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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이게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의 모습인가요?


입력 2017.09.25 09:54 수정 2017.10.16 09:4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한반도 정세는 긴박...유엔에서 촛불 자화자찬만

북핵보다 정적 응징이 우선?…구한말 사색당쟁이 멸망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제72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전쟁은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인간 심성의 가장 비밀스러운 자리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곳은 자아가 이성적인 목적의식을 잊어버리고, 자존심이 모든 것을 지배하며, 감정이 우선하고, 본능이 절대자 노릇을 하는 자리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인 클라우제비츠는 단순히 정치적인 동물이 곧 전쟁을 만든 동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감히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인 동시에 그 사고력이 무엇인가를 사냥하려는 충동과 살해하는 능력을 향해서 발달했다는 사실과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존 키건, 세계전쟁사, 유병진 역)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한 데 대한 키건의 평가 혹은 부연 설명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 대해 ‘합리적’ 설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키건이 볼 때 전쟁이란 인간의 본성에 기인하는 측면이 더 뚜렷했다.

“인류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던 우리 선조들의 이빨과 발톱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야만성이 피부 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위의 책)

자존심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전쟁행위가 개시되기 전까지는 온갖 명분과 이유가 들먹여지고,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가 난무하게 되지만, 공격 명령은 그 논리적 귀결로 내려지는 게 아닐 수 있다.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순간적으로 결정하고 명령한다. 그 짧은 순간을 지배하는 것은 ‘국가‧국익’일까, 아니면 ‘분노’ ‘충동’ ‘자존심’ 같은 것일까?

“참수나 군사공격 기미를 보일 때는 가차 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군사력으로 말하자면 거대한 쇠수레바퀴에 도끼처럼 생긴 앞다리를 치켜들고 덤비는 당랑(螳螂: 사마귀) 격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정말로 자신들에게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각)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이 위협을 받으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다. 그는 “‘로켓 맨’이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김정은을 조롱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은은 22일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라고 맞받으며 ‘사상 최고 초강경 대응’ 엄포를 놨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곧 바로(현지시각 22일)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서의 대중 연설을 통해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지칭하며 말했다.

“우리는 미치광이들이 사방에 로켓을 발사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사실 그는 오래전 클린턴, 오바마 정부 때 처리됐어야 했다. 내가 맡아 하겠고, 정말 그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내가 다루겠다.”

북한 리 외무상의 ‘가차 없는 선제공격’ 연설은 이에 대한 반격이었다. 그는 그 전날 김정은의 ‘초강경 대응’이 ‘태평양상의 수소탄 시험’일 수 있다고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리는 이미 20일(현지시각) 미국 도착 후 숙소에서 트럼프의 연설에 대해 ‘개 짖는 소리’ ‘개꿈’ 등의 표현으로 비아냥거린 바 있었다.

이러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실제로 23일 밤 미국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무력시위를 했다. 괌 앤더슨 기지에 배치된 전략폭격기 B-1B 랜서 2대와 오키나와에 배치된 주일미군 F-15C 전투기 5~6대를 북한쪽 동해의 국제공역에 진입시킴으로써 미군 독자적으로도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우리 대통령은 촛불자랑에 몰두

한반도 군사정세는 이처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암울하고 긴박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인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강도 높은 대북제재 결의안을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실망과 분노’ 표명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핵심 주제는 달리 있었다.

그는 ‘촛불혁명’의 의의를 역설했다. 그게 ‘유엔정신의 빛나는 성취’라고 자평했다. 다자간 안보‧평화기구인 유엔이 개별 국가의 정치민주화를 기본정신으로 하는지는 따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어쨌든 문 대통령은 촛불집회가 얼마나 평화적으로 아름답게 진행됐는지를 감성 충만한 언어로 소개했다. 그는 ‘촛불혁명’을, ‘민주주의와 헌법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어진 광장’으로 그렸다(‘집단지성’이 성난 군중의 대규모 집회에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뜻이겠는데 일개 서생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집권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면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국내 정치변동 과정을 굳이 장황하게, 세세한 묘사까지 곁들여 설명할 필요가 있었을까? 세계 각국의 대표들은 핵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한반도의 남쪽, 한국 대통령의 그 여유로운 자화자찬 연설에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임기 1년도 채 안 남긴 대통령, 군중집회에 속수무책이었던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파괴할 힘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다. 현직 대통령을 군중의 힘으로 당장, 밀어내야 할 만큼 당시 한국 민주주의 파괴의 정도가 급박하고 심각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불과 한세대 동안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회원국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높여왔다”고 자랑했다. 그런 나라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정권의 통치를 받아왔다고 여겨질 법 하지는 않다. 그가 자랑한 한국의 업적이란 바로 그 정부들에 의해 쌓여 온 것 아니던가.

북핵 대응보다 정적 응징 우선?

그는 6.25전쟁의 참상을 회고하면서 “나 자신 전쟁이 유린한 인권의 피해자인 이산가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쟁의 책임은 ‘세계적 냉전구조’에 돌렸다. 북한의 김일성이 아니라 냉전의 두 주축이었던 미국과 27년 전에 해체된 (구)소련 탓을 한 셈이다. 과연 그런가? 그게 좌파적 역사인식의 발로인지, 아니면 남북화해를 염두에 둔 표현상의 기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 선열들, 폐허에서 새 나라를 건설하기에 피땀을 흘렸던 앞 세대에 대한 예의는 아닐 것 같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자칫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미 긴장은 격화될 대로 격화됐다. 바로 김정은 집단에 의해!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화법엔 언제나 미국과 북한, 북한과 미국의 지위가 등치된다.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도 조심하라는 식이다.

북한은 휴전 후 지금까지 긴장을 고조시켜만 왔다. 한번이라도 북한이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했다면 그 증거를 누구든 제시해 보시라. 설령 남북 간 의미 있는 대화가 성립된다고 하자. 저들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할 것이고,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 눈치 저 눈치 본다?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왕따’가 될 뿐이다.

더 어이없는 장면이 지금 우리 내부에서 연출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무모한 핵 장난에 긴장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여당의 관심은 ‘적폐청산’에 꽂힌 분위기다. 직전 대통령은, 파면에 더해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전 대통령까지도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게 될 조짐이다. 적을 제압하는 방법 중에 적장을 무력화시키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그래서 이처럼 각박하게 서두르는 것인가?

시간은 가고 임기는 줄어든다. 검찰의 수사기록과 기소장이 쌓여가는 것에 반비례해서 업적보고서는 얇아지게 된다.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설 것이므로 걱정 없다고 하겠는가? 국민의 청산 피로증에는 백약이 무효다.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고 했다. YS정권의 선례를 기억할 일이다.

조선시대 사색당쟁의 특징도 국가안위를 돌보지 않은 권력투쟁에 있었다. 일본의 침략징후가 농후하다는 것을 함께 확인했으면서도 상반된 보고를 한 통신사들이 선조의 의주파천을 초래했고, 친명친금(청)파 간의 대립이 삼전도의 굴욕으로 이어졌다.

조선 말 왕조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도 권세가들은 힘을 모아 외적에 맞설 생각 대신 친청‧친일‧친노 등으로 갈라져 파벌 싸움에만 몰두했다. 그 와중에 대원군이 청나라에 잡혀갔는가 하면 왕비가 일인에 의해 시해당하는 모욕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남의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하는(아관파천) 수모를 당했고 결국 국권을 강탈당하는 치욕을 맛봐야 했다. ‘내편 네편’으로 나뉘어, 차라리 나라를 빼앗길망정 정적에게 정권을 내 줄 수는 없다는 그 권력집착증이 21세기의 ‘촛불혁명’ 시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도 여전하다. 이게 한국 정치인들의 DNA인 것일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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