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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그늘에서 돋아나는 '신폐'


입력 2018.04.09 05:40 수정 2018.04.09 06:08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김기식 '내로남불'에 임명 밀어붙이는 청와대

자기 진영측 비리나 폐단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

[Ⅰ] 인과(因果)가 뒤섞인 박 전 대통령 징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22부는 24년 징역에 벌금 180억 원을 선고했다.

“이와 같은 피고인의 범행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국정질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결국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결정으로 인한 대통령 파면’이라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바, 이러한 사태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부여된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누어 준 피고인과 이를 이용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한 최서원에게 있다고 보아야 함.”

김세윤 부장판사가 낭독한 양형 이유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인과를 뒤섞어 인식하고 판단한 느낌을 준다. ‘범행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국정질서가 큰 혼란에 빠졌다고 했는데,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범행’이라는 것은 밝혀진 게 아니라 보도되었을 뿐이다.

후에 탄핵재판소가 그를 파면했으니, 적어도 그 때는 ‘범행’임이 확인 되었던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헌재는 형사 재판을 하는 곳이 아니다. 따라서 헌재 결정은 ‘범죄의 확인’일 수가 없다. 헌재가 형사적 책임까지 감안했다고 한다면 이는 미래에 있을 형사재판의 결론을 끌어가서 탄핵결정의 근거로 삼은 격이 된다. 헌재의 탄핵결정을 형사재판 양형의 근거로 제시한 것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 헌재의 탄핵 결정, 특검의 형사소추, 1심 법원의 판결 과정을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인과가 뒤바뀌거나 순환논리에 빠진 인상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은 ‘증거 기타 조사상 참고자료’로 21건을 제시했는데 16건이 언론 기사였다. 이밖에 두 건의 공소장, 네 건의 참고자료가 첨부됐다.

헌재는, 이 지극히 허술한 탄핵소추안을 ‘급급히’ 심리한 다음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헌법 제111조 2항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가운데 이뤄진 당시 결정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박 전 대통령은 그날로 축출됐다). 그런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진보좌파 정권이 등장했다. “헌재가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 그 다음에는 혁명밖에 없다”는 말로 헌재를 압박했던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이다.

그 이듬해, 그러니까 올해 1월 22일 헌재는,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한민국의 변화≫라는 책을 배포했다. 창립 30주년 기념책자라고 했다. 헌재는 이 책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 “헌재 선고는 촛불집회의 헌법적 완결 체”라며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선고는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헌법적으로 승화된 결과물이었다”고 규정했다. 헌재는 또 “살아 있는 최고 권력을 민주적으로 퇴진시키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 법적 인증 도장을 꾹 눌러준 것”이라고 탄핵 결정의 의미를 강조했다.

책 배포 후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일자 헌재측은 “민간 용역을 통해 집필한 것으로 헌재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해명을 내놨다. 그 중요한 글을 외부 필자에게 맡겼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설령 그렇게 했더라도 최소한 원고에 대한 감수나 확인은 했어야 할 일인데, 그런 수고조차도 아꼈다는 것인가. 짐작컨대 누군가 확인한 다음 헌재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판단으로 인쇄에 넘겼을 터이다.

국회는 검찰과 언론을 핑계삼아 탄핵소추를 했고, 헌재는 국회의 소추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촛불집회의 위세까지 감안해서 탄핵 결정을 내린 것으로 여겨진다. 합리적 추론으로는 그렇다. ‘살아 있는 최고 권력을 민주적으로 퇴진시키는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라고 비장하게 표현했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무력화‧형해화한 권력이었을 뿐이다.

검찰의 제3자들에 대한 공소장이 탄핵소추의 명분이 됐고, 그것이 헌재 심리의 주요 고려사항이 됐으며 헌재의 결정이 형사재판의 양형 근거가 되었다. 이것이 다시 당시 언론 보도와 검찰 기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인과가 순환고리처럼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린 구조다. 그래서 법률 비전문가로서는 난해하다 할 수밖에 없다.

[Ⅱ] 실망은 줬지만 책임질 일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사법적 징벌의 과정‧결과에 대해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평가를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국민의 시각과 판단은 크게 요동치게 마련이다. 논리구조에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어쨌든 지금은 진보좌파 정권의 시대다. 그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도덕성 준법성 정의감을 과시하며 그 대척점에 선 사람 혹은 세력을 단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말이지만 국민들은 현 정권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진보좌파 세력의 언행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 까닭을 설명하고 말고 할 게 없다. 촛불집회 참가자들(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도덕적 타락, 헌법과 법률의 파괴, 불의한 권력 행사 등의 혐의를 씌우고 집요하게 성토했다. 그들은 진실을 밝혀내는 노력 따위는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수위를 높여 가며 공격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그랬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스스로 그 덕목들을 실천으로 입증할 때에만 국민들은 “과연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서니까 보수우파정권 때보다 확실히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괜한 훈수가 아니다. 정권 출범 후, 특히 올 들어 이른바 정치‧문학‧예술‧연예계에 불어 닥친 ‘미투운동’에서 ‘진보의 순수성’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고발의 대상자들 대부분이 진보에 속한 인사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더러운 손으로 남을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단죄해 왔음이 확인됐으며, 그 때문에 국민들의 배신감은 더 커졌다.

순순히 과오를 인정한 인사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되레 고발자를 공격하는 인간도 없지 않았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법률적으로 범죄자가 된 데 그치지 않고 정직성 책임감 또한 외면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옳은 쪽으로 이끌겠다며 그렇게 큰 소리를 쳐 왔다니! 진보좌파의 아이콘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그런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었을까?

정권 주변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 책임 회피의 사례는 ‘미투운동’에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경우 국희의원 시절, 국정감사 피감기관들의 비용 부담으로 여러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 중 한 번은 자신의 여비서와 미국 및 유럽을 여행했다.
그가 소장으로 있는 ‘더미래연구소’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 3년간 은행‧보험사 등 금융기관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가 참여하는 강좌를 운영해왔다는 언론 보도다. ‘미래 리더 아카데미’라는 이 프로그램의 참가비가 수백만 원에 달했음에도 업체들은 수강생을 보냈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이던 시절에 설립을 주도했고,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한 연구소라면 해당 기업들이 느꼈을 압박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김 원장은 자신의 적절치 못한 처사가 계속 들춰지고 있는데도 꿋꿋이 버티는 중이다. 그는 8일 자신의 이상한 외유에 대해 ‘국민기대에 부합하지 않았다’면서도 ‘소신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업무를 처리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는 했지만 대가성이 없었기 때문에 잘못은 아니며, 따라서 자리를 물러날 이유가 없다는 말이겠다. 대단한 배짱이다. 이런 정도의 도덕성을 가진 인사가 다른 기관도 아닌 금융감독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임명 철회는 전혀 고려한 바 없다”며 그에 대한 의혹들은 “금감원 측에 질문하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청와대의 반응으로서는 정말 의외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이 2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유‧배경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누가 대답 좀 해주시라.

“그건 혁명 과정의 한 측면이니까 그런 줄 알라”고 할 것인가. “우리 쪽 사람의 과오는 따지지 말라”는 뜻인가. 어느 때보다 명징할 것으로 기대됐던 문재인 정부의 처사가 왜 이런가요?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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