..."


입력 2014.09.08 07:53 수정 2014.09.08 08:40        김지영 기자

<추석 맞이 특별 인터뷰>"북한 관련 질문 상처 안받아"

"남한엔 차가 너무 많아 빨리 통일돼 분산됐으면..."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럼요. 만났죠.”

남한에 와서 남자친구를 사귀어봤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당당하게 답했다. 남한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5년. 방송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두 명의 남자친구를 사귀어봤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바쁜 일정 탓에 연애는 엄두도 못 내는 처지다. 출연 프로그램만 일주일에 세 개. 촬영을 마치면 몸은 늘 녹초가 된다.

지난 2일 강남구 논현동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난 탈북 방송인 김아라 씨는 시종일관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자세가 어색한 듯 민망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지만, 답변은 꾸밈없이 솔직했다. 정착 과정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말할 때에는 강한 자기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지난 2009년 남한에 새 둥지를 튼 김 씨는 탈북민 출신 방송인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24살. 2002년 고향을 떠난 그녀는 7년 동안 중국에 생활하다가 2009년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김 씨가 남한에 왔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공부였다. 북한에서 공부라는 걸 해본 적 없는 그녀는 학원과 대안학교를 오가며 2년도 안 돼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2011년 명지전문대 뷰티아트과에 입학했다. 이후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출연을 계기로 하은엔터테이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이름이 지난 6월 한 포털사이트의 인기검색어에 올랐다. '이만갑'의 시청률이 오르면서 고정 출연자인 김 씨도 덩달아 유명세를 탄 것이다. 작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갑작스런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그녀는 그게 “행복하다”고 답했다.

방송 출연과 함께 그녀의 이름도 바뀌었다. 김 씨는 “내가 한국 배우 중에 고아라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 방송에 나갈 땐 한 번만 나가고 안 나갈 줄 알고 ‘그냥 아라라고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갔는데 어쩌다보니 고정이 됐다. 그래서 그때 만든 김아라라는 예명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본인의 연애 경험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학생활 중 사귀었던 첫 남자친구는 자신과 같은 탈북민이었다. 하지만 김 씨와 남자친구 모두 남한의 생활방식을 몰랐던 탓에 서로 도움을 줄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정착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별 후 그녀는 ‘남한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남한 남자였다. 그녀는 “역시 다르더라(웃음). 북한 남자는 뭔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며 “그런데 남한 남자는 너무 자상하더라. 너무 잘해주고. 처음엔 되게 적응이 안 됐다. (만나면서) 내가 공주 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고, 내가 뭔가 잘나 보이더라”고 말했다.

다만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김 씨는 “남한 여자들은 김장 담구는 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만 (북한에서 온) 내 아는 언니는 ‘아, 우리 집도 김장해야 하는데. 고춧가루를 어디에서 살까’ 걱정이 들었다고 하더라. 북한 여자들은 어려도 집안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도 옥수수밭을 지날 때나 비가 내릴 때면 농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모습을 보던 남자친구가 그녀에게 했던 말은 “나이는 어리지만 뭔가 애늙은이 같다”였다.

지난 5년 동안 대학에서 원하는 공부도 했고, 변변한 직업도 얻었다. 또 많은 친구들을 얻고, 연애도 경험했다. 서울말을 쓰는 것은 아직 어색하지만, 어느덧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정착했다.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씨는 “‘그때 내게 멘토가 있었다면 정착이 더 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남한 사회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 않느냐.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고, 꿈이라는 것도 북한에선 가져볼 수 없었는데, 그 꿈을 다시 만들어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는 이어 “실은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게 꿈 아니냐. 목표, 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 같은 것. 그렇데 그런 걸 생각 못했다. 전혀 못했다”며 “조금씩 대학생들이 더 많이 오지 않느냐. 멘토라든가, 그런 사람들한테 꿈과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하 일문일답.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는 2002년 탈북했다. 그때 내가 열두 살이었다. 그 뒤에 중국에서 7년 정도 학교를 다니다가 엄마와 함께 2009년 남한으로 오게 됐다. 한국에 막 왔을 때에는 한글도 잘 몰랐다. 북한에서는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었다. 오자마자 학원에 다니고, 여명학교라는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명지전문대 뷰티아트과에 입학해 2013년에 졸업했다. 지금은 방송 쪽으로 일하고 싶어서 하은엔터테인먼트 들어가서 일하고 있다.”

-방송 일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소개로 하게 됐다. 나는 원래 뷰티아트과에 들어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배워 헤어디자이너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명지전문대에 들어가 대회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자격증도 땄다. 그러다가 이만갑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던 친구가 거기 작가들한테 나를 소개했더라. 엄청 과장해서 ‘정말 예쁜 애가 있다. 연락해봐라’ 이렇게 해서 연락이 왔다.(참고로 김아라 씨의 방송 중 닉네임은 ‘공주병’이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김아라라는 이름은 가명이다. 내가 한국 배우 중에 고아라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처음 방송에 나갈 땐 한 번만 나가고 안 나갈 줄 알고 ‘그냥 아라라고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갔는데 어쩌다보니 고정이 됐다. 그래서 그때 만든 김아라라는 예명을 아직까지 쓰고 있다.“

-방송 일은 재미있는지. 출연하면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일은 재미있다. 나는 정치적인 건 아는 것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말을 잘 안 한다. 그냥 내가 느낀 것, 경험했던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장 많은 것 같다.”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다른 출연자들과는 친해졌는지.

“당연하다. 다 되게 친하다. 언니들이 많은데, 나는 항상 동생이더라.”

-작년까지 학교를 다녔다면 남한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나.

“많이 사귀었다. 남한 친구들은 나랑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친구들이지 않느냐. 그래서 처음에 학교에 들어갔을 때 친해지고 싶은데, 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거리감을 갖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안 했다. 숨겼다. 언니들이 ‘왜 사투리 쓰냐’고 하면 내가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나중에 내가 이만갑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면서 뭔가 이제는 자신감이 생기고, 이젠 나를 숨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북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고향 자체가 싫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소개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됐다.

처음엔 내가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 학교에서 과제물을 준비할 때에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고, 물어보기 창피한 게 너무 많았다. 스카치테이프가 뭐냐고. 이런 것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나중엔 친해져서 내가 얘기했다. ‘난 어디에서 왔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까, 내가 언니지만 배울 게 너희들한테 더 많으니까 가르쳐달라, 그럼 열심히 배우겠다’, 이렇게 말하면서 친해졌다. 그 뒤엔 애들이 거리감도 없이 나한테 잘해주고,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르더라.

특히 나는 학점 같은 게 많이 신경 쓰였다. 학점을 잘 받으려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나는 북한에서 공부를 못했으니 공부하는 방법도 몰랐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한 경험이 있으니까 시험 볼 때에도 족집게처럼 어떤 부분이 나올 거란 걸 알고 있더라. 그런 친구들이랑 친해지니까 애들이 막 알려주고. 그래서 내가 졸업할 때 학점이 4점을 넘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남북한 어린이들을 모아 학교에서 함께 지내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북한 아이들은 ‘너흰 우리와 다르다’는 식의 질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혹시 남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던 적은 없나.

“그걸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나도 처음엔 정말 많이 상처가 됐다. ‘북한에 소시지 있어?’, ‘북한에 햄버거 있어?’ 이런 것들 있지 않느냐. 이런 것들이 되게 상처가 됐다. 그럴 때면 ‘나도 잘 먹어. 돼지고기도 먹고, 소고기도 먹고 다 먹을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되게 반항을 했었다.

보통 북한에서 온 사람들은 ‘난 북한에서 공부도 못했는데’, ‘못 살다가 왔는데’, ‘아는 것도 많이 없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자존감이 낮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 그걸 건드리면 당연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아, 이 친구들이 나한테 궁금해서 그러는 구나’ 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게 상처보단 고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에 달린 것 같다.”

-사실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북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소식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 것들의 영향인지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못 살았을 거야’라는 식의 편견이 생긴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예전에는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래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만갑과 같은, 북한을 다루는 내용의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지 않느냐.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남한 사람들도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이 완화하는 것 같더라. 나랑 이만갑 식구들도 늘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북한에서 삶을 전달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생각을 조금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아까 친구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남한에 온 지도 이제 5년이 넘었는데, 남자친구들도 사귀어봤는지.

“그럼, 만났다.(웃음) 두 명을 만났었는데, 한 명은 북한사람이었다. 그런데 사귀다보면 학교를 다닐 때 리포터나 이런 걸, 과제를 준비하는 과정이 있지 않느냐. 그 부분에 있어서 내가 모르면 물어봐야 하는데 남자친구도 같이 모르는 거다. 그리고 정착하는 데 있어서도 둘 다 같이 모르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더라. 그래서 그 친구와 헤어진 뒤에 ‘남한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에 남한 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역시 다르더라. 북한 남자는 뭔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남한 남자는 너무 자상한 거다. 너무 잘해주고. 처음엔 되게 적응이 안 됐다. 내가 공주 같다는 느낌도 많이 받고, 북한 남자친구를 사귈 때에는 몰랐는데 남한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내가 세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내 자신이 뭔가 잘나 보이더라. 또 나를 너무 예뻐해 주니까 내가 진짜 예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 또 내가 모르는 부분도 많이 가르쳐주려고 하고.

그런데 연애를 하다보니까 다른 점도 느껴지더라. 남한 여자들은 옥수수밭을 지나갈 때 ‘옥수수밭이 있네’,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데 나랑 북한에서 온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 옥수수밭을 보면 ‘옥수수가 잘 됐네. 저 집은 좋겠구나’, 비가 오면 ‘농사 짓는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생각한다. 또 남한 여자들은 김장 담구는 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만 (북한에서 온) 내 아는 언니는 어딜 갔는데 김장을 담구는 모습이 보였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 우리 집도 김장해야 하는데, 고춧가루 어디에서 살까' 걱정했다고 한다. 북한 여자들은 어린 나이에도 다 집안 걱정을 되게 열심히 한다. 그런 부분이 남한 사람들과 다르더라. 그래서 그때 남자친구가 나한테 ’넌 되게 다른 여자와 다르다. 나이는 어리지만 뭔가 애늙은이 같다‘고 하더라.”

-그 남한 남자친구는 아직까지 만나고 있는 건지.

“아니,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바쁘니까 (남자친구를) 못 만나고 있다.”

-6월에 아라 씨 이름이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관련 기사가 엄청나게 나왔었는데, 그때 주목받았던 게 얼굴이 예뻐서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부담스럽다기보다는 행복하다. 관심을 받고, 이런 건 처음 겪어보는 거지 않느냐. 신기하기도 하고. 좋고, 행복하다. 그냥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너무 좋은 것 같다.”

-다른 이야기다. 탈북민들이 남한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가 경제적 지원은 해주는데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지 때문이라고 하더라. 아라 씨도 그런 것들을 느꼈는지.

“느꼈다. 그냥 ‘멘토처럼 뭔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게 멘토가 있었다면 정착이 더 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남한 사회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 않느냐.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고, 꿈이라는 건 북한에선 가져볼 수가 없는데 그 꿈을 여기에 와서 다시 만들어가야 하지 않느냐.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북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냥 끼니를 때우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인데, 실은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게 꿈이지 않느냐. 목표, 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 같은 것. 그런 걸 생각 못 했다. 전혀 못 했다. 난 이제야 그런 걸 조금씩 깨달아 가는데, 처음엔 그게 중요한 걸 몰랐었다.

이제 조금씩 대학생들이 더 많이 오지 않느냐.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한테 꿈과 비전을 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멘토라든가, 그런 사람을 붙여줘서 그런 사람이 모르는 부분이라든가, 이 사람들이 하고 싶은 분야에 적극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실제 탈북민들이 남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식당 일이라고 하더라. 남자는 일용직. 기술도, 전문지식도 없이 넘어왔는데, 그걸 알려주는 사람도, 다른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힘들 거다. 막막하고. 옆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조언해주면 그렇게 한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 되게 신기해하면서 하는데, 모르니까 못 하는 거다. 공부도 공부의 중요성도 모르고. 북한에서는 대부분 ‘네 이름 석 자만 알면 된다’,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면 된다’고 부모들이 가르친다. 또 북한에선 공부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인식이 많다. 결국에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게 되니까. 그런데 여기는 지식이 정말 중요하지 않느냐. 공부하는 것. 그 부분의 중요성을 많이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

-처음에 남한에 왔을 때 생계비 지원 같은 게 있는데, 그런 것들은 정착에 많이 도움이 되나.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런데 그건 일시적인 거다. 돈도 국가에서 생계비 얼마씩 나오지만, 그건 금방 끊어진다. 뭔가 오래 갈 수 있는, 이 사람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도록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비전이나 꿈, 이런 것들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그런 부분으로 서포트를 해주든가.”

-흔히 고향 떠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게 동향 사람이라고 하더라. 동향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자주 연락을 한다. 왜냐하면 도움도 많이 되고, 그 친구들은 내 상황을 다 이해해주지 않느냐. 같이 경험했으니까. 그래서 더 힘들고 할 때 남한 사람들보다는 같은 고향 친구들을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가끔 만나서 같이 공부할 때도 있고, 수다를 떨 때도 있다.”

-아라 씨를 보면 정착에 잘 성공한 것 같다. 반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남한에 정착할 계획을 갖고 있는 탈북민들도 많다. 그 사람들에게 정착에 먼저 성공한 선배로서 조언 좀 해달라.

“사실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 힘들다. 그런데 그건 결국 본인이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노력을 하든, 안 하든 다 똑같다. 그러니까 노력 없이 살았는데, 여기에선 공부도 하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내가 일한 만큼,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곳 아니냐. 그 부분을 잘 이용해야 하는데, 아직 그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걸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도 한국 오자마자 공부 시작해서 자격증도 따고,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산 것만큼 주변에서도 인정해주지 않느냐. 국가에서 주는 돈은 일시적인 거다. 그 돈을 다 쓰면 나중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건 냉정하게 말하고 싶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뛰어야 한다.”

-5년이란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게 많을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연기 쪽을 하고 싶다. 그래서 매일 아침 발음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내가 학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핵심 부분만, 족집게처럼 시험에 나오는 문제만 공부하다보니까 지식이 띄엄띄엄, 이빨 빠진 것처럼 돼있다. 내 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너무 와 닿더라. 그래서 그 지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게, 아침 6시에 일어나면 내가 크리스천이라 말씀을 보고, 운동을 한다. 운동을 해야 오늘 하루 살아갈 수 있는 기력이 생기니까. 그리고 신문을 보고, 밤에 스케줄 다 마치고는 씻고 저녁에 책을 본다. 두 시간 정도. 그래서 일주일에 한 권은 읽자고 해서 1년이면 50권을 읽자는 목표를 세웠다.”

-책은 주로 어떤 책을 보는지.

“주로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보고,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랑 연관된 내용의 책을 좀 많이 보고 있다.”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에 말한 헤어디자이너 꿈은 접은 건가.

“아니! 접지 않았다. 그것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나이가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이 있지 않느냐. 지금은 방송이나 연예 쪽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 내 샵을 열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원장이 될 거다. 그 꿈은 절대 접지 않았다. 가지고 갈 거다.”

-비교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들이 보통 군대에 가면 제대하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면 1번 나이트클럽, 2번 여자친구 만들기, 3번 여행 등.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공부랑 일만 해왔다. 그래서 한 번도 해외로 나가보지 못했다. 미국에 가보고 싶고, 베를린장벽도 가보고 싶다. 가보고 싶은 데가 정말 많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이 다 좋을 순 없을 것 같다. 생활하면서 ‘이건 좀 별론데...’ 싶은 부분은 없었는지.

“음... 교통이 별론 것 같다. 차랑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강남 쪽에 올 때마다 느끼는데, 운전을 하면 항상 길이 막히지 않느냐. 그래서 빨리 통일돼야 한다(웃음). 통일이 돼야 차가 나눠져서 도로가 뻥 뚤릴 것 아니냐. 북한 쪽으로도 가고 사방으로. 그래야 차가 안 막힐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탈북 방송인 김아라.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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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j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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