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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짖어도 우리의 지원행렬은 북으로 간다?


입력 2017.09.24 07:14 수정 2017.10.16 10:05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인도적이라도 왜 지금 이시점에 지원해야하나

지원금, 대피소·구호물품 '위기 매뉴얼' 적용이 현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 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북에 지원한다는 800만불(약 91억원)은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시점에 발표한 의도와 그 의미가 문제다. 일본이 ‘정신대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10억엔(약 100억원)을 우리에게 지불했다. 액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대 피해를 액수로 환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책임인정’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다.”

며칠전 만난 한 언론사 간부가 해 준 이야기다. 그러면서 우리 실생활에서 느끼는 우려를 덧붙였다.

“북핵 위협이 강해지고 ‘외국인 소개령’ 이야기가 나오니, 집주변의 유사시 대피시설을 찾아 봤다. 형식적으로 있기는 했지만, 접근하는 방법도 모호했고, 구호물품 배치 등도 없거나 턱없이 부족했다. 개인적으로 비상식량 등을 준비해서 지하주차장으로 피할 수도 있지만, 그 식량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이웃은 곧 최악의 적이 된다.

북핵위기로 인한 국민불안이 가중될 때, 정부가 북에 지원할 800만불을 시드머니로 제대로 된 ‘위기 시 대처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나아가... 대피소에 비상식량, 비상약품 을 비치하는 등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은 도외시 한 채 왜 그냥 ‘안심하고 있으라’고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시장의 안정’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한 ‘시장안정’이 무슨 의미가 있나? ‘설마’하다 엄청난 희생을 유도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을 떠올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 언론인 선배는 정보가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정보부재와 정부 부작위를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세월호’는 우리사회에서 금기어가 됐다. 특정 세력을 공격하는 용도로만 쓸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풀이만 하고 있어서는 그 희생이 너무 아쉽다. 이제 좀 더 냉철히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선배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지금 정부의 행태를 세월호 승무원과 비교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러나, 세월호 뿐 아니라 많은 대형 사고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상기했다. 몇 년 전 이탈리아 인근 지중해에서 전복되어 큰 피해를 입은 대형 유람선이 있었다. 그 배의 생존자들 증언을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 위의 누구도 곧 닥칠 비극을 예상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승무원도 그랬고, 승객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당연히 승무원은 비상상황 대처법을 숙지해야 하고,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형사고 때 많은 책임자들은 피해를 막거나 줄이지 못했다. 금세기 최고의 참사라는 타이타닉호 침몰에서 승무원이 ‘위기를 알리는 전신을 무시해서 대형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며칠전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 갈등은 최고조로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격식도 무시하고 막말을 주고 받으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말만 들으면, 곧 전쟁이 벌어지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그 전쟁이 일어난다면 최고의 피해자는 우리나라와 국민이 될 것이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 문제로 시끄럽다. 문재인대통령 유엔기조연설 직전에 우리 정부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공식화했다. 지원시기는 유보적이었지만, 한·미·일 동맹 간의 갈등은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적전분열’의 빌미를 만든 것이다.

급기야 일본언론은 한·미·일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로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에게 ‘화를 냈다’고 보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정부는 바로 항의했고, 미국의 협조를 구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일본 언론의 행태가 ‘한·미·일 공조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는 의사를 보이고 있지만, 본심은 ‘그 위태로움의 원인이 우리정부의 조치였음을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미국과 일본이 어떤 대화를 나눌지 알 수가 없다.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많지 않은가?

‘인도적 지원’ 자체를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왜 이 시점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은 지울 수 없다. 국내 지지자에 대한 메시지, 북에 ‘평화구설’의 메시지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개는 짖어도 (우리의 지원)행렬은 간다"라는 주장일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유엔연설에서 ‘평화’라는 말을 32번 사용했다. 그 ‘평화’라는 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인도적 지원’의 떡밥을 뿌린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평화구걸’, ‘무개념외교’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800만 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 것은 김정은에게 미처 돌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의 건강과 영양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 핵미사일 개발에만 전념하라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김정은 공범’이라고 비난했다.

현 정부는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게 국내의 갈등을 유발하고 국제관계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 배경에서 안이한 현실인식이 있다. 세월호와 타이타닉, 이탈리아 선박의 승무원처럼... 침몰하면 모두가 너무도 불행해 지는데, 곧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대비하는 책임있는 사람은 없다.

인생수업이라는 책에서 한 구절 옮긴다. '신이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바꿀 수 없는 일을 바꾸려고 귀한 돈을 헛되이 투자(대북 인도적 지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바꿀 수 있는 일에 용감히 투자(대피 메뉴얼과 구호물자 배치 등)를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문재인정부가 세월호의 교훈을 잘 활용하는 지혜로운 정부가 되길 바란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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