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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정유사화'로 ‘표현의 자유’를 생각한다


입력 2017.12.30 14:11 수정 2017.12.30 1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문제를 도려낼게 아니라 생태계서 도태시켜야

현 정부 행태도 '도긴개긴'...새해 미래지향적 행보를

2017년 정유년 유난히 감옥이 봄비는 한해 정유사화라 할만큼 문화전쟁의 한해였다.ⓒ데일리안DB 2017년 정유년 유난히 감옥이 봄비는 한해 정유사화라 할만큼 문화전쟁의 한해였다.ⓒ데일리안DB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영화같은 한해였다. 벌써 연말연시다, 겨울방학과 함께 극장가엔 경쟁이 뜨겁다. 이렇다 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없어서인지 모처럼 국내영화가 흥행 상위권이다. '신과 함께' 같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도 있지만, 역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 대세다. 이번 주 개봉한 '1987' 대한민국 민주화의 계기가 된 ‘6월 민주화운동’을 다루었다. 또 다른 영화 '강철비'는 개봉 2주만에 손익분깃점을 넘기며 3위로 건재를 과시한다.

특히 '강철비'는 미남배우 정우성의 ‘재발견’이라 할 정도로 화재를 일으켰다. 정우성은 이 영화를 계기로 언론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그 때마다 작지 않은 논란들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패러디한 우스꽝스런 총쏘기 장면이 화재가 되더니, 방송사 메인뉴스에 출연해 해당 방송사 총파업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까지 쏟아 냈다. 그의 수려한 외모와 함께, 특정진영 사람들이 말하는 ‘개념’이 합쳐져 흥행에도 도움이 된 듯하다.

영화나 배우 개인을 평하고자 하는 것은 필자의 몫은 아니다. 이런 ‘시대극’을 보며 필자는 ‘영화에 허용되는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따져 보고자 한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허용되야 한다. 그건 절대 명제다. 적어도 민주주의사회라면 말이다. 그러나 그 자유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면, 허용해야 할까?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도 ‘판도라’라는 (가상의 상황을 가정한) 재난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결정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유로운 표현’은 어떤 때는 그 사회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번성하던 고대 그리스도 그 ‘자유’로 말미암아 패망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과 그에 대한 자유가 사회를 파편화시켰다. 바울이 포교를 위해 그리스를 방문했다가 온갖 잡신들을 경배하는 그리스인들을 보며 한탄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권력에 국민의 자유를 재단할 권력을 주어야 할까? 거기까지 권력자에게 용인된 ‘위임의 범위’가 될 수 있을까? 권력자에게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사회와 국가를 수호해야 하는 ‘숭고한 의무’가 명분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난 조건부 반대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위험을 감당하더라도 ‘자연치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항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법적, 제도적, 권력적 조치는 외과적 조치에 비유될 수 있다. 수술 중에 환자를 죽일 수도 있고 후유증으로 인해 죽음보다 못한 삶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지속되면 원래있던 병보다 부작용은 더 치명적이다. ‘조건부’의 조건은 위급시에 해당한다. 정말 사회를 전복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명분으로 지속적이고 강압적으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그 사회를 다른 방향으로 병들게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이 예가 될 수 있다. 지금 그들은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제도권에 복귀하고 있다. 왕조시대나 김정은처럼 죽이지 못할 바에는 제거하기 보다 희석시켜 존재기반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어야 한다. 인내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저들이 기를 쓰고 탄핵사태를 만다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 유학했던 한 선배께 들은 이야기다. 미테랑 대통령은 14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함으로써, 나폴레옹 3세 이후로 역사상 가장 오래 집권했던 프랑스 지도자로 남게 되었다. 그 미테랑의 통치술에 관한 분석이다. 당시 프랑스는 지금같이 극우세력이 골칫거리였다. 만약 극우가 승하면 그 파트너로 극좌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중간지대를 힘을 잃는다. 미테랑은 그것을 우려했다.

좌파 대통령 미테랑은 정보기관에서 제공하는 극우세력의 정보를 보수우파 정적인 자크 시라크(후에 대통령이 됨)에게 제공했다. 정보를 이용해 정적을 광범위하게(극우를 넘어 우파 전반) 무력화시키기 보다, 건강한 경쟁자를 통해 적을 통제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우파진영을 분열시켜 종국적 이득을 얻는 노련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이제이’의 방법은 적중했다. 미테랑의 장기집권의 궁극적 비결이고 사회를 안정시킨 묘책이기도 했다.

‘통합진보당해산’에서 박근혜정부는 너무 거친 외과적 방법을 택했다. 극좌에는 한을 더하게 했고, 그들은 보수적인 좌파에 침투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 결과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고 급진적 좌파세력의 집권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적어도 우리나라 같은 민주주의사회에서 그렇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라는 편법이 동원됐다지만, 효과가 별반 없었다. 권력이 직접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너무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부작용도 컸다. 권력을 망가트릴 만큼...

자연스럽게 관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균형잡힌 식단’이 시장에 나와 관객이 편견없이 선택하여 먹을 수 있도록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건강한 상품이 나온다. 편식은 단기간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쌓이면 치명적인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사회의 이념이 그렇게 가고 있다.

아무리 사명감으로 작품을 만들어도 흥행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지원해도 작품성에 한계가 있다면 큰 성공을 이루기 힘들다. 좌파영화는 재미있다. 재능있는 인재들이 몰린다. 당연히 흥행에 유리하다. 돈 되는 일이라면 재벌기업들은 자연스럽게 합류할 것이다. 대형 제작지원, 유통사들이 재벌임에도 불구하고 좌편향을 보이는 것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파진영에도 인재를 모아 대접해 주어야 한다. 자유를 주어 스스로 개량하고 발전하게 해야 한다. 재능있는 우파(또는 중립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음지는 부정이 깃들기 좋은 환경이다. 그렇게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이념적 편식을 막을 수 있는 종국적인 방법이다.

이제 2018년 무술년(戊戌年) 새해를 맞는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은 ‘정유사화(丁酉史禍)’라 할 정도로 많은 상처를 남겼다. 고위공직자들이 끝없이 죄수복을 입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사화의 기록을 보는 듯하다. 문화전쟁이 중요한 죄목이다. 과거 ‘예송논쟁(禮訟論爭)’같은 느낌이다. 최근 현 정부의 행태도 이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다. 새해에는 과거 실패한 정부의 과오를 답습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활기찬 내일을 열어가길 바란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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