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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할 말은 하던' 경총 부회장은 어디 갔을까


입력 2018.06.19 06:00 수정 2018.07.03 08:32        박영국 기자

노사 현안 있을 때마다 기업 대변하던 '소신발언' 역할 실종

송영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오른쪽)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장으로 들어가며 손경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연합뉴스 송영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오른쪽)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클럽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장으로 들어가며 손경식 회장과 조우하고 있다.ⓒ연합뉴스

노사 현안 있을 때마다 기업 대변하던 '소신발언' 역할 실종

“여야 정당이 청년고용 관련 선심성 공약을 내세워 국민의 표만 좇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2016년 3월 경총포럼, 20대 총선을 앞두고)

“뭘 안 주면 안 줬다고 패고, 주면 줬다고 패고 기업이 중간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참담하기 그지없다.”(2017년 1월 고용노동부 장관 초청 30대 그룹 CEO 간담회)

“국회의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노사정 대타협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2017년 3월 경총포럼)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정책을 보면 진정 일자리 창출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세금을 쏟아 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임시방편적 처방에 불과하다”(2017년 4월 경총포럼, 19대 대선을 앞두고)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 인력난 뿐 아니라 근로자 소득감소까지 불러올 수밖에 없다”(2017년 12월 경총포럼)

김영배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이 재임 시절 내놓은 발언들이다. 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정부 정책이 논의되거나 선거철 정치권에서 기업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김 부회장은 여지없이 마이크를 들었고, 그때마다 재계에서는 ‘속이 뻥 뚫린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해 5월 비정규직 관련 발언으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이후 한동안 잠잠하기도 했지만 김 전 부회장은 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또다시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대해 언급하는 등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이렇듯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던 경총의 입이 막힌 것은 올해 2월 김영배 전 부회장이 박병원 전 회장과 동반 사임한 이후부터다.

근로시간 단축, 2019년도 최저임금 인상, 민노총 총파업 등 노동 관련 이슈가 줄을 잇는데도 경총은 간간이 입장 자료를 내놓는 선에서 그쳤고, 누구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5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조정하는 문제를 논의할 때는 노동계 입장에 동조해 해당 사안을 최저임금위원회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경총 부회장 자리를 이어받은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선임될 당시 ‘친 노동계 인사’라느니 ‘진보 정권에 맞춘 코드인사’라느니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결국 그 부분이 현실화된 것이다.

송 부회장은 나아가 경총 사무국 조직과 마찰을 빚고 ‘재택근무’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경총은 송 부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결국 경총 회장단은 지난 15일 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해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사실상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셈이지만, 송 부회장은 거부 의사를 밝힌 상태다.

송 부회장을 해임하려면 이사회를 거쳐 해임 안건을 수렴해 임시총회까지 개최해야 한다. 최소 한 달 가량은 어수선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경총 회원사들이 어떻게든 송 부회장을 해임하는 모양새는 피하기 위해 이사회와 임시총회 등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현 정권과 코드가 맞는 송 부회장을 내칠 경우 정권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경총 사무국이 송 부회장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잇달아 발표하는 등 더 이상 함께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송 부회장이 ‘버티기’에 나선 것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정부나 여당에서 지원사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송 부회장 거취를 놓고 혼란이 장기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외부의 압력 혹은 정치적 고려를 배경으로 송 부회장이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게 될 경우를 더 우려하고 있다.

송 부회장에게 주요 노동관련 현안에 있어 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신발언’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경총을 대표하는 이는 손경식 회장이지만 그는 CJ그룹 대표이사의 신분이라 운신의 폭이 좁다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 노동계, 혹은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특정 기업에 미칠 후폭풍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임부회장이 해줘야 한다.

물론 노동계와의 대결적 구도를 전환해 스킨십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송 부회장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하지만 경총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들의 대척점에 서서 경영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합리성’을 명목으로 경총의 색깔을 희석시켜버린다면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노동단체 간부가 정부와 기업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서 그가 쫓겨나고 그 자리에 새로 온 인사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도외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총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경총 부회장이 기업들이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강하게 반발하며 강성 발언도 서슴지 않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사라진 지금이 오히려 비정상이다.

경총 회장단이 언급한 ‘사태 수습을 위해 조속한 조치’는 지금의 시끄러운 상황을 일시적으로 덮는 미봉책이 돼서는 안 된다. 경총 조직이 정상적으로 제 역할을 하도록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부분까지 ‘사태 수습’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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