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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세월호 트라우마’가 화마의 공포를 이기다?


입력 2017.12.23 05:21 수정 2017.12.23 06:4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안전 물불 안가려야하는데 물불 가렸다 뒷말

정권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안전불감증 전 정권 탓?

<칼럼>안전엔 물불 안가려야하는데 물불 가렸다는 뒷말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안전불감증 또 전정권 탓?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연합뉴스

21일 대낮에 비보가 들렸다. 제천화재로 29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피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시시각각 사건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국민은 세월호의 악몽을 떠올렸을 것이다. ‘설마 백주대낮에... 정부가 나서면 구조가 되겠지’ 하다가, 피해소식을 들으며 ‘어떻게 저럴 수가’로 바뀌는 경험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목욕을 하려 왔다 피해를 당한 단란한 가족들의 소식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다음날 방송국 대기실의 대화다.

“대통령이 왜 직접 구조상황 진두지휘를 안한거죠?”
“어떻게 사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대통령이 지휘를 해요?”
“그럼 지난 번 낚싯배 침몰 때는 왜 직접 지휘를 한 거죠? 이번이 피해가 훨씬 더 컸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대통령이 모든 사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그래요. 그래서 하는 얘깁니다.”

한분이 ‘안전에 물불을 가리지 말았어야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차이를 두느냐’는 지적에 한쪽이 말문이 막힌 상황이다.

그 분이 덧붙인 말이다. “지난 번 낚싯배 때도 직접 나서서 지휘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시작하면 사고현장 책임이 대통령에게 쏠릴 수 밖에 없고, 그러면 현장 책임자들은 책임을 위로 떠넘기기에 바빠지죠. 그게 복지부동 아니고 뭡니까? 지난 정부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았어야죠.”

현정부는 세월호가 전정권의 조기 낙마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집권에 덕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 집권층은 야당만큼이나 안전사고에 대한 ‘트라우마(trauma)’도 강할 것이다. 낚싯배 때는 그 트라우마가 작동했고, 이번 화재 때는 그 트라우마가 작동하지 않았다. 사건현장 화면에서 직접적인 연상 작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다음날 뒤늦게 국민분노의 심각성을 깨닫고 문재인 대통령이 화재현장에 방문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과거의 우호적인 시민이 아니었다. 대통령 면전에서 큰소리를 내고 항의했다. 최근에 없던 모습이다. 대통령의 ‘파격행보’가 상처를 받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도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언론들의 보도 패턴도 비슷하다. ‘인재(人災)’라고 하고, 현장에서 목격자들도 ‘인재’라고 말한다. ‘인재’가 맞기는 하지만 그 때 뿐이다. ‘인재’라면 사람의 노력에 의해 교정이 되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재는 예외없이 무한반복된다. 이 쳇바퀴는 멈출 수 없는 것인가?

외국에서는 ‘대형참사’를 겪으면 중요한 사회적 변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타이타닉호 침몰이다. 그 사건이후 ‘쌍방향 통신’과 ‘해난사고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제도화됐다. 이후 해난사고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강화됐다. 덤으로, ‘전신’이라는 일방향 통신의 한계를 극복한, 쌍방향통신의 획기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그 사건이 인류에 엄청난 기여한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다. 현대사회의 통신혁명은 그런 아픔의 교훈에서부터 시작된 측면이 크다. 반면 우리나라는 재난의 교훈을 발전의 동력으로 만들어 내지 못하는 ‘지체사회’다.

세월호 사건 때 박근혜 전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고 유족과 만났다. 박 전대통령은 유족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시민을 지키지 못하는 해경이라면 없애는 것이 맞다.’ 그렇게 가족들과 국민의 분노를 해경에 돌렸다. 당시는 시원했겠지만, 결국 해경의 역할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경을 없앤다고 바다가 같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 ‘역대급 코미디’였다. 결과적으로 기형적인 공권력의 구조만 만들어 놓고, 대통령은 탄핵을 피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환호를 받으며 해경이 부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어도 해경의 문제점은 시정되지 않았다.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건이 터지면서 명확해졌다.

왜 그럴까?

우리는 큰 사건이 터지면 ‘책임소재’부터 따진다. 누군가 욕을 먹을 ‘희생양’이 필요하다. 정적의 정치공세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그 희생양이 해경같은 조직이 될 수도 있고 공직자가 될 수도 있다. ‘세월호 사건’이 전형적이다. 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직을 희생시키려다 책임을 따진 최고권력자가 낙마한 사건이다. 그의 낙마로 혜택을 본 현 정권은 교훈을 찾기 보다는 또 책임회피에 바쁘다. 가장 좋은 핑계가 ‘전 정권 탓’이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 약발이 먹히겠는가?

이제라도 바꿔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일보전진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더 이상 인재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눈앞 유족들의 아우성에 당황한 문 대통령은 ‘당국의 초동대응미흡 문제를 규명하라’지시했다고 한다. 또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면, 다음에도 같은 ‘인재’가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언론은 피해의 원인이 된 많은 문제점들을 자세히 보도했다. 건물의 구조적 문제, 출입구관리 문제, 스프링클러 미작동, 불법주차 등 진입로 문제, 건물 마감재(드라이비트)의 문제, 119출동과 초동대응의 문제 등이다. 항상 있어왔던 문제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보도들이다. 보도내용도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과거의 보도내용을 찾아 이번 사례에 적용하면 달라질 것이 거의 없다. 개선된 부분에 대한 보도는 찾기 힘들다. 그걸 찾게 해주는 것이 정부의 사명이다. 국민들은 “과거사건에 제기됐던 문제를 개선하여 이번에는 피해를 이렇게 줄일 수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싶다. 아니, 아예 그런 보도가 필요없는 사회를 국민들은 바랄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건사고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나 똑 같은 문제가 무한히 반복되는 것은 후진국의 사례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경제력만은 아닐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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