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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단순한 인기가수가 아닌 이유


입력 2017.10.07 06:59 수정 2017.10.07 07:1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가장 힘들때 찾게 되는 가수, 그가 힘들때 못지켜준 미안함

2017년 1월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KBS '감성과학프로젝트 - 환생' 편 동영상 화면 캡처. 2017년 1월 방영돼 화제를 모았던 KBS '감성과학프로젝트 - 환생' 편 동영상 화면 캡처.

올 1월에 방송가에서 김광석이 화제가 됐었다. 작년말에 방영된 < 감성과학프로젝트-환생 > 때문이다. 바로 고 김광석의 이야기였다. 이 프로그램은 김광석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재현했다. 공모를 통해 김광석과 비슷한 배우를 뽑은 후, 특수분장, 컴퓨터그래픽(CG), 특수시각효과(VFX), 홀로그램 등의 기술을 통해 생전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목소리는 생전에 고인이 남긴 녹음을 바탕으로 음성 빅데이터 작업을 통해 되살렸다.

김광석이 세월호 참사의 팽목항, 스크린도어 사고가 났던 구의역 등을 방문해 시대를 위로한다는 내용이었다. 제작진이 사전에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김광석이 살아 있다면 어떤 사건을 위로하는 노래를 불렀을까’라는 설문조사를 했고, 거기에서 세월호 사건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이 선정됐다.

그러한 사회적 의미에 더해 프로그램은 김광석이 지인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도 만들어냈다. 김광석이 소극장 무대에 등장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특히 박학기와 함께 생전에 못 부른 이중창을 부르는 장면이 큰 감동을 선사했다. 박학기는 김광석 사망 전날에 김광석을 만났고, 그때 김광석이 공연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며 그의 자살설을 믿지 않았다. 그때 약속했던 공연을 프로그램이 실현시켜준 것이다.

‘요즘처럼 혼란한 시국에 마음이 치유됐다’며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 겨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 당시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비난이 극에 달했었다. 종편이 보도를 주도하는 가운데 지상파는 무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와중에 KBS가 수신료 값을 했다고 칭찬받은 희귀한 사례가 바로 이 프로그램이었다.

첨단기술을 활용해 사망한 인물과 그 시대의 정서를 재현한다는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였는데, 제작진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광석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프로그램 기획 당시 제작진은 ‘지금 청춘들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대한민국은 세대간 갈등이 크고, 감정연대가 끊어진 상황’이므로 그것을 이어줄 가교를 찾았는데 그 결론이 김광석이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김광석은 시대와 호흡했던 가객이고, 살아 있다면 분명 시대의 아픔이 있을 때 노래를 만들어 위로해 줬을 것이란 생각’으로 그를 되살렸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김광석의 특별한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과거에 인기 있었던 가수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의 물리적 생은 끝났지만 김광석이라는 상징과 그의 예술은 아직도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다. 우리는 김광석을 보내지 않았다.

김광석은 1964년에 태어나 1982년에 대학교에 들어갔다. 평탄한 삶이었다. 어느 날 운동권 노래책을 보다가 김민기의 노래에 눈물이 흘렀다. 결국 민중가요 노래패 운동에 뛰어들었고 80년대 최고의 노래꾼으로 인정받았다. 가수로 데뷔한 후엔 김건모, 룰라 등이 가요계를 뒤흔들던 시절에 포크의 명맥을 지켰다.

갑작스런 사망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인들과 팬들은 자살이라는 공식 발표를 믿지 않았다. 이 충격은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라는 대사로 표현됐다. 이 영화에 ’이등병의 편지‘가 등장한다. 김광석은 큰형을 군대에서 잃었고, 그후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가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 형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노래다.

이 영화 이후 21세기에 김광석 신드롬이 일었다. 2010년대에 김광석 노래를 담은 뮤지컬이 3편이나 제작됐을 정도다. 젊었을 땐 김광석을 여러 가수들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이젠 그를 자신의 청춘기를 대표하는 가수로 받아들이게 됐을 정도로 김광석의 위상이 확고해졌다.

김광석이 전혀 21세기적이지 않은 아날로그형의 음악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1세기 첨단문명이 고도화될수록 김광석의 가치가 더 소중해졌다. 위로의 음악이 된 것이다. 김광석 음악에 배어있는 비애와 고독의 감수성도 요즘 가요계에선 희귀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커졌다. 생전에 사회운동을 했기 때문에 ‘불의에 분노하고 약자를 위로하는 순수한 청춘의 아이콘’으로, 단순한 가수가 아닌 시대를 노래하는 가객이라 불릴 수 있었다. 동시에 사랑노래와 ‘서른 즈음에’처럼 특정 연령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들은 보편적 호소력까지 지녀 김광석 신드롬의 폭발력을 키웠다.

그가 세상을 뜬지 21년 만에 그에 대한 미스터리들이 화제다. 김광석에게 위로를 받아온 사람들은 김광석 미스터리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인과 팬들이 품어왔던 의혹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것이 그리 쉬워보이진 않는다. 김광석의 노래가 더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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