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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시작하면서 국운을 살펴보니...


입력 2018.01.07 09:16 수정 2018.01.07 10:20        데스크 (desk@dailian.co.kr)

<호호당의 세상읽기>바닥점은 아직 멀리 있고...울퉁불퉁 한해될듯

2018 무술년 황금개띠의 새해가 밝았다. 2018년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개최되는 해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다시 한번 세계에 널리 떨치길 기원한다. 사진은 지난 13일 오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훈련중인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상비군 김보라(한체대 2년), 배민주(한체대 1년) 선수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18 무술년 황금개띠의 새해가 밝았다. 2018년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이 개최되는 해로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다시 한번 세계에 널리 떨치길 기원한다. 사진은 지난 13일 오전 강원도 평창 동계올림픽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훈련중인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상비군 김보라(한체대 2년), 배민주(한체대 1년) 선수 너머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18년이다. 새해에는 어떨까? 무슨 좋은 일은 없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가져보는 것은 누구나의 자연스런 감성이다.

신문이나 인터넷에 보니 사람들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느라 이런저런 역술인들이 올 해는 국운 상승의 해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그 역술인 역시 진정으로 우리 국운의 상승을 바라는 마음에서 저런 말을 했겠지 하고 이해해보지만 그래도 역시 쓴 웃음을 면할 수 없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한 해를 전망해보는 글을 올려왔다. 그런데 올 해만큼은 정말 그런 글을 쓰기가 싫어서 며칠씩이나 망설였다.

올 신년은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여기저기에서 혁신이란 단어가 눈에 많이 들어온다. 리더 급 인사들은 한결같이 ‘혁신’을 얘기하고 주문하고 주장하고 있다.

革新, 먼 옛날 수레나 마차를 덮고 있는 가죽이 낡아서 새로운 가죽으로 바꾼다는 말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오늘에 이르러 묵은 풍속이나 관습, 조직, 시스템 등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혁신보다 좀 더 온건한 단어로서 ‘변화’가 있다. 변화란 말은 상황이나 환경이 바뀜에 따라 적절하게 바꾸는 것이고, 혁신은 아예 통으로 전부를 바꾼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혁신은 과거와의 단절(斷絶)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온통 혁신을 얘기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히 손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통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 대한민국인 셈이다.

혁신이란 말이 이토록 귓전에 많이 들려오는 것은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편하지가 않고 어렵고 또 난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혁신이란 말이 유난히 많이 강조된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경지를 박차고 힘차게 일어서보자 또는 상황을 되돌려보자는 심리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심리로 자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이 대목에서 이른바 팩트(fact)란 것만 걸러낸다면 우리의 현 상황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만 남는다. 대한민국은 목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어렵다는 사실에 대해선 앞에서처럼 구구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여긴다.

다만 문제는 희망에 관한 것이다. 새해가 되었으니 새 희망을 얘기해봄직도 한 것이니 말이다.

우리들은 어려울 때 어려울 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 ‘극적인 반전’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 그리고 그게 때로는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좀 살아보면 알게 되듯이 극적 반전, 즉 ‘드라마틱 턴오버’란 것은 역시 극(劇) 중에서나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극이나 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뭐니 해도 결국 극적 반전에 있다. 그를 통해 관객들에게 심리적 통쾌함과 정화(淨化)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춘향전에서의 ‘어사 출도’ 장면이 그것이다.

‘어사 출도’ 또는 극적인 반전이 없는 드라마나 영화는 제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도 해도 열성 팬이나 식견을 갖춘 소수의 관객이 아니고선 참아주기 어려운 법이다.

작년 가을 영화 ‘남한산성’을 관람하는 내내 진지하게 몰입해서 영화를 보았고, 보고 난 뒤에 영화관을 나서면서 흥행은 글쎄!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감독 참 용감하고 거기에 투자한 사람들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돌아가서 과연 2018년 올 해 우리가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극적이라 하기엔 그렇다 치고 적어도 반전의 실마리를 마련할 순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나 호호당으로선 정말 맥이 풀리는 얘기이다. (물론 독자들로선 정답을 알고 있다는 호호당이 오만하다거가 틀릴 수 있을 거란 판단도 충분히 하실 수 있겠지만 말이다.)

‘뉴욕 월가’라 하면 글로벌 투자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월가의 오래된 격언 중에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는 말이 전해져온다. 그 말을 다시 약간 수정해서 지하실에도 여러 층이 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증시란 때로 천정을 모르고 끝도 없이 상승하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하염없이 바닥을 낮추어갈 때도 있다. 밑도 끝도 없이 하락만 거듭할 때 어려워진 투자자들이 쓰는 말이 바로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는 말이다.

증시 브로커들은 시장이 내릴 때마다 드디어 바닥이니 과감하게 매수할 때라고 부추긴다. 그래야만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전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부동산 중계사들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고.

하지만 운세를 말해줄 뿐 운세를 팔아야 하는 운세 브로커가 아닌 나 호호당의 입장에선 매수를 부추길 이유는 없다. 증시 전문용어로 지금은 숏(short)이 아니라 롱(long)입니다요 하고 떠들어댈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다만 신년 초 모두가 새 희망을 찾고 또 기대하는 현 시점에서 금년도는 숏입니다요 하고 말하기가 참으로 괴롭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연말부터 지금까지 근 열흘씩이나 전전긍긍했다. 글을 쓰다가 말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다.

올 해는 힘들었던 작년에 이어 좀 더 본격적인 어려움이 찾아들 것이라 여긴다. 출구(出口)가 보다 더 좁아질 것이라 본다.

작년엔 그나마 전혀 기대치 않았던 반도체 호황으로 전체적으로 숫자를 만들어주었으나 올 해엔 오히려 그 문제로 인해 시름과 걱정이 더 깊어질 것이다.

범국가적인 행사인 평창 동계 올림픽 역시 지나치게 높은 숙박비 문제 그리고 난마처럼 얽혀버린 안보외교문제로 인해 흥행이나 국제적 위신 등에서 큰 기대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선 블로그 프리스타일 제1524회, 2016년 11월 28일자의 “동계올림픽 이야기”란 글을 통해 한 번 언급한 바 있다.)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 가능하기만 하다면 전적으로 찬성이다. 그런데 5년 전인 2013년 시간당 4,860원에서 올 해 7,530원이 되니 5년 사이에 55% 인상폭이다. 인상폭이 대단히 큰 것 분명 사실이고 반면에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해도 납득이 간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비용 부담으로 인한 압력 그리고 구조조정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영세 자영업자란 결국 알바생의 인건비는 물론이고 심하게 말하면 자신과 가족의 노동착취를 바탕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나라의 영세 자영업자 수가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이나 미국보다 더 많다는 얘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연말에 길 가다가 담배 사러 편의점에 들어갔더니 판매금지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청소년에게 팔다가 적발되었던 모양이다. 주인 아저씨 말이 장사목이 안 좋은 탓에 좀 팔았더니,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었다. 피차 계면쩍은 웃음을 나누고 되돌아 나왔다. 바로 영세자영업자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창업, 창업 하면서 정부나 대학 교수들이 격려하고 부추기고 있지만 사실 창업하면 즉각 영세 자영업자가 되는 현실이다.

또 어느 곳에서 창업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웃기는 말을 접했다. 창업 아이템 선정을 위해선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바로 네 자신을 알라는 것인데, 그게 어디 쉬운가.

세상만사 뭐든 해보지 않고선 가타부타 판단하기 어려운 법이고 해봐야 자기 자신을 약간이라도 알 수 있는 법이건만 사전에 알아야 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 창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 같기도 했다.

양극화를 말하고 기득권을 비판하지만 우리 사회의 기득권은 어떤 사람이나 계층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높여놓은 부동산 가격 그 자체이다. 특히 높은 임대료야말로 바로 양극화와 기득권의 본 모습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랴.

2018년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높은 부동산 비용,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높은 지대(地代) 즉 렌트로 인해 빠른 속도로 질식 당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이 사람 다 죽일 판국이란 얘기이다.

국운의 바닥점은 아직도 저 멀리 있다. 2024년이 바닥이기에 그로부터 헤쳐 나오려면 최소한 10년의 세월은 걸릴 것이다. 올 한 해는 글로벌적으로 그리고 국내 역시 몹시도 울퉁불퉁한 한 해가 될 것이라 여긴다.

연초이고 하니 책 한 권을 권하고 싶다.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가 그것이다. 나 호호당도 주로 혼자 작업실에서 글을 쓰고 책도 읽고 하면서 주로 혼밥을 먹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산문이 그저 친근하기만 하다. 내 성향이 명랑한 편이란 점을 제외하면 작가와 유사한 점도 많은 것 같다.

아울러 그래도 연초인 관계로 대내외적으로 이모저모 살펴보는 글들을 준비하고자 한다. 일종의 기획기사 같은 거 말이다. 마지막으로 국운은 국운이고 독자 여러분 모두 댁내 건강과 안녕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글/김태규 명리학자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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