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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생선 자꾸 뒤집으면 살이 남아나겠나


입력 2018.05.21 05:43 수정 2018.05.21 20:55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이재용 부회장 집유 받자 삼성 해체하기로 작정했나

경제계 거목들은 떠나고 있는데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청와대 전경. ⓒ데일리안 청와대 전경. ⓒ데일리안

“니나카와(蜷川)가 입적하기 직전에 그의 스승 잇큐(一休) 선사가 찾아와 말했다.
‘내가 너에게 진리를 보여줄까 한다.’
니나카와는 자리에 누운 채 말했다.
‘저는 혼자 왔기에 혼자 갑니다. 이런 저에게 스승의 말씀이 무슨 소용이 되겠습니까?’
이에 잇큐 선사가 말을 받았다.
‘네가 만약 이 세상을 오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넌 이 세상을 헛살았다. 그건 너의 망상에 지나지 않아. 이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진리의 길을 보고 가거라.’
니나카와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났다.”(선문선답, 조오현 저)

구본무 회장에 대한 기억 한 토막

불제자가 아니니 선사들의 선문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저 읽기만 해도 느껴지는 바가 있기는 하다. 오고 간다는 의식은 산자의 것일 뿐, 망자에겐 생도 사도 애초에 없었던 일이다. 그렇게 이해한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별세했다는 기사를 읽다가 문득 떠오른 일화다. 고인은 미소를 짓고 가셨을 테니, 유족을 비롯해서 이승에 남겨진 사람들은 너무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위로를 드리고자 하는 뜻이다. 슬픔과 고통은 각자의 가슴에 묻고 그분의 삶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더 큰 애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전하고 싶다.

백면서생이 재벌총수와 무슨 개인적 연고를 가졌으랴. 다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을 이끌던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많이 허전해져서 조사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자 그대로의 일면식은 있었다. 20여 년 묵은 기억이다. 동료 논설위원에게 이끌려 인도어 골프장에서 한 달인가 연습하고 필드에도 몇 번 나갔었다. 주필이 쓰던 클럽 한 세트를 얻어들고 따라다녔는데, 끝내 골프에 재미를 못 붙이고 아예 작파하고 말았다.

그 시절의 어느 쌀쌀한 날이었다. 겨울이었을까? 어쨌든 추위를 많이 느끼며 그늘집에 들어갔다가 구 회장과 마주쳤다. 동료가 소개시켜준 덕분에 재벌총수의 손을 잡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구 회장이 간다온다 말도 없이 자리를 떴다. 높거나 돈 많은 양반들은 원래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서운함을 마음에 담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한참 지나서 구 회장이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일일이 손난로를 건넸다. 아마도 클럽하우스까지 가서 사왔을 것이었다. 우연히 그늘집에서 만났을 뿐인 다른 팀 멤버들이 발열 팩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쓸 사람은 흔치 않다. 혹 생각이 미쳤더라도 대개는 그런가 보다하고 말 일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 없이 그걸 사와서, (말하자면) 선물했다. LG에 대한 신뢰를 더하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 다시 만날 일은 없었지만 기억은 늘 새로웠다.

큰 기업인에겐 그 다운 풍모가 있다

그러고 보니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이미 오래 전에 경영 현장을 떠났다.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의 총수이지만 병마의 습격을 받아 무릎 꿇리고 말았다. 목숨은 건졌으나 4년째 의식불명의 상태라고 한다. 이 회장과는 일면식이 없을뿐더러 먼발치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의 좌절은 마음 아프다.

게다가 그의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제대로 역량을 발휘해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사법처리 파동에 휩쓸리고 말았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모두 형사적 징벌을 받아야 할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대정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는 이 느낌이 언젠가 진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마음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기업인들이라 해서 특권과 특혜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기업인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잣대로 그 처사가 가늠되어서도 안 된다. 상식이지만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는 대기업과 그 경영자 또는 기업인들을 윽박지르고 욱죄는 것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각자에게 그 책무를 다하게 하고, 그에 상응하는 몫을 허용할 때 정의는 실현된다고 믿는다.

농경사회에서 세습 대지주는 비난받을 만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업가군(群)을 같은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모두가 마음먹는다고 다 기업가가 되는 게 아니다. 성공하는 기업인에게는 남다른 자질이나 성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당장 창의력‧도전의식‧모험심‧판단력‧결단성‧통솔력 등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없이 시작하는 사업은 크게 성장하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기를 주저하면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같은 맥락이지만 모험을 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사업이란 어떤 측면에서는 갬블링과 유사하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이 결여된 사업주는 장사꾼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판단만 하고 결심을 못하면 만사휴의다. 아랫사람에게 동기부여를 잘 하지 못하거나, 아랫사람을 잘 부리지 못할 경우 사업의 발전은 기대할 바 못된다.

기업인만큼 굴곡 많은 삶을 사는 사람도 드물다. 롤러코스트 타듯 살아온 기업인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면 그대로 몰락하고 만다. 기업의 종사자들은 다른 회사로 옮길 수라도 있지만, 실패한 기업인이 의탁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억울해도 그건 온전히 자신만의 짐이다.

이창우라고, ‘제세산업’을 일으켜 엄청난 기세로 키우다가 1978년 외환관리법, 무역거래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됨으로써 결국 세상을 제압(制世)하기를 포기해야 했던 젊은이가 있었다. 81년에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당시의 시류(時流)‧기자‧관료 등을 조롱하고 질타하는 풍자집 ‘옛날 옛날 한옛날’을 출간했다. 물론 비감(悲感)도 짙게 묻어났다. 기자와의 문답형식으로 쓴 글인데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이 이렇다.

“왜 연전에 이 빈인가 골빈인가 책상물림을 경제기획원 장관인가 부총리인가 시켜놨더니 하다 안 되면 물러나면 그만 아니냐 하면서 당당합디다. 회사 하나 하다가 잘못해서 부도낸 놈도 쇠고랑차고 몇 년씩 살아야 하는 이 엄정한 신상필벌의 나라에서, 그래 나라 하나를 통째로 파산시킨 놈들은 집에 가서 잘 먹고 잘 살아? 배를 갈라도 부족한 판에, 도대체 그 따위 엉터리가 어디 있소? 악착같이 붙잡아 놓고 그 손해 보충시켜야지.”

책상물림이라고 장관되지 말라는 법이야 있을라고. 그들 가운데서도 유능한 행정수완을 발휘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기업, 특히 재벌기업을 늘 흘겨보던 학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경제지식을 ‘대기업에 대한 비판‧징벌’ 논리 개발에 쏟아 부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통령 개헌안 또 꺼내드는 여당

요즘 경제기사를 보면 정부가 아예 삼성그룹을 해체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데 자극받아, 찾아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다 들춰낼 태세로도 보이고…. 아무려면 그런 생각이기야 할까만 지켜보는 마음이 그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그게 아니면, 혹 이런 식으로 재벌기업의 경영권을 정부 기관이나 산하 공기업이 장악하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헌법 개정안과 겹쳐서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경제‧사회 구조를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형태로 바꿔놓겠다는 의지가 뿜어 나오는 듯하다는 말이다.

노동권과 그에 대한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대신 기업에 대해서는 의무와 책임을 더 지우는 쪽으로 헌정구조를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담은 개헌안 아니던가. 6‧13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하기가 불가능해진데 따라 포기했나 했더니,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이를 또 들고 나왔다. 이 당의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가 오는 24일 국회의장 선출과 함께 개헌안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아예 표결로 폐기시키자는 뜻은 아닐 텐데, 그렇다면 정부‧여당 공감 개헌을 기어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일까?

4‧27 판문점 회담 이후 청와대가 보이고 있는 남북 당국 간의 ‘민족 공조’ 조급증도 그렇고, 대기업 을러대기도 그렇고, 정말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내가 아둔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래서 말인데 정말 어떤 나라를 꿈꾸고 있는지, 그걸 정부 여당의 모든 구성원이 충분히 숙지‧이해‧동의했는지, 급격한 체제 변경의 후유증‧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된 것인지 누가 설명 좀 해주시라.

인구 5150만 명, GDP 세계 11위(IMF, 2018년 기준)나 되는 대국의 골격을 바꾸는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노자의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물고기를 조리하듯 하라)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작은 생선을 끓이거나 볶으면서 자꾸 뒤집어 대면 살이 남아나겠는가.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가난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오던 우리가 어느 날 요술방망이를 얻어 세계 유수의 경제 강국 반열에 오른 게 아니다.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사업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독려한 정치리더, 그를 믿고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던 기업가들이 우리의 오늘을 이루어낸 것이다. 근로자들의 역할도 당연히 컸지만 주도력은 정치리더와 기업가들의 철학과 의지, 그리고 역량에 있었다. 그 기업인들이 엄혹한 시절과 맞닥뜨렸는데 경제계의 거목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나고 있다. 여름 초입인데 마음은 스산하기만 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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