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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금융권 '계륵'으로 전락한 블록체인, 찬밥신세 안된다


입력 2018.04.12 06:00 수정 2018.04.12 16:08        이미경 기자

금융당국, 금융권 블록체인 관련 사업 줄줄이 제동

해외 금융권, 블록체인 기반 기술제휴 적극 검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 자산운용사에서 블록체인 산업 관련 종목에 투자하는 펀드가 새롭게 선을 보였다. 이 펀드 상품은 이미 미국 뉴욕 증시에서도 주목을 끌었던 블록체인 상장지수펀드(ETF)를 담고, 블록체인 기술력을 인정받은 기업들을 담으며 출시전부터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블록체인 기술 기업을 담았다는 펀드에는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제외됐다. 금융당국이 상품 명칭에 블록체인의 이름을 쓰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상품 명칭은 펀드의 성격이 드러나는 명칭 대신 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계열사 펀드와 유사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블록체인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되면서 당초 이 상품이 만들어진 목적과는 엉뚱한 이름이 붙여진 셈"이라며 "고객들도 상품 명칭만 보고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금융권 전반에 블록체인 사업 활성화를 독려하고 각종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융권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사업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감독원이 주관하는 블록체인 관련 회의도 잠정중단한 상태다.

언제 다시 재개한다는 언급조차 없다. 일각에서는 금융권의 블록체인 TF가 지방선거가 끝날때까지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금융권의 미래 먹거리가 정치 논리에 맞춰져서 선거의 훼방꾼으로 등극하는 모양새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지난해 암호화폐 시장이 묻지마 투자 형태로 금융권에 후폭풍을 몰고오면서 금융당국이 미리 몸을 사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록체인이 암호화폐 시장처럼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면 결국 금융당국이 책임을 안고갈 수 밖에 없어서다.

한 금융권 전문가는 "금융당국이 먼저 블록체인 관련 기술에 대해 금융자산인지 상품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줘야한다"며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4차 산업혁명은 외치면서도 정착 책임은 안지고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61개의 은행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암호화폐 '리플'사와 제휴를 맺고 블록체인 기반 통합 어플리케이션인 '머니탭(Money Tab)'을 출시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블록체인 활용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규제의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우리나라 금융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현재 일본에서는 송금 등 거래에 있어서 유연성이 제한적인데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경우 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대폭 제고되고 비용절감, 송금속도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금융기관들도 리플의 결제 솔루션인 'xCurrent' 적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아라비아 통화청에서도 리플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은행권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는 점차 활발히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에서는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조차 쓰길 꺼려하는 당국 앞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발판삼아 새로운 금융산업을 주도하는 사이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이러한 분위기에서 소외될 것은 자명하다.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앞으로 금융권의 미래의 핵심요인이 될 수 있는 블록체인의 형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좌초될까 우려스럽다.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결코 작지 않다. 블록체인이 몇몇 어설픈 투기꾼과 책임을 방조하려는 당국에 의해 퇴보하는 일은 없길 바랄 뿐이다.

이미경 기자 (esit91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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