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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향한 '끈질긴 사랑' 은수미


입력 2016.02.25 16:38 수정 2016.02.25 17:26        이슬기 기자

<4.13 도전! 여성 비례를 만나다 ⑤> 은수미 "매일 매순간 더 절실해지는 나의 중원"

코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에서 여풍(女風)이 심상찮다. 여야 모두 여성 정치인 증가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이전보다 많은 여성이 총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통상 ‘지역구’는 여성에게 ‘험지’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상당수 여성 정치인의 등용문은 ‘비례대표’다. ‘데일리안’은 이번 총선에서 등용문을 넘어 지역구 개척에 나선 여야 비례대표 의원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절실했다.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폐렴과 심장판막 이탈증을 얻은 그 때, 절대자가 자신에게서 죽음을 비껴가게 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중원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성남 중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안경 너머 두 눈이 빛났다.

사회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하던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54)은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노동 전문가의 입지를 굳혀왔다. 동료 의원들조차 "진짜"라고 인정하는 당 을지로위원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입법 활동을 벌이다가 '강경파', '독고다이'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그는 특히 24일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에 나서 '10시간 18분'이라는 최장 기록을 세웠다. 전날 당 비공개 회의에서 테러방지법 부칙만 수정해 적절한 선에서 통과시키자는 일부 의견이 나오자, 은 의원 등이 나서 "끝까지 해보자. 무제한토론을 하겠다"며 의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나흘 전 기자를 만나 주민과 동료 의원들에게 매순간 절실함이 전달되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지난 재보궐 선거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성남 중원에 두번째 출사표를 던진 그는 중원을 '끈적끈적한 진짜 도시'라고 했다. 지역에 아무 연고도 없는 고스펙·화이트칼라 외부인의 세레나데가 수락될 리 만무했다. 현역 의원이 경선에서 떨어지면 대부분 출마를 접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중원을 놓을 수가 없다. 돌아갈 데가 없다"며 웃는 은 의원 뒤로 집무실을 빼곡히 채운 노동 관련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19대 국회 내내 숨가쁘게 뛰어왔다. 소회를 이야기해달라.

정치에 대한 불신을 19대 국회로 끝내고 싶다. 의원들이 뭐 대단한 걸 하겠나. 사실 답은 내가 아니라 주민들이 이미 갖고 있다. 단지 그 답을 구현할 방법이나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정치를 원하는 거다. 그 대책을 현실과 연결해서 실천해주는 역할. 국회가 그 역할을 한다면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래서 정치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들이 많아지지 않겠나.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조금씩 바뀌는 거라 생각한다. 내가 답을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 답을 받아서 길을 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을 죽어라고 하면서 돌아다닌다. 19대 국회에서 다들 나한테 왜그리 미친듯이 하냐고 물어보면 그렇게 답한다. 

- 성남 중원에 두번째 도전장을 냈다. 

우리당이 '진짜가 나타났다'는 팟캐스트를 했었다. 그 슬로건 그대로다. 중원구는 '진짜'를 원한다. 사회적 약자편에 서서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을 뒷받침할 전문성이 필요하다. 난 사회적 약자와 노동 분야 전문가로 중원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곳에서 경선에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이 중원을 야당 텃밭으로 생각하고 한번 시도했다가 안되면 떠나버렸다. 난 현역으로서는 최초로 경선에서 두번이나 진 사람이다.(웃음) 그래서 주민들이 당연히 '떠나겠지'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난 이미 돌아갈 곳을 없애버렸다. 정치인들은 선거 떨어지면 돌아갈 곳이 있지만 이분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살든 죽든 중원이다. 그런 절실함이 없이는 중원이 받아주지도 않고, 일할 수도 없다. 지역 다니다보면 나를 지지하는 분들이 단 한가지 부탁하더라. 또 속는 셈 치고 찍을텐데 은수미 당신만큼은 '안 속았구나'라는 마음이 들도록 해달라고. 중원은 정말 약자의 편에 서서 나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런 영혼을 가진 도시가 중원이고, 나와 꼭 닮았다. 내게 중원이 간절한 이유다. 그래서 '진짜가 나타났다'라는 슬로건을 보여드렸을 때 참 좋아하셨다. "너 정말 진짜인지 한번 보자"고. 

- 지역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을 소개해달라.

아이들이 다닐만한 안전한 보행 통로가 부족하다. 중원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 짜리가 혼자서 대로변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한번은 출근길 인사를 드리는데, 어떤 할머님이 손녀를 데리고 나와서 횡단보도를 건너게 하고 그 뒷모습만 하염없이 쳐다보시더라. 다가가서 무슨 일이냐고 여쭸더니 그 분이 "손녀가 학원가는 대로변이 너무 위험한데 나는 일을 가야해서 데려다줄 수가 없다. 이게 우리 현실이다. 정치 잘하라"며 가셨다. 눈물이 왈칵 났다. 내가 진짜 똑바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중원은 개발을 다 마치고 도시가 된 곳이 아니다. 35만명이 강제이주된 도시이고, 이주민들이 만든 도시다. 그 개발 이익을 누군가는 가져가고 정작 본인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여길 지켜왔다. 즉 골목골목을 다 그대로 두고 개발해야하는 곳이다. 산길과 하천을 다 없애고 산꼭대기까지 오직 집만 있다. 우아하게 하천 복원사업을 하는 곳도 있지만, 여긴 반지하를 없애자고 하면 곧 죽음이다. 나는 환경도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이 도시의 주민들이 어떻게 하면 보편적 권리를 갖고 안전하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는 내 남은 평생의 과제다. 난 이걸 위해 살 거다. 그렇기 때문에 중원에 대한 사랑도 더 커진다. 매일 매시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 임기 동안 25개의 법안을 발의하고 6개가 통과됐다. 대표 법안이나 꼭 처리돼야 할 법안이 있나.

제일 첫번째가 노란봉투법이다. 20대에선 어떻게든 통과시킬 거다. 손해배상 때문에 삶이 무너진 사람들을 위한 법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사례가 없고, 아무리 찾아봐도 1800년대에나 있던 일이더라. 최근 국제심포지엄이 있었는데 손해배상을 이용해 파업노동자를 탄압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외국 연구자들이 굉장히 신기해하더라. 실제 노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용이 적은 미국과 영국조차 이런 사례는 없다. 손해배상으로 매년 1000억 이상이 부과된다. 노란봉투법을 통해서 돈으로 파업권을 없애려는 경영전략을 없애고 싶다. 그래서 난 20대 때 꼭 당선돼야한다.(웃음) 이게 가장 급하다.

둘째는 분리과세법이다. 서민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재벌과 대기업이 정당하지 않게 벌어들인 소득을 서민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거다. 보통 국민들이 이자나 임대료 등으로 돈을 벌면 38% 세금을 떼는데, 기업은 22%만 뗀다. 물론 생산적인 투자에 대해선 22%만 뗀다 하더라도 나머지 비생산적인 투자, 예를 들면 돈을 쌓아놓고 대출을 해주거나 임대수입을 얻는 등에 대해선 일반 국민들과 똑같이 38%를 제대로 떼자는 거다. 그리고 비정규직 관련 3법도 냈는데 단 하나도 통과가 안됐다. 이것도 다시 낼 거다. 꼭!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그토록 애정을 쏟는 이유가 뭔가.
 
비정규직이란 게 정상 상태일 수는 없지 않나. 정규직으로 뽑되 수습이 있던거지,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인턴부터 뽑고선 맘대로 해고를 해왔나. 우리 기업들은 청년들이 각자 알아서 스펙을 쌓아오게 하고선 돈 한푼 안들이고 그 우수한 인력을 채용한다. 그러면서 또 대졸 신입사원 임금을 깎자고 한다. 이 사회는 아이가 태어날 땐 명품인데 졸업할 땐 비용이 되어버린다. 수많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등수, 연봉, 아파트 평수 등 숫자로만 기억된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포털에 '청년'을 검색하니 '글자수세기'가 나오더라.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 때까지 말 잘듣고 공부만 하고 얌전하던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공장에 처음 들어갔다. 1년 6개월 정도 있었다. 처음엔 노동 운동을 하기 위해 배우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나중엔 그 사람들과 거기서 본 것에 내 인생을 걸게 됐다. 난 20대때 모든 열정을 다 쏟았다. 더 쏟을 게 없을 만큼. 그런데 50대가 돼서 이런 열정이 다시 생길 줄 몰랐다. 그때 공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마음으로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에게 항상 속으로 묻는다. '지금 잘 살고 있어? 아니지?'라고. 그게 나를 지금 버티게 한다.

- '당선'이 아니라 '중원구 당선'에 대한 절실함이 느껴진다. 

이곳이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만약에 당선되면 뭘 할까, 어디부터 찾아갈까를 자주 상상한다.(웃음) 내 지역 사무실은 주민들이 모여서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당선이 되면 지하철역 앞에서 "주민카페 열었어요"라고 외치며 안내문 드리는 상상도 한다.(웃음) 

감옥에서 고문 받고 폐렴에 결핵, 나중엔 장 절제술도 받았다. 난 그때 내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하늘이 날 안죽이더라. 나는 그게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중원에 내 남은 인생을 바쳐서 내 간절함과 전문성, 성실함을 쏟으라는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세상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제대로 써줬으면 좋겠다. 그럴만한 전문성, 간절함, 성실함이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때는 새로운 길을 걷고 싶었다면, 50대가 되어서는 그 길을 만들고 싶다. 거기에 내 남은 온 힘을 쏟아붓고 싶다. 

초선 비례대표. 거기에 여성 의원. 체구도 작다. 하지만 대여 투쟁에 나서는 '맷집' 만큼은 은 의원을 따라올 사람이 많지 않다.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동료 의원들이 '독한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느냐고.

정치권와서 "공천받으려면 최소한 줄은 설 줄 알아야지"란 말까지 들었다. 공천이란 게 결국 줄인데, 나처럼 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떨어진다고 했다. 근데 난 내 식대로 한 번 돌파해보려고. 절실하면 주민이든 정치인이든 감동시킬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내 동료 의원들이 "쟤는 정말 간절한가보다. 내가 쟤랑 생각은 다르지만, 저런 동료 의원 하나 있는 것쯤은 나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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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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