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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유 공식 선언이 ‘비핵화 진전’? 벌써 축배라니...


입력 2018.04.23 05:56 수정 2018.04.23 06:00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트럼프의 응원은 너무 앞서지 말라는 경고

성급한 기대 전략적 차질로 이어져 들뜨지 말아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자 1면에 전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평양에서 개최된 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자 1면에 전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평양에서 개최된 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연합뉴스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만창일치로 채택된 것은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다. 비핵화나 핵포기 같은 말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김정은이 이끌었던 이른바 경제건설과 핵무력 병진노선이 성공했다는 대주민(對住民) 선언이고,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적으로 확인‧선포하는 세리머니였다고 하겠다.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들뜨면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

“우리 또한 미국 등과 마찬가지로 핵보유국이다. ICBM도 언제든 발사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은 ‘그 무슨’ 비핵화니 핵포기니 하는 이야기는 아예 꺼낼 생각도 말아라. 트럼프는 핵보유국 정상끼리 만나 ‘핵 없는 세상을 만들데 대하여’ 논의할 준비를 하라. 이런 조건 위에서 대화하자.”

그렇게 들린다. 우리 정부는 그간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대변했지만, 결국 핵보유 선언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정은은 핵개발과 실험을 이 시점에서 중단하겠다고 한다. ICBM 시험발사로 더 이상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바탕 위에서 거래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핵보유국이면 다 하는 다짐이다. 핵무기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의 골간이기도 하다. 우리도 그 반열에 올랐으니 ‘핵 폐기’ 따위를 요구할 생각은 아예 접으라는 엄포다. 버티면 결국 국제사회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을 법하다.

미국은 절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해 왔지만 ‘절대’라는 것은 국제정치의 사
전에는 없는 용어다. 북한과의 대화와 관련한 트럼프의 희망적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주지사들을 만나 “지금 김정은과 회담들에 대한 준비가 (잘) 이뤄지는 중”이라며 “아주 멋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마라라고 별장에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남북한이 곧 만나 한국전의 종전을 논의한다”며 “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남북한) 한국전쟁의 종전을 논의하는 데에도 나의 축복을 받을 것이고 합의까지 한다면 더욱 확실한 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트럼프는 덕담을 보냈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의 지향점이 같다는 점에서 청와대는 많이 들뜬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일단 문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에 종전선언이 있게 되면 다음 단계로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핵문제 해결이 시도될 것이다. 당장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타나진 않을지 모르지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점을 믿어도 좋다. 청와대의 기대 섞인 전망이 이렇지 않을까?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1일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결정을 환영한다. 북한의 결정은 전 세계가 염원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평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측의 마음이 바쁘고 꿈이 부푸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기대를 앞세운 채 사안을 보면 판단에 오류가 생길 위험성이 커진다. 무엇보다 그건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 아니라 핵보유 선언이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한국 너무 나가지 말라는 미국

트럼프가 추임새를 넣어준다고 장래의 상황 전개를 낙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하기 어렵다. 트럼프의 응원은 경고이기도 하다. 남북한 정상들이 문제해결의 단초를 만들어낸다면 당연히 축하하고 지지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이면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 대통령의 결정을 트럼프가 자동 승인하는 신뢰관계 및 시스템이 한‧미 양국 사이에 갖춰진 것 같지가 않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의욕을 앞세워, 아니면 전략적으로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한미 간에는 심각한 균열이 초래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엔 더 기대할 것이 없다, 따라서 미국 방식으로 문제해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한국정부를 건너뛸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은 12일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너무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번 한 것으로 언론들이 보도했다. 남북정상이 한 목소리로 종전선언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겠지만 북한의 핵포기 약속도 없는 상태에서 ‘평화협정’에까지 나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었을 것이다.

트럼프와 그의 안보분야 참모들이 볼 때는 문 대통령이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자신의 구상을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기정사실화함으로써 트럼프가 불가피하게 따라오도록 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아주 복잡해진다. 그래서 사전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게 아닐까.

하긴 대한민국의 안위(安危)가 미국의 제1차적 관심사일 리는 없다. 트럼프에겐 북한의 ICBM 폐기가 최우선 과제다.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위상과 역할에 대한 존중을 가시적으로 표할 경우 북한과의 대화를 진전시키려 할 수도 있다. 한국은 스스로 원하는 길을 가라고 하면서….

평화협정 체제가 되더라도 주한미군의 주둔에는 문제가 없다고 청와대가 강조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북한 김정은이 이를 수용한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용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전에 남‧북간, 미‧북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한미동맹 자체가 의의와 필요성을 상실한다. 공동의 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정부는 우리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생존과 안녕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북
한을 대해야 한다. 북한은 휴전 후 65년이 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살가운 동포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약속을 하고 또 했지만 이를 진심으로 지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게 북한 체제의 구조적 한계다.

전체주의적 통치체제를 가진 시대착오적 왕조체제는 내부적으로 신성(神性)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때만 체제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미국과 우리, 그리고 국제사회는 그렇게 해 주지 못한다.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핵을 포기한 리비아의 카다피가 그 예다. 외부의 적이 없어지자 내부의 저항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핵무장 기정사실화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고 우리 국민의 안녕과 북한 동포의 해방을 위한 방안은 한‧미동맹 및 공조의 강화를 통한 대북 압박이다. 우리 정부가 김정은에 은혜를 베풀어 아무 조건 없이 활로를 열어준다면, 그리고 이후 한국과 미국의 전략이 달라진다면 그건 우리 국민 전체에 대한 우환거리를 키워놓는 것 밖에 안 된다.

북한 체제는 대단히 포악하고 부도덕하고 시대착오적인 집단이다. 그 존속을 돕기 위해 우리의 위기를 자초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을 넘어 국민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다. 설마 우리 정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성급한 기대가 전략적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유념되어야 한다.

적벽대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도망가던 조조는 공명의 명에 따라 요소요소를 지키던 촉군의 공격으로 몇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화용도에 이르렀다. 겨우 사지를 벗어나나 했지만 관운장이 군사를 거느리고 막아섰다. 조조는 관운장에게 옛날의 정의를 생각해서라도 놓아줄 것을 간청했다. 의리를 중히 여긴 관우는 고민 끝에 결국 조조를 놓아주고 말았다.

공명은 짐짓 노한 표정을 지으며 관운장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촉주 유비가 빌고 빈 끝에 겨우 관운장은 용서를 받았다. 이에 앞서 관운장을 화용도로 보낸 후 현덕이 걱정을 토로했다. 관우의 의기가 깊고 무거워 조조를 놓아 보낼 것 같다는 말이었다. 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밤에 천문을 보니까 조조의 명이 아직 끊이지 않았기로, 관운장더러 인심이나 쓰라고 보낸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의 식량지원에 이어 김대중 정부의 거액 달러지원으로 김정일 정권은 멸망의 나락 일보 앞에서 회생할 수 있었다. 김정은 체제도 명운이 경각에 달린 시점에 이르렀다. 그 절박한 상황에 문 대통령이 해결사로 나섰다. 트럼프는 청와대에 대해 정말 괜찮겠느냐고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문 대통령은 자신감을 피력했을 게 틀림없다.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단호히 핵포기를 요구할 수 있을지, 아니면 환하게 웃으며 종전선언을 하고 숙제를 트럼프에게 떠넘기고 말지 필부 주제로도 애가 탄다. 혹 문 대통령이 기대를 저버렸을 경우 트럼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도 그것도 걱정스럽고.

청와대는 벌써 축제분위기다. 윤 국민소통 수석은 어제 판문점 정상회담을 모바일로 누구나 볼 수 있게 실시간 중계한다고 발표했다. 쇼잉에서는 그야말로 발군이다. 이렇든 저렇든 김정은이 다시 돌파구를 열고, 기세등등하게 평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상황은 면해야 할 텐데….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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