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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차기 리더십은 공공성, 민주적 가치, 국정능력 필요"


입력 2017.01.06 00:47 수정 2017.01.06 10:00        고수정 기자

"대통령 권력, 나눌수록 커진다…여당과도 나눠야"

"한국에 진짜 보수 있었나…재정립 아닌 정립이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6년,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100만 촛불은 역사의 퇴행을 멈추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는 국민의 주권 의식을 각성시키고,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특히 10년간 쌓여온 보수에 대한 피로감은 근본적 가치와 그들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졌다. 촛불은 끝없이 타오르고 있음에도 보수는 정작 진영 논리에 갇혀있다.

그래서일까. 정치권의 ‘책사’ 윤여준(78) 정치연구원장은 “대한민국에 보수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윤 원장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보수의 가치를 정립하고 올바르지 못한 민주주의 하에 구조의 폐해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4일 여의도 집무실에서 만난 윤 원장은 광화문 광장 한편을 수놓은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글귀를 되뇌었다.

지금 필요한 리더십 '공공성 인식', '민주적 가치 내면화', '국정수행 능력'

-초유의 사퇴로 리더십이 붕괴됐다.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과연 무엇인가.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국가는 거대한 정치 공동체인데, 이를 묶어 주고 유지 시켜주는 핵심 가치는 ‘공공성’이다. 공공성을 빼놓고 국가를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5명의 대통령 모두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민주화 이후의 역대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권력의 사유 의식 때문이다. ‘권력은 내 것’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권력을 남용하고, 정실 인사를 한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부패가 올 수밖에 없다. 공공성을 깡그리 무시한 거다. 새로 등장하는 사람은 국가를 묶어주는 핵심 가치인 공공성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선 공인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두 번째는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다. 민주주의 국가는 정치를 통해서 국가를 통치하고, 국민의 의사를 정당의 생산적인 갈등을 통해 관철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러 의사를 대화와 타협, 끝내 안 될 때는 다수결로 결정한다. 그 과정이 민주정치의 과정이고 국민통합이다. 대통령이 민주적 가치를 모르면 정당을 무시하고 국회를 지배하려고 한다. 집권당은 통치 수단으로 써먹으려 하고,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도 말할 것 없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민주적이어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완전히 정반대로 갔다. 박 대통령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통치하려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들어야 하고 5천만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다 들을 순 없으니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여야의 말을 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를 인정한 일이 있는가. 정당도 인정한 일이 없다. 이것부터가 민주적이지 않은 것이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다. 민주적 가치가 내면화돼 있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세 번째는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국정의 중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의견을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소양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분야의 좋은 사람을 쓸 수 있다. 참 불행한 게 박 대통령은 국정을 이해할 능력이 거의 없어 보인다. 대면보고를 받지 않은 건 국정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다. 각료와 만나서 보고받다가 본인이 모른다는 게 노출되는 걸 자기도 원치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이해했다. 다만 소양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 엄청난 독서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등장해야 하는데, 과정과 노력이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 된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대통령 '소통'의 첫걸음은 집권당과…"권력 나눠줄수록 오히려 커진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역대 대통령에 대한 ‘불통’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집권당을 무력화시킨다. 권력을 나누면 자신의 권력이 약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통은 집권당이 하는 거다. 전국 조직이 있고, 국회의원이 있고 지구당이 있는데 이들이 대통령을 대신해서 국정을 설명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국정을 반영하고,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소통의 가장 큰 통로를 막아버리면서 소통을 한다고 국민 앞에 서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집권당을 활성화하면 국민 속으로 들어가고, 야당과 협상하는 힘이 생긴다. 대통령의 권력은 나눠줄수록 커진다. 이와 연관해 정당이 그 속에서 오래 성장한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야 한다. 정강·정책이 몸에 배어 있고, 국민을 대변해왔고, 성장한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정책의 연속성이 생긴다. 참신성이 국정 능력을 보증해 주는 건 아니다.”

-국가 리더십은 물론 보수도 많이 무너졌다.

“한국에서 무너지고 개혁할 보수는 이제껏 없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수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특수 사항이 만들어 낸 것으로, 반공주의, 국가주의, 성장주의를 중심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이 보수를 자처한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는 아니다. 최소한 보수로 정의되려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를 존중했어야 한다. 한국의 보수는 이걸 존중한 적이 없다.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탄압하고, 민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그래서 나는 ‘수구세력’이라고 부른다. 뭐가 없어지고 뭐가 무너지고 뭐를 고치느냐, 이제 이번 100만 촛불을 계기로 한국 보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재정립이 아니라 정립이다.”

"늘 명분은 국가고 국민이지만, 행동은 개인이나 정파 이익만 추구"

-그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선 정파성에 빠지면 안 되지 않나?

“정치하는 사람에게 ‘정파성을 버리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정파라는 게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에 따라 생긴 정파가 아닌 순전히 이해관계로 생겼다는 것이다. 저 사람들의 행동 기준은 늘 공공을 팔아서, 다수를 팔아서 소수의 이익을 챙기는 민주주의의 모순을 내재했다. 늘 내세우는 명분은 국가고 국민이지만, 행동은 개인이나 정파 이익만 추구했다. 그렇기에 국민이 현 정치권을 완전히 버린 것이고, 대의제가 완전히 망가졌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많은 세력이 생기고 있지만, 그 어떤 세력도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기존 것만 제대로 잘 지키면 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보수가 집권하는 데 진보가 계속 도전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수가 지지를 받으려면 끝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진보의 영향을 받아서 보수가 건강해진 것이다. 모순이 쌓이면 국민이 진보의 가치로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그럼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보수가 도전하는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사이에 국가는 발전하고 국민 생활은 윤택해진다. 정치, 정부, 국가가 왜 있어야 하느냐. 속된 말로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자고 있는 것으로 목표가 같은데 보수와 진보가 싸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유럽은 보수와 진보라고 불리는 정당의 정강·정책이 다 비슷해졌다. 방법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수 재정립'이 아닌 '정립'…자유민주주의-법치 제대로 존중해야"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있는 ‘벽’은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가.

“국민 요구를 받아들이면 된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군중을 보면서 희망, 낙관을 갖게 된 게 ‘내가 나라의 주인이다’ ‘국민 주권이다’라는 각성이 생겼다고 본다. 세종문화회관 벽에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써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얼마나 평범하지만 옳은 말이냐. 나와 나 자신의 삶이 이렇게 피폐했던 이유가 구조에 있었던 것을 이제 깨달은 거다. 그동안 지배세력이 ‘끊임없이 네 탓이야’라는 인식을 심었다. 앞으로 이 각성이 한국 사회를 엄청나게 바꾸는 에너지가 될 거다.”


-이러한 민심이 향후 대선에서는 어떻게 폭발할 것으로 보는가.

“이번에 모인 군중은 ‘박 대통령 퇴진’이라는 것에만 의견이 모인 것으로, 그 이후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이것이 87년과 다른 점이다. 당시엔 대통령 직선제라는 헌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절차가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탄핵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가 없었다.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은 몇 갈래가 갈라질 거라고 본다. 생각이 달리 표출되면 100만 군중이 몇 갈래로 갈라질 것이다. 그걸 기다리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유력후보 중 식견, 지혜, 용기 출중한 분 없어…누가 대통령되더라도 심각한 위기"

-이번 대선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누가 되든지 관심이 없다. 왜냐면 현재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몇 분 중 누가 되더라도 별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앞으로 닥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이걸 극복하려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어야 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식견과 지혜와 용기가 출중해야 하는데 그걸 갖춘 분이 지금 유력한 후보 중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된들 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거다. 또 과반이 찬성하지 않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고, 국회 세력 분포도 어느 한쪽이 쉽게 승복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이런 우려를 보완할 방법이 개헌일까.

“헌법을 개정한다고 별안간 인물이 떨어지느냐. 국민은 정치세력이 개헌을 재편 수단으로 쓴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이 쉽게 동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개헌 내용으로 들어가면 정치권에서도 다 갈라질 것이다. 합의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대선 전 개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고, 저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국민적 합의를 구해가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중심 가치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 그건 각자가 결정할 일이야. 이런 과정 없이 헌법만 고치고, 권력구조만 바꾸자? 논의 기간이 무한정 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6개월, 1년이라도 현행 헌법의 모든 문제를 다 내놓고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 과정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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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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