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스웨덴이 조국인 그들에게 한국을 이해시키려면...


입력 2017.10.08 06:32 수정 2017.11.09 17:38        이석원 객원기자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5> 스웨덴 한국학교 입양인반 교사 안정애 씨

“조국에 거부 반응 보이는 것 당연하다”에서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외교부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2789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톡홀름 재스웨덴 한국학교에서 입양인 전담반을 지도하고 있는 안정애 씨. 그는 입양인들이 한글은 물론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사진 = 이석원) 스톡홀름 재스웨덴 한국학교에서 입양인 전담반을 지도하고 있는 안정애 씨. 그는 입양인들이 한글은 물론 한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의 한국 입양인은 한국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불쌍하게 본다고 생각해요. 그게 한국을 스웨덴 사람들보다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는 그들에게 ‘한국은 당신들을 무시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요. 지금 비록 그들의 조국은 한국이 아닌 스웨덴이지만 한국을 잊거나 미워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스웨덴의 한국 입양인들 중 한국과 친부모들은 자신을 버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서 친부모를 찾겠다고 생각하는 이들 중에서도 혈육에 대한, 또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왜 자기를 버렸는지, 왜 자신을 이리도 먼 나라로 보냈는지 따지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는 ‘나의 조국은 스웨덴이고, 나의 유일한 부모는 스웨덴의 양부모인데 왜 한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을 그리워하고, 친부모를 찾으려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실은 입양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잘못된 탓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한국’을 찾아 나서는 입양인들이 있다. 어린 아이의 경우 스웨덴 양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이가 든 성인의 경우 스스로 옮긴 발걸음을 통해서 스웨덴의 한국 입양인들 중 많지는 않지만 ‘한국’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톡홀름에 있는 ‘재스웨덴 한국학교(Koreanska skolan. 이하 한국학교)’에 온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성인들로 구성된 반을 지도하는 사람이 오늘의 주인공 안정애 씨(55)다.

지난 1월부터 한국학교 측의 권유로 성인 입양인 반의 지도를 맡은 안정애 씨는 입양인에 대해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입양인이 한국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한국을 ‘자신을 버린 나라’라고 인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한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입양인들에게 한국을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시키는 것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한국학교에서 입양인들 반을 맡았을 때 입양인 학생으로부터 받은 첫 질문이 ‘한국인은 우리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입양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괄시를 한다. 왜 그러는 거냐?’라는 거였어요.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오해이거나 극히 일부분의 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입양인 상당수가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죠.”

스톡홀름에 있는 재스웨덴 한국학교에서 입양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안정애 씨. (사진 제공 = Alexandra Ekström, NBV Stockholm) 스톡홀름에 있는 재스웨덴 한국학교에서 입양인들에게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안정애 씨. (사진 제공 = Alexandra Ekström, NBV Stockholm)

안정애 씨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들의 생각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다. 너희들의 착각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그들이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버린 한국, 그들이 이 먼 외국 땅에서 어떻게 사는 지 관심도 가지지 않는 조국을 무작정 두둔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시선, 느낌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또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너 하기 나름이다. 너 스스로 개방적인 마음으로 한국 사람들을 대하면 너는 결코 무시당하지도 괄시하지도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한국학교를 찾았다는 것은 본성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이끌림이다. 안정애 씨는 그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낸 것이다. 안정애 씨 반 입양인 8명 중 4명이 한국을 다녀왔거나, 한국에 갈 계획을 세웠다. 친부모를 찾는다는 것보다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고, 자신들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문화와 정서는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서적인 변화를 보였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까지 생긴 것이다.

안정애 씨, 스웨덴 이름 세실리아 홀름(Cecilia Holm)의 삶 자체가 버라이어티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굴지의 스웨덴 정보통신 회사인 에릭슨 한국지사에 입사한 안정애 씨는 입사하던 해 회사 동료인 스웨덴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선대로부터 성공회 신자인 안정애 씨는 외국인과의 만남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87년 6월, 남편과 함께 에릭슨 영국 지사로 파견을 가면서 버라이어티한 삶이 시작된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슬럼가에 소재한 딥슬룻 콤바인드 스쿨(Diepsloot combined school)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한 2012년 크리스마스 파티. (사진 제공 = 안정애)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슬럼가에 소재한 딥슬룻 콤바인드 스쿨(Diepsloot combined school)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한 2012년 크리스마스 파티. (사진 제공 = 안정애)

영국 지사를 거쳐 안정애 씨는 88년 11월 마침내 스웨덴의 에릭슨 본사로 자리를 옮긴다. 그녀의 스웨덴 삶이 시작된 것이다. 9년 동안 스웨덴에 살면서 스웨덴 시민권자가 된 안정애 씨는 9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물론 회사 때문이다. 에릭슨 한국 지사에서 안정애 씨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안정애 씨가 입양인 문제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1999년 그는 스웨덴에 있는 한국인 입양 복지기관 어돕훈스 센트룸(Adoptions Centrum. 이하 AC)의 요청을 받아 2002년까지 AC 한국 본부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가 안정애 씨는 남편이 에릭슨 중국 지사로 옮기면서 2002년 이번에는 베이징으로 이주한다. 4년 조금 넘게 중국에 있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부전공한 탓에 중국어에 능했던 안정애 씨는 베이징에 있는 스웨덴 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일한다. 그리고 2007년 새해가 밝자마자 동유럽의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거쳐 2008년 8월 한국과 스웨덴 다음으로 오래 생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이주한다.

남아공에서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삶의 진정한 의미에 눈 뜨게 한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슬럼가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영어교사를 한 안정애 씨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교육에 눈을 돌리게 된다. 5년여 남아공 생활 동안 그 생각은 더욱 강렬해졌고, 2013년, 16년 만에 돌아온 스웨덴에서 그는 스톡홀름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학을 공부하게 된다. 2년 간의 공부를 마친 안정애 씨는 곧바로 교육 현장으로 뛰어들고, 현재 스톡홀름 북쪽 웁란스 배스비(Upplands Väsby)에 있는 마그네텐 스쿨란(Magneten skolan)에서 스웨덴어와 영어, 그리고 사회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6월 아들 시드니의 고교 졸업식. 사진 왼쪽부터 안정애 씨의 딸 안나 홀름과 사위 크리스토퍼 매어, 그리고 아이들의 큰 아빠 닐스 아네 홀름과 아들 시드니 홀름 주니어.(사진 제공 = 안정애) 지난 6월 아들 시드니의 고교 졸업식. 사진 왼쪽부터 안정애 씨의 딸 안나 홀름과 사위 크리스토퍼 매어, 그리고 아이들의 큰 아빠 닐스 아네 홀름과 아들 시드니 홀름 주니어.(사진 제공 = 안정애)

결혼한 딸 안나(Anna)와 지난 6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항공 대학에서 파일럿을 준비하는 아들 시드니(Sidney)의 엄마이기도 한 안정애 씨는 입양인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들을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부채 의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자신 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공통으로 가져야 할 올바른 부담감이라는 것이다.

“왜 입양을 할 수 밖에 없는지, 그것이 한국 전쟁 직후가 아닌 지금도 계속되는 슬픔인지 그들에게 역사적,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솔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대충 얼버무려 변명하려고 하거나, 내 탓이 아니라는 회피는 그들이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죠. 우리는 이제는 거기서부터 그들을 대하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겁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이석원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이석원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