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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중단과 쌍궤병행? 북 비핵화 궤도 이탈했다


입력 2018.06.21 05:51 수정 2018.06.21 06: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이미 과거에 수차례 속은 기만적 방식 "세번 속으면..."

'초심'으로 돌아가 현재의 진행과정을 냉철하게 재점검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낙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낙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북핵 폐기와 관련한 협상이 궤도를 이탈하고 있다. 미국의 일관된 방침이었던 ‘선(先) 핵폐기-후(後) 보상’ 원칙이 후퇴하고,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단계적 비핵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이 제시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雙中斷)'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도 구체화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이 요구하는 동시적 조치, 즉 ‘행동 대(對) 행동’은 소위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와 같이 단계별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살라미 전술'의 일종이다.

이미 2005년 9·19 성명 등 기존 협상에서 북한이 수없이 써먹은 수법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단물만 빼먹고 ‘나 몰라라’ 하는 북한의 오리발 전술에 다시는 속지 않겠다는 '선 핵폐기-후 보상’ 원칙을 수없이 천명해왔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협상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찰떡같은 '북한과 중국의 공조'속에 미국과 우리가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고 있지 않은가? 기우일수도 있지만 필자는 최근 협상을 보며 '완전한 북핵 폐기의 기대'보다 그동안 북한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선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북 ‘최대의 압박’ 기조는 어느덧 흐물흐물해지고 구멍은 숭숭 뚫리고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첫째, 8월에 실시하려던 방어적 성격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훈련의 유예 문제다. 유예가 아니라 훈련이 재개되면 북의 거센 반발은 자명한 바 따라서 협상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파탄'되지 않는 한 한·미 훈련은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북핵 폐기의 첫걸음도 떼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 유예가 말이 되는가? 이야말로 ‘선 핵폐기-후 보상’도 아니고 북한이 요구했던 '단계적 비핵화'도 아닌 오히려 '선 보상-후 핵폐기'가 아닌가?

무엇보다 트럼프는 돈 문제까지 언급하며 한·미 연합 훈련을 '도발적'인 전쟁 게임(war game)'이라고 했다. 북한 방송보다 더 저열하고 잘못된 인식이다.

순수한 북한 남침 대비용인 UFG는 실제 병력이나 무기 동원은 최소화하고 도상 훈련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북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북한도 훈련 중단을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미 당국이 먼저 알아서 훈련을 중단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 한·미 훈련 중단은 북핵 협상의 마지막 고비에서 북을 핵 폐기의 길로 밀어넣을 최후이자 가장 강력한 카드다. 이런 중요한 카드를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장처럼 이미 '사명을 마친' 시설들과 교환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그동안처럼' 북한은 '앞으로도' 협상의 판을 깨지는 않으면서 교묘하게 완전한 핵폐기(CVID)를 회피하고, 협상도 최대한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전망대로 해도 최소한 ‘2년 반’은 걸린다.

'2년 반'이면 우리 군인들의 '복무기간'을 넘어서는 기간이다. 연합 훈련 한번 안해 본 군인들을 과연 '동맹군'이라 부를 수 있는가?

북한 같은 완벽한 1인 독재 체제와의 협상에서는 최소한 ‘믿어라, 그러나 검증하라’라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믿지마라. 그러므로 검증하라(Do not trust, therefore verify)’는 말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는 수구 냉전식의 사고가 아니라 역사와 경험을 통해 입증된 냉철한 현실주의적 사고다. '한·미 훈련의 중단'이 아니라 '한·미 훈련 유예 논의의 중단'을 강력 촉구한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 등 전통적 북한 혈맹들의 국제제재 이탈 문제다. 김정은은 올 들어 세 번째로 중국을 방문해 찰떡 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잦은 방중은 결국 한반도 새 체제 협의 과정에서 북중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비밀리에 이뤄진 이전 방중과는 달리 이번에는 김정은의 방중을 사전에 공개했다. 이는 북중 관계를 '당 대 당 관계'가 아닌 '정상 국가간 관계'로 바꾸겠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이에 따라 이미 중국은 북한 관광 제한을 풀었고 국경지역 교류도 사실상 재개했다. 덩달아 러시아도 유엔 제재 완화를 요구하면서 대북 제재의 뒷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북한이 이정도 협상에 나선 것도 강력한 제재와 압박 때문인데 이마저 뚫리면 도대체 무엇으로 북핵 폐기를 이끌수 있나?

미국은 지금도 "북이 완전히 비핵화한 것이 증명될 때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변화무쌍한 행태를 보면 이 또한 절대 믿을 수 없다.

올 들어 진행된 북핵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은 이미 본인이 원했던 것 이상을 얻었다. 3대 세습 체제의 독재자 이미지를 벗었고, 선량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이미지까지 얻었다.

또한 '북한 비핵화'를 전혀 다른 의미의 '한반도 비핵화'로 바꾸고, 이미 사명이 다한 시설의 폐기 쇼로 종전 후 최대 숙원이던 한·미 훈련 중단과 제재 완화까지 얻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모든 원인은 결국 북한과 한·미의 '비대칭 전력(非對稱戰力)' 때문이다. 바로 '김정은의 임기는 무한'한데 비해 '한·미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다는 점이다.

한·미 정상은 어떻게든 임기 중에 성과를 내기 위해 '통 큰 양보'로 서두르는데 비해 김정은은 장기적인 전략 아래 '벼랑 끝 전술'로 나간다면 애당초 정상적인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외교·안보에는 여와 야, 좌와 우가 없고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 한·미 정상은 더 이상 지금처럼 김정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천천히 서두르는(Festina lente)' 최대한의 협상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협상 결과물이 연속성을 갖도록 의회 비준을 추진해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똑같이 지속될 것이라는 인식을 북한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한·미는 오로지 '김정은의 선의'만을 믿고 양보를 거듭하며 당초 북핵 협상의 예정 경로를 급격히 이탈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과거 궁예처럼 '관심법(觀心法)'을 쓰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한눈에 김정은의 선의를 알아보는가? 안보와 생존의 문제를 상대의 선의에 의지하는 것은 제 안전을 '운(運)'에 맡기는 것과 같다.

한·미 정상은 협상 이전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현재의 진행과정을 냉철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는 이미 과거에 우리가 수차례 속은 기만적 방식이다.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 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 된다”는 말은 인간사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에서도 진리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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