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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를 목놓아 부르는 제주도 동생의 눈물


입력 2017.09.03 07:34 수정 2017.09.03 04:38        데스크 (desk@dailian.co.kr)

<어느 퇴직부부의 신나는 제주여행>

올래 12코스 중 수월봉, 용수성지, 김대건 신부님 표착기념관 탐방, 정난주 마리아의 묘(대정성지) 참배, 모슬포성당, 전쟁기념관

【1.12(화), 열여섯 번째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 파견 미사에 참석했다.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아일랜드 출신의 이어돈 미카엘 신부님이 3일째 미사를 집전하셨다. 한국말이 좀 어둔하면서도 조곤조곤 말씀하시면서 사례를 들어 강론해 주시니 잘 이해가 된다. 오늘 아침에는 기도 할 때 예수님이 걸어오셔서 내 뒤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하면 아주 실감 날 것이라는 말씀이 와 닫아 앞으로 그렇게 해 볼 계획이다. 또 영성체를 모시는 중에 꽁지머리 실장님과 수녀님께서 합창해서 불러주신 성가는 목소리가 너무 곱고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성가가 그렇게 감미롭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너무 감동적이었다.

수월봉 입구 고산 선사유적지 부근 바닷가 풍경. 멀리 보이는 섬은 ‘차귀도’다.ⓒ조남대 수월봉 입구 고산 선사유적지 부근 바닷가 풍경. 멀리 보이는 섬은 ‘차귀도’다.ⓒ조남대

이번 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우고 가는 것 같다. 아침밥 먹으면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여행 중에 제일 잘하고 또 좋았던 것이 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2박 3일 일정의 피정 기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다. 오늘도 식사하고 9시 반에 김대건 신부님 표착기념관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수월봉 입구로 이동했다.

수월봉은 이미 구경을 한 곳이고, 지난번 수월봉 입구 제주지질공원에 갔을 때 해안도로를 따라 한번 걸어보고 싶었지만 자동차가 있어 걸어보지 못했는데 올래 12코스 중 일부분인 이 길을 걸어서 김대건 신부님 기념성지까지 순례하는 것이다. 또 수월봉과 해안지질공원은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될 정도로 멋있고 걸어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걷다 보니 수월봉 갱도진지도 있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도 전역에 일본군 군사시설이 구축된 곳이 370여 개의 오름 가운데 120여 곳에 이르는데 수월봉 해안에는 미군이 진입할 경우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하여 전함을 공격하는 일본군 자살 특공 보트와 탄약이 보관되었던 곳이란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눈물과 같다하여 ‘누이를 목 놓아 부르는 동생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바위.ⓒ조남대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눈물과 같다하여 ‘누이를 목 놓아 부르는 동생의 눈물’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바위.ⓒ조남대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과 성당.ⓒ조남대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과 성당.ⓒ조남대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중국 상해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 타고 오셨던 배를 고증을 통해 복원한 배.ⓒ조남대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중국 상해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 타고 오셨던 배를 고증을 통해 복원한 배.ⓒ조남대

탁 트인 바닷가 올래길이 너무 멋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날아갈 것 같은데 이 정도 바람은 제주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란다. 가다 보니 ‘누이를 목 놓아 부르는 동생의 눈물’이라는 곳도 있다.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을 두고 이렇게 이름을 붙여진 모양이다. 차귀도 선착장을 지나서 당산봉을 넘어 용수성지인 김대건 신부님 표착기념관에 도착했다. 얼마 전에 방문해 보았고 또 지난 일요일에는 미사도 드렸던 성당이며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배 모양으로 된 2층 건물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등 일행 13명과 ‘라파엘호’를 타고 오다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이곳 용수해안에 표착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첫 미사를 올린 것을 기념하여 성당과 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과 제주도에 천주교가 전파된 과정 등이 자료와 함께 잘 전시되어 있다. 또 외부에는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중국에서 건너올 때 타고 오신 ‘라파엘호’의 모형(10톤 정도의 나무로 만든 범선)을 고증을 거쳐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12시에 기념관을 출발하여 피정 센터로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고 각자 짐을 정리한 다음, 2시에 대정성지에 있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를 순례하기 위해 피정 센터를 떠났다.

센터의 모든 직원의 환송을 받으며 2박 3일간 정들었던 피정 센터를 우리는 승용차를 몰고 버스 뒤를 따라 떠났다. 정난주 마리아는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 부인으로, 정약전・정약종・정약용 등의 형인 정약현과 이벽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이다. 황사영은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정조대왕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영특한 인재였으나, 이승훈・정약종 등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 과거를 포기하고 교회 일을 도왔다.

정난주 마리아는 결혼 10년째인 1800년에 아들 경한을 낳았으나 황사영이 백서사건으로 1801년 11월 5일 능지처사 판결을 받자 연좌제로 인해 전라도 제주목 대정현의 노비로 유배되었으나, 관비를 담당하던 관리로부터 인품을 높이 사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기도생활을 하였으며, ‘한양 할머니’라고 불리면서 양어머니와 같이 봉양을 받다가 1838년 2월 1일 65세로 사망한 뒤 130년이 지난 1973년 무덤을 찾아내 1994년 대정성지로 조성되었단다.

우리는 수녀님으로부터 정난주 마리아 할머니에 관해 설명을 들은 후 잘 단장된 무덤에 손을 얹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드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2박 3일간의 피정을 마쳤다.

수녀님과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한 후 버스에 탄 사람들이 제주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을 우리는 주차장에 서서 손을 흔들어 환송한 후 버스를 뒤따라 나오다 헤어졌다. 많이 섭섭하고 허전했다.

모슬포성당 모습.ⓒ조남대 모슬포성당 모습.ⓒ조남대

우리집으로 오다 전번에 만난 후 다시 연락드리기로 한 평화박물관의 이영근 관장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5시 이후 박물관에서 보잖다. 만날 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 모슬포 시내로 나가 어렵게 마트를 찾아 유선 마우스와 라면・티슈 등 필요한 물품을 사고 모슬포성당을 방문했다. 시골성당이 참 예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모슬포시장을 둘러보았다. 조그만 상설 시장이다. 호떡을 하나씩 사서 먹으며 둘러보았지만 별로 살만한 것이 없다.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평화박물관에 도착하여 조금 기다린 후 일을 마치고 나오는 이영근 관장을 박물관 안 대기실에서 만났다. 끈기와 패기가 있어 보인다. 박물관 운영 등과 관련한 이야기와 정방폭포 옆 서복전시관 개관과 관련하여 자신이 많이 기여한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3일 만에 우리 숙소에 왔다. 바깥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방이 많이 쌀쌀하다. 방 보일러 온도를 높였지만 별 차이가 없어 귤차를 끓였더니 온도가 확 올라간다. 방바닥은 따뜻하지만 공기가 차가우니까 추위를 느낀 모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우리집에서 잠을 자니 좀 더 푸근한 것 같다. 우리집이 그래서 최고인 모양이다.

글/조남대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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