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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턱수염과 운명간의 관계


입력 2017.11.13 10:04 수정 2017.11.13 10:22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빛 나지 않는 삶이 가장 좋은 전성기일수도...

10일 오후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 일부 지방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 곱게 단풍이 물든 나무들 사이로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10일 오후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중부 일부 지방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 곱게 단풍이 물든 나무들 사이로 가을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얘기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수염에 대해 잠깐 알아본다. 수염은 한자어이다. 수염(鬚髥)이란 말에서 앞의 수(鬚)는 콧수염, 뒤의 염(髥)은 구레나릇을 말한다. 영어에선 무스타시(mustache)와 비어드(beard)로 구분된다.

그런데 남자의 상징이기도 한 수염이지만,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여간해선 기르지 않는다. 관리하기 성가시고 또 조직에 몸을 담은 경우 권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록이 있는 남성 유명인들을 보면 수염을 기르는 이가 꽤 된다. 또 자유직의 사람 중에 자신의 방면에서 성취한 일반인들도 그런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수염을 기르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하나의 중요한 표상(表象)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운세를 노출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는 말이다.

(다만 록 밴드의 경우 엉클어진 장발과 수염이 기성의 가치에 대한 저항이란 측면에서 직업적 코드인 셈이니 일부 예외가 있긴 하다.)

오늘 수염과 운명의 상호 관계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며칠 전 밤 시간 해리포터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다. 시리즈 2편인 ‘마법사의 돌’에서 주연인 레드클리프는 대단히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미지를 보면 그런 모습은 간 곳이 없다. 물론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 탓도 있지만 얼굴에 전혀 윤기(潤氣)가 없다, 반면 번개머리에 턱수염과 콧수염 모두 기른 모습이 영락없이 록 보컬리스트 모습이었다. (영문 위키에 들어가 보면 최근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사이 거리의 단풍든 나뭇잎들을 보라, 색상은 화려하나 윤기라곤 전혀 없다. 모두 것을 다 태워버린 모습이고 영어의 Burn Out 이란 표현처럼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린 모습이 늦가을 단풍이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수염 기른 이를 가까이에서 보면 얼굴에 윤기가 없고 건조하다. 유분(油分)이 많이 든 화장품을 발랐어도 그렇다. 그렇기에 그런 그들의 모습은 운세 흐름이 늦가을 단풍과도 같은 시기인 것이다.

단풍(丹楓)은 한 해를 통해 10월 20일 경의 상강에서부터 11월의 입동(立冬) 근처가 시기이다. 다시 말해서 겨울 문턱의 단풍이다. 따라서 사람 역시 구레나릇이나 콧수염을 기른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의 운세 또한 60년 순환에 있어 입동(立冬) 부근이라 봐도 거의 틀림이 없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제 맛이 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풍이 화려하긴 하지만 생명이 떠난 잎사귀이고, 맛에 비유하면 삭은 맛 혹은 곰삭은 맛, 물론 그 역시 한 맛이긴 하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다면 어울려 놀기는 좋아도 그 사람과 일을 하게 되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 이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해리포터의 남자 배우 레드클리프의 운명을 살펴본다.

대니얼 래드클리프, 1989년 7월 23일생이고 생시는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사(己巳)년 신미(辛未)월 가빈(甲申)일이 된다. 태어난 날이 대서(大暑)이기에 ‘뜨거운 남자’라 할 수 있다.

60년 순환에 있어 기(氣)의 절정인 입추(立秋)는 1984 갑자(甲子)년이니 태어나기 5년 전이었고, 기의 바닥인 입춘(立春)은 2014 갑오(甲午)년이다. 그간의 활동 경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니 현재 ‘해리 포터의 우상’이었던 레드클리프는 입춘 바닥을 지나 우수(雨水)의 때, 한 해로 치면 2월 20일 경에 해당된다. 우수의 운은 모든 길이 다 경색(梗塞)되어 있는 때라 하겠으니 대단한 유명인이긴 하나 속사정은 답답 갑갑 일변도라 보면 된다. 그런 까닭에 나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저처럼 잔뜩 수염을 기르고 있다.

입춘은 죽고 다시 재생 혹은 갱생하는 때이다. 목숨이 죽진 않았어도 그 사람의 운명은 죽고 다시 재생하는 때가 입춘인 것이다. 그렇기에 레드클리프 역시 이제 새로운 삶을 개척해가야 한다. 과거의 영광에 매어있으면 안 된다.

사람의 겉모습 즉 바깥으로 비치는 이미지가 가장 화려한 때는 사람의 운세 순환에 있어 단풍의 때와 같다. 10월 20일의 霜降(상강)에서 11월 20일 경의 小雪(소설)에 이르는 시기이고 하루로 치면 저녁 시간이다.

하지만 단풍이 아무리 화려해도 죽어가는 잎사귀이고 더 이상의 생산력은 가지지 못한다. 사람 역시 60년 순환에 있어 상강에서 소설에 도달하면 그간의 성취나 보여준 능력으로 인해 화려할 뿐 이제 더 이상의 발전과 도전은 없다.

그런 면에서 대중 이미지가 좋은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운명의 겨울 문턱에 있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실망과 함께 망각되어진다. 한때의 찬연(燦然)한 광채(光彩)인 것이다. 그리고 그 광채가 사라지고 나면 긴 겨울, 어둠의 시간이 온다.

따라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삶의 좋은 때 또는 화려한 시절은 그 본질에 있어 해질 무렵의 저녁 황혼(黃昏)과도 같다. 황혼이 울긋불긋해서 아름답긴 하지만 곧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된다.

삶의 화려한 시절은 다시 말해서 ‘황혼의 엘레지’와 같은 것,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자리한다.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으로 대성한 바둑의 마스터가 조치훈이다. 하지만 우리 젊은이들에겐 지명도가 별로 없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지명도가 높은 이는 롤 게임의 마스터인 ‘페이커’ 이상혁일 것이다. 연봉 30억의 ‘빠커’ 말이다.

참고로 말하면 이상혁은 2014 갑오(甲午)년이 입추(立秋)이기에 아직도 발전할 여지가 창창하다 볼 수 있다.

조치훈의 경우 2015년이 운세 바닥인 입춘(立春)이었다. 대가(大家)답게 오래 전부터 수염과 머리를 전혀 다듬지 않고 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한국기원 기자의 질문에 대해 머리빗이 없어서 그렇다는 재미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 양반이 한 말 중에서 인상 깊은 멘트 중에 ‘그래도 바둑’이란 말이 있다.

바둑이란 결국 한갓된 놀이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쳐서 청춘과 인생을 다 보냈다, 사람들로부턴 대가 또는 마스터란 칭송을 받긴 하지만 그래봤자 놀이로서의 바둑이다, 그래서 한 때 나는 내 삶과 바둑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가졌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결국 바둑을 두는 기사이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바둑밖에 없다, 그러니 계속 이 길, 바둑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 저 간단한 말 속에 담겨 있다.

살아가는 삶을 일러 ‘인생길’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에 젊은 사람들로부터 산다는 거 뭐 별 거 있나요 하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아직 길을 다 걸어보진 않았잖아요?’ 하고 웃으며 얘기해준다.

살아봐야 사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길은 다 같아 보인다. 그러나 마라톤 풀 코스를 뛰어봐야만 마라톤의 거리가 무엇이고 그 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남자 유명인이나 대가들이 수염을 기르면 멋있게 보이기도 하고 엄청난 경륜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 역시 착각이다. 그런 유명인들 역시 이제 처음으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지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찾아온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 이에 나는 그런 이를 대하면 당신은 아직 살아보지도 않았다는 말을 해주기도 한다.

60년의 순환이다. 어떤 이가 어린 시절에 인생의 봄을 겪었다고 해보자. 그러면 예순이 넘어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맞이하는 봄은 어린 시절 철모르고 겪은 그 봄과는 전혀 다른 봄이란 것을 모른다.

돌아오는 봄을 회춘(回春)이라 한다. 정력이 살아나고 성기능이 살아난다고 해서 회춘이 아니다.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것이 회춘인 것이니 늙은 고목(枯木)에 몇 송이 하얀 꽃이 피어나 달리는 그 경이로운 경험을 어떻게 어린 나무가 알 수 있으랴.

삶에 있어 같은 때는 없다. 작년 봄이 올봄과 다르고 내년 봄과 또 다르다. 우리가 해마다 봄을 겪고 여름을 보내다 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심드렁하게 보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고 또 그래서는 아니 되는 것이란 얘기이다.

60년에 걸쳐 빛나는 시절은 10년이다. 하지만 빛의 시절은 사실 메말라가는 단풍 잎사귀와도 같다. 그다지 좋을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유명인의 수염을 볼 때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여전히 철모르는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빛이 나지 않는 삶, 세상 속에 묻혀서 여느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가는 시절이 실은 삶에 있어 가장 좋은 전성기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제가 입동(立冬)이었다. 2017년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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