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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식당 알바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8.07.12 13:34 수정 2018.07.12 13:41        박영국 기자

정부·노동계가 '기계에 의한 일자리 잠식' 앞장 서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결제기.ⓒ데일리안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결제기.ⓒ데일리안

정부·노동계가 '기계에 의한 일자리 잠식' 앞장 서

얼마 전 쌀국수를 파는 식당에 갔다. 값싸고 양 많기로 이름나 장사가 잘 되는 집이었는데,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줄 종업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인결제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직접 카드를 긁어 계산한 뒤 기다리다 음식이 나오면 가져다 먹는 방식이다.

사실 홀서빙 종업원을 없애고 무인결제기로 대체하는 식당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기에 크게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몸이 좀 분주하다는 것, 그리고 말한 마디 없이 음식을 주고받는 데서 오는 삭막함은 다소 어색했지만 이런 방식이 보편화된다면 곧 익숙해질 것도 같았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는 개념은 꽤 오래전부터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등장해 왔다. 그게 인류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놓고 과학과 철학의 충돌이 있긴 했지만 언젠가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공장 자동화의 수준이 고도화되고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차가 현실화되는 것도 모두 누군가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게 어느 시점에 현실이 돼서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었다. 2030년까지 20억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의 예상도 (불과 12년 뒤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새로운 기술이나 시스템이 개발되면 설령 기술적으로는 완벽하더라도 수요와 공급 측면의 변수에 의해 상용화는 한참 늦어지는 사례가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와 같은 탄소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차량의 보급이 역설적으로 유가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 식이다. 유가가 안정돼 기존 내연기관 엔진 차량의 유지비 부담이 크지 않다면 소비자들이 친환경 차량으로 이동할 당위성도 희박해진다.

기계에 의한 일자리 침탈 속도는 기계의 대체재(代替財)인 ‘인력’의 경쟁력이 좌우한다. 세밀한 작업이나 감성적 측면의 가치를 제공해주는 역할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기계가 사람을 뛰어넘기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비용 대비 효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면 그런 부분조차 무시된다. 기계를 들여놓는 데 소요되는 초기 투자비용과 유지비가 일정 기간 종업원의 인건비보다 월등히 저렴하면서도 생산성은 동일하거나 오히려 높다면 해당 분야는 급속하게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의도한 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고용을 늘려야 할’ 정부와 ‘일자리를 지켜야 할’ 노동계가 솔선수범(?)해서 기계에 의한 일자리 소멸 확산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 압박을 받은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은 종업원 수를 줄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계와 자동화 시스템이 널리 보급될 여지가 마련됐다. 공장 경비원을 해고하고 보안시스템을 설치하는가 하면, 홀서빙 알바를 구하는 대신 무인결제기를 설치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소비자 입장에서 쌀국수 집에 종업원이 없어 조금 불편한 것은 금방 익숙해진다. 대신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양의 쌀국수를 먹을 수 있으니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식당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던,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기업 근로자들의 권익은 거대 노조와 그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보호해 준다지만 이들의 일자리는 누가 지켜줄 것인가.

지난 10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노동계 측은 물론 정부가 선정한 공익위원들까지 합세해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안을 부결시켰다. 임금은 조금만 오르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절박한 이들을 대변해줄 사람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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