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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동맹 깨면 전쟁 안나는 게 확실한가요


입력 2017.10.02 06:24 수정 2017.10.16 09:49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레드 라인' 넘어버린 문정인 튀는 발언 허용

미국 갖고 있어도 겁안내는 전작권에 집착하는 패착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2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반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27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한반도 위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18일 저녁 서울 명동 유세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국민통합 21 정몽준 대표 측의 김행 대변인이 이날 밤 ‘지지철회’를 선언하면서 밝힌 이유다. 정 대표 측 지지철회의 진실은 달리 있었다고도 했지만 어쨌든 노 당시 후보의 그 말은 대단히 효과적으로 축약된 진보세력 측의 ‘진심 선언’이었다는 느낌을 15년쯤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갖게 된다. 노 정부 때나 마찬가지로 현 정부도 미‧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 상황에 대해, 마치 중재자처럼 말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역대 진보정권의 모모한 인사들이나 그 지지자들의 말과 표정에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거북해 하는 빛이 그대로 묻어났었다. 이들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현실, 그들이 우리 군과 합동 군사훈련을 함으로써 북한 지배자들의 심사를 긁어 놓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곤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미동맹 깨지는 한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한다.”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가 지난달 27일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11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보도다. 남의 말을 전하듯이 했다. 그렇지만 기실은 그 자신의 생각이었을 터이다.

미·북 싸우면 우린 말린다더니

우리가 미국과 공격·정복 동맹이라도 맺고 있다는 것인가. 또 다시 북한 김일성 집단의 남침으로 인해 참혹한 희생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소망으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미국에 사정사정해서 얻어낸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다. 그 과정에 ‘독자적 군사행동’의 엄포도 놨었다. 이른바 ‘대미 공갈외교’였다.

마침내 53년 8월 8일 경무대에서 이 대통령, 백두진 국무총리 및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변영태 외무장관과 존 F. 덜레스 미 국무장관 사이에 방위조약이 가조인됐다. 이렇게 마련된 방어벽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조인으로부터 64년여 후의 한국에서 대통령 핵심참모의 입을 통해 “동맹이 깨지는 한이 있어도”라는 말이 나오다니!

하긴 “집안싸움인 통일내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테고 우리가 실제 겪었던 그런 살상과 파괴라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05년 8월 27일 강정구 당시 동국대학교 교수는 “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전쟁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한 약 400만 명에게 미국이란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생명을 앗아간 원수”라고 단정했다. 그는 “우리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왕건이나 견훤을 침략자로 매도하지 않고 오히려 왕건은 통일대업을 이룬 위대한 왕으로 추앙한다”는 참으로 희한한 주장도 보탰다.

이로 인해 시작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 지휘(10월 12일)를 했고, 이에 반발한 김종빈 검찰총장이 이틀 후 사직원을 제출했다. 좌파적 사상을 공공연히 피력하곤 했던 대학교수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검찰총장을 희생시킨 것이다. 노 정부 대북인식의 한 단면이었다. 문 특보는 그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했었다.

이름 그대로 ‘방위조약’이다. 그런데 왜 그걸 깨는 게 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전쟁을 막는 데는 한미동맹체제가 장애요인이 된다는 것인가? 동맹을 깨기만 하면 정말로 전쟁은 겪지 않아도 될까? 문 특보 말과 강 전 교수 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 지 그것도 알고 싶다.

중국의 사드 우려 당연하다?

문 특보는 또 “연말이 되면 한중정상회담이 열리고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활로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중국이 결심만 해 주면 북한이 핵 장난을 포기할 지도 모른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것도 그런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문 특보의 말이 “이제 한미동맹은 오히려 성가시게 됐다. 앞으로는 중국이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고 보니 ‘중국 중시’태도도 노 정부 외교정책의 특징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였다. 그 때는 ‘동북아중심국가론’, ‘동북아균형자론’이 유행했었다. 지금은 ‘한반도운전자론’이 이를 대신하는 분위기인데, 어느 쪽이든 미국 기피 심리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노영민 주 중국대사의 인식도 난해하다는 점에서는 문 특보와 난형난제다. 그는 지난달 29일 외교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롯데마트의 중국철수가 사드보복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이 마트의 철수는 그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기업이나 교민들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도 했다. 그의 말은 “사드가 중국을 겨냥할 수도 있다는 중국의 우려는 당연하다”는데 까지 나아갔다. 우리가 잘못해 놓고 왜 남 탓을 하느냐는 식이다. 이들의 말이 단지 개인적인 견해를 표출한 것일 뿐일까? 아무래도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요체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미국동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어김없이 북한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기시켰다.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문 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말로는 들리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은 81년 첫 번째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선 협상도 할 것이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걸 위해 굴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용이 결코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충돌을 꺼려하는 것을 의지의 부족으로 잘못 판단해선 안 됩니다.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행동이 요구된다면 우리는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필요하다면 승리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힘을 결코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 그것이 레이건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이었다.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게 하는 방법, 그것은 압도적 무력의 보유와 그 행사 의지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정치인 레이건의 흔들림 없는 원칙이었다.

평화 원한다면 싸울 각오해야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한 손으로 압박하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전쟁 절대 불가’의 신호를 보낸다. 한국 정부가 취할 최종적 수단이 ‘대화 요구’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압박일 수도 전략일 수도 없다. 북한의 처분에 맡긴다는 뜻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맹점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말하면서 북한의 의도와 전략은 고려 대상 밖에 두는 태도다.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우리가 평화를 애호하고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포기하면 북핵 문제는 해결된다는 투의 주장을 계속해 왔다. 쌍방의 문제를 동맹 및 국민 내부의 갈등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만 해답을 찾는 것이다. 이건 대북 전략일 수가 없다.

정말로 평화를 원한다면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만의 힘으로는 이미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북한이 핵·미사일 보유한 것은 현실”이라고 문 특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이 막다른 골목에서라도 돌파구를 찾으려면 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평화적 해결’을 내거는 한 북한의 변화는 무망하다.

청와대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대북 소통 채널 2~3개 유지’ 발언(31일)에 아주 고무된 분위기를 보였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무장 포기를 각오하고 대화제의에 응할 가능성은 제로다. 북한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청와대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자신들이 가진 공포수단보다 더 압도적인 힘으로부터 현실적이고 가시적인 압박을 받기 전에는 결코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중구난방 상황의 정리다. 그간 문 특보의 튀는 발언에 대해 ‘투 트랙 대응’의 인상을 주어왔다. 여론을 떠보고, 지지세력을 다독이고, 진심을 은근슬쩍 흘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동맹국의 신뢰를 잃고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첩경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의 관심은 오로지 ‘전작권 환수’에만 가 있는 인상이다.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도 그는 “우리가 전시작전권을 가져야 북한이 우리를 더 두려워하고, 국민은 군을 더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군이 갖고 있어도 겁을 안 내는 북한이 우리가 그걸 환수한다고 겁을 낸다? 군사적 역량 발휘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는데도 국민은 더 우리 군을 신뢰한다?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이유를 들며 전작권에 집착하는 문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하다. 5000만 국민의 목숨을 걸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는 게 아니기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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