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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기만 한 것은 정치가 아니다


입력 2017.12.11 05:41 수정 2017.12.11 17:44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 1주년을 맞는 소회

오늘의 징벌자가 내일의 범법자가 안되는 세상 되길

지난 2016년 12월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석 모니터에 '박근혜 탄핵'이라고 쓰여진 종이를 올려 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지난 2016년 12월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석 모니터에 '박근혜 탄핵'이라고 쓰여진 종이를 올려 놓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하걸은주(夏桀殷紂)는 폭군의 전형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격한 후세인들에게까지 악명을 떨치고 있으니 편들기는커녕 변호라도 해 줄 사람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렇지만 역사는 당대에 이미 폭군 주(紂)에 대한 의리로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다. 이들 형제는 고죽국 왕의 자리를 서로 양보하다 함께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로 갔다. 그런데 창은 이미 죽어 문왕으로 추대된 후였다. 그 아들 무왕이 문왕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나라 주왕을 치러 나섰다. 정의의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말렸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고도…”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고 할 수 있는가.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는가?”

무왕은 이들을 물리치고 진군해서 마침내 주의 군대를 무찔렀다. 주는 도망치다가 불에 뛰어들어 타죽었다. 천하는 주의 무왕에게 복속했다.

그러나 백이‧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러이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고비를 뜯어 먹으며 연명했다. 주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굶의 죽기에 이르러 채미가를 지었다.

서산에 올라 고비를 뜯노라./폭력으로 폭력을 바꾸고도/그 잘못을 모르누나./신농(神農)‧우(虞)‧하(夏) 홀연히 지나가버렸나니/ 나 어디로 돌아가랴./ 아아, 가리로다/ 목숨도 쇠했음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1년 전인 작년 12월 9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당하고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자리에서 밀려났다. 헌재의 결정문 중에서도 매우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헌법재판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일부 재판관이 재판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중 결원이 발생한 경우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 수호 기능이 중단되지 않도록 7명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하고 결정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정말 이해 안 되는 대목이다.

‘재판관 9인’은 헌법상(제111조 2항)의 헌재 ‘구성’요건이다. 이에 비해 ‘재판관 7인’은 헌법재판소법상(제23조 1항)의 ‘심리’요건이다.

①구성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면 헌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심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②구성요건은 헌법에, 심리요건은 헌법재판소법에 규정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법률은 헌법의 상위법이 아니다. 당연히 헌법 규정의 범위 내에서만 법률은 그 효력을 가진다. 법률이 헌법을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 1년

법률 비전문가이긴 하나 상식은 갖춘 일 시민의 판단으로는 그렇다. 그러니까 부재(不在)한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한 셈이다. 이를 바로 잡을 기관은 어디인가? 그간 관행적으로 그렇게 운영되어 왔다는 말로는 정당화될 수 없다. 당시에 그런 반론이 없었다면 또 모르겠거니와 탄핵 결정문에 명시될 만큼 논란이 되고 있던 사안이었다. 이제는 구성요건을 갖춘 헌재가 이에 대해 다시 심리든 고민이든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정작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달리 있다. 어떤 집정자에게도 지지자는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고대로까지 올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국토의 반쪽을 점거하고 그곳의 동포들을 폭압과 굶주림으로 내몰면서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김정은도 예로서 부족하지 않다.

이 자유대한에 살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덕을 많든 적든 봐온 사람들이, 북한의 독재자 및 그 체제를 역성드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 한 분은 (‘평화’를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변호하고 다닌 사실을 김정일에게 보고하듯 말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 아닌가.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 그 때문에 분노하는 사람, 그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사람들에 대해 원망을 쌓아가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을 수도 있다. 매주말마다 서울 시내 이곳저곳에서 열리고 있는 ‘태극기 집회’가 말해주는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에게는, 아무리 뜯어봐도 폭군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다. 민중에 의해 방벌(放伐)당할 대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대단히 유능하고 근면하고 성실하면서, 애민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대통령이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미지를 가졌었다. 폐쇄적‧소극적 리더십, 대인기피적 성향, 과도한 우월주의와 자기중심주의, 시대사조에 대한 인식 결여 등이 대중은 물론 정치적 동지들과의 사이에도 깊고 험한 협곡을 만들어버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 정권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처사는 너무 각박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지 5년이고 그 가운데 이미 7개월이 지났다. 설령 진보좌파가 계속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 중심에 있을 사람은 문 대통령이 아니다. 퇴임과 함께 권력도 후임자에게 이양된다. 문 대통령은 상황의 변화 추이를 통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창 ‘태블릿PC 논란’이 달아오르는 중이다. JTBC가 작년 10월 24일 저녁 허위조작방송을 했다는 주장이, 권위 있는 국가기관의 과학적 감정결과를 근거 삼아다시, 아주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변희재 씨가 쓴 <손석희의 저주>라는 책이 출간되고 지역 순회 북 콘서트까지 열리고 있지만 검찰이나 JTBC 측은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변 씨 등의 주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면 현 정권의 정당성은 근저에서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태클 걸리는 특별활동비 수사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도 순조롭지 만은 않을 조짐이다. 김대중 정부 때의 국정원 차장이었던 김은성 씨가 ‘대통령의 거액 비자금 조성’ 사실을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국정원 2차장으로 재직하던 때인 2001년 신건 국정원장의 지시로 6개 시중은행을 동원해 3000억 원을 조성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신 원장으로부터 ‘(이는) 청와대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소설이고 엉터리’라고 반박했다지만 그걸 입증하려면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또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지낸 김당 씨는 자신의 SNS에 “우려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중략)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은 DJ정부 때 없어졌다가 노무현 정부 때 부활했다. 지금 문재인 청와대에도 특활비 사용한 참모들 있다. 김만복 조사하면 다 나온다. 청386 술값부터 북한에 준 100억 원까지…”라는 글을 올렸다(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국회 질의 때 인용). 역시 진위는 검찰조사로만 밝혀질 수 있다.

‘불법의 형평성‧평등성’을 말하려 하느냐는 반박이 있을 법하지만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지난 정부 및 그 관계자들의 유사 행위가 그 이전의 역대 정부 하에서 정치적 양해사항이나 관행으로 인정되었음이 확인된다고 할 때 현 정부도 징벌할 생각을 버리는 게 옳다. 만약 진보정권 때도 위법행위로 단죄되었다고 한다면 그 범법자들이 지금까지 무사할 수가 없는 일 아니겠는가.

현 정권의 담당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재임 기에 이른바 ‘적폐’와 그 ‘행위자들’을 완전히 소탕해버릴 수 있을 듯이 팔을 걷어붙이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누구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겠지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도 정적을 괴롭히기는 했지만 말살하지는 못했다. 단언하거니와 세계사 전체를 통틀어 ‘청정(淸淨)국가’는 없었다.

‘공산사회’라는 이상향을 건설한다는 목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청정국가’ 건설의 꿈은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요구할 것인가. 수많은 국민을 하나의 가치 및 질서 체계 안에 몰아넣겠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그게 바로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물론 그걸 추구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폐청산’의 기치는 국민들을 한곳으로 몰아대는 몽둥이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걸 휘두르는 측이 의도하든 안 하든!

오늘의 징벌자가 내일의 범죄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나라야말로 우리가 꿈꾸어온 진정한 민주국가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요원한 희망인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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