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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가 트렌드가 된 나라


입력 2017.11.27 05:34 수정 2017.12.04 11:35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팍팍한 세상살이가 트렌드에 민감해진 이유

AI brain 이미지.ⓒkurzweil AI brain 이미지.ⓒkurzweil
바야흐로 트렌드가 트렌드다. 유행이 뭔지를 알아야 하는 게 유행이 됐다는 말이다. 연말이 닥쳐오자 이른바 트렌드 분석서들이 봇물을 이룬다.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 코리아 2018’을 비롯해, ‘2018 트렌드 노트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모바일 트렌드 2018’, ‘라이프 트렌드 2018’, ‘청년 트렌드 리포트 - 우리 시대 청년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8 대한민국 트렌드’, ‘2018 20대 트렌드 리포트’, ‘핫 트렌드 2018 빅 도미노’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과거엔 이렇지 않았다. 물론 연말연초에 의례히 유행을 짚어보는 흐름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사람들이 트렌드 분석에 열을 올리진 않았다. 신문방송에서 트렌드가 뭐라고 떠들건 별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반면에 지금은 트렌드 분석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다.

최근 욜로, 탕진잼 유행 이후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었다. 순식간에 이런 트렌드 언어가 일상어 수준으로 확산된 것이다. 과거엔 이런 단어는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서나 통용됐었다.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렇게 트렌드 분석이 트렌드가 되는 현상은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 코리아 2007’이 그 시발점이었다. 올해로 10년이 됐다. 그후 트렌드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됐고 2014년 경부터 각 전문 분야별 트렌드 분석서들까지 가세해 트렌드 분석서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트렌드 분석가들이 인기 강사가 돼 방송을 비롯해 곳곳에서 강연을 하는 것도 트렌드가 트렌드가 된 시대의 풍경이다.

과거엔 신경도 안 썼고 알지도 못했던 트렌드를 알게 된 지금, 살림살이는 나아졌을까? 그렇지가 않다.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다면 트렌드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것이다. 트렌드 분석서가 점점 더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은 사람들이 점점 더 전성기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사람들이 트렌드에 무관심했던 것은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성실하게 살면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시류나 미래 변화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안전성이 외환위기 때 무너지고 2000년대에 불안이 고조되자 사람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대평원에 사는 미어캣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높이 서서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려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루저에게 냉혹한 사회에서 탈락의 불안이 가중되자 낙오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롱패딩이 유행이라는 신호가 뜨자마자 들불처럼 번져가는 롱패딩의 물결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다. 그만큼 낙오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러니 더욱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스마트폰,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격변도 사람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세상이 엄청나게 변한다는데 아무 것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간 낙오자가 될까 두렵다. 또 경제적 불안으로 인해 재테크 열망이 커졌는데, 돈 불릴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면 나 혼자 낙오하는 것이기 때문에 트렌드를 알아야 한다. 이래서 한국은 트렌드 분석 천국이 되었다.

트렌드 분석서들을 부여잡고 아무리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으려 해도 주류 대열에 올라탈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극단적인 피라미드형 구조에서 어차피 다수는 루저다. 트렌드 분석을 아무리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럴수록 불안이 더 커져 트렌드 분석서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순환이다.

결국 트렌드 분석서의 인기는 팍팍한 세상살이를 반영한다는 이야기다. 내년엔 사람들이 트렌드에 신경 안 쓰는 게 트렌드가 될 수 있을까? 전망이 그리 밝아보이진 않는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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