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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민의 ‘스투핏!‘이 우리에게 준 통쾌감


입력 2017.09.11 06:01 수정 2017.09.11 07:26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스타들 허위의식 깨고 알뜰한 서민들에 위로

'김생민의 영수증'의 김생민이 정색한다.ⓒKBS '김생민의 영수증'의 김생민이 정색한다.ⓒKBS

리포터 김생민에게 제1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는 1992년에 KBS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연예인들이 기피했던 리포터에 도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동료 연예인들이 스타가 되는 모습을 보며 조역에 머물러 온 것이다. 그런 그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건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을 갖게 됐다. 바로 KBS '김생민의 영수증‘이다.

‘영수증’은 송은이와 김숙의 인터넷 개인 라디오 방송인 팟캐스트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프로그램에 김생민이 경제 자문위원으로 출연했는데 인기가 커져 김생민 단독 팟캐스트로 독립했다. 여기에 폭발적인 호응이 나타나자 지상파 방송사가 정규 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수증’은 과소비 근절 돌직구 재무상담쇼를 표방한다. 시청자가 보내온 영수증의 항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낭비요소를 적발하고, ‘스투핏!’이라며 시청자를 꾸짖는 내용이다. 최근엔 60대 시청자가 거실에 에어컨이 있는데도 안방용으로 또 샀다고 하자, ‘두 손 모아 공손한 스투핏’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김생민이 주장하는 건 철저한 절약이다. 생활습관을 조금 바꿔서 한 달에 몇 십만 원을 저축할 경우, 3년 후 얼마의 돈이 생기는 지 그 자리에서 계산해 알려주는 식이다.

사람에겐 자신의 나태한 생활습관을 누군가가 매섭게 지적하며 교정해주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 설사 그런 지적으로 습관이 바뀌지 않더라도 한 순간이나마 반성의 기회를 갖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김생민이 그런 반성을 이끌어내는 지적자의 역할로 등장한 것이다.

누구나 아는 내용이지만 김생민이 말할 때 힘이 실리는 것은 그가 바로 절약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별명이 ‘공무원’이었을 정도로 각종 프로그램에 개근하다시피 하며 얼마 안 되는 출연료를 차곡차곡 모아 여러 적금에 부었다. 은행 직원과 친해질 정도로 수시로 상담하며 갖가지 통장을 개설해 ‘통장요정’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재테크 연구로 책을 내기도 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이젠 웬만큼 재산을 모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과정이다. 명색이 연예인인데 16년 동안 양복 세 벌과 구두 세 켤레로 방송 생활을 했다는 식의 짠한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껌과 사탕도 누가 줄 때만 먹었다고 한다. 커피전문점 커피는 물론 안 마신다. 20년 이상 을의 처지를 견디며 살아온 김생민을 보며 시청자들은 일체감을 느낀다.

자기 자신에겐 인색하지만 타인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 호감이 커졌다. 정상훈은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 김생민이 찾아와 봉투를 내밀곤 했다고 증언했다. 무명 후배들에게 자신은 사먹지 않는 커피전문점 커피를 사주거나 일자리를 알아봐주곤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무명 후배 생일까지 챙겨줬다고 한다. 제작팀 식사 자리는 보통 PD와 유명 연예인 위주로 대화가 흘러가서 무명 방송인은 아예 존재감이 없는데, 김생민이 나서서 그들이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주곤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한 명의 ‘파도미’(파도 파도 미담) 주인공이 탄생한 것이다.

얼마 전엔 이상민이 빚을 갚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궁상민’ 캐릭터로 떴다. 이상민은 한때 비호감 연예인이었지만 이젠 절대 호감남이 됐다. 이상민이 비호감 캐릭터였다는 사실 자체를 사람들이 기억도 못할 정도다. 반면에 연예인 금수저 논란이 뜨거울 정도로 화려하게 누리는 연예인 가정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그래서 짠한 서민성을 보여주는 연예인에 대한 공감이 커진 것이다.

그동안 방송에서 다양한 트렌드를 소개하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그에 따른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런 삶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확산 됐다. 욜로족이 돼서 여행 다니고, 그루밍족으로 외모를 가꾸고, 키덜트족이 돼서 취미물품을 사모으고, 몸짱이 되기 위해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삶이 당연한 것처럼 퍼져갔던 것이다. 그래서 수중에 돈만 생기면 남들처럼 살기 위해 다 써버렸는데 그 사이에 알게 모르게 불안이 커져갔다.

그럴 때 공감형 연예인들이 나타나 트렌드를 쫓는 화려한 삶이 절대로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 알뜰하게 아끼면서 사는 삶도 당당하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생민의 ‘스투핏!’은 허위의식을 깨는 통쾌감을 안겨주면서, 아끼면서 살아온 서민들에겐 안도감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김생민에게 제1의 전성기가 찾아온 이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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