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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국가이면서도 유로를 쓰지 않는 이유


입력 2018.07.28 05:00 수정 2018.07.28 05:40        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⓽> 크로나를 고집하는 그들의 고집

독자적인 복지 정책 유지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

<알쓸신잡-스웨덴⓽> 크로나를 고집하는 그들의 고집
독자적인 복지 정책 유지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


6종의 스웨덴 지폐. 지폐의 인물들이 거의 다 문화 예술계 인사인 것이 특징이다. (사진 = 이석원) 6종의 스웨덴 지폐. 지폐의 인물들이 거의 다 문화 예술계 인사인 것이 특징이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유럽연합(EU) 국가다. 하지만 스웨덴은 EU의 화폐인 유로(Euro)를 사용하지 않는다. 스웨덴의 화폐는 크로나(Krona)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kr’로 표기하지만 국제표준화기구(ISO)의 ‘ISO 4217’ 화폐 단위로는 ‘SEK’로 표시한다. 왕관이라는 뜻이다. 27개 EU 국가 중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 체코 크로아티아 헝가리 폴란드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모두 9개국이다.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가 발행하는 스웨덴의 ‘크로나’는 1873년부터 현재까지 통용되고 있다. 1, 2, 5, 10 크로나 동전과 20, 50, 100, 200, 500, 1000 크로나 지폐가 통용된다. 2018년 7월 26일 기준으로 원화 대비 크로나 환율은 127.8원이다.

재밌는 건, 스웨덴 화폐의 모델들이 무척 젊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1000원 권 모델인 퇴계 이황은 1501년생 518살, 5000원 권 율곡 이이는 1536년생 483살, 그리고 1만원 권 세종대왕은 1397년생 622살, 5만원 권 신사임당은 1504년생 515살이다. 2명의 남성 학자와 1명의 여성 학자 겸 예술가, 그리고 1명의 전직 국왕까지 총 4명 지폐 모델의 나이 평균이 534.5살이다

미국은 역사가 짧아서 한결 젊다. 1달러 조지 워싱턴은 1789년생 230살, 2달러 토머스 제퍼슨은 1743년생 271살, 5달러 에이브라함 링컨은 1861년생 159살, 10달러 알렉산더 해밀턴은 1755년생 264살, 20달러 앤드류 잭슨은 1767년생 252살, 50달러 율리시스 그랜트는 1822년생 197살, 그리고 최고액권인 100달러 벤자민 프랭클린은 최고령인 1706년생 313살이다. 6명의 전직 대통령과 1명의 외교관, 모두 7명의 모델들 나이 평균은 240살이 조금 넘는다. 우리나라보다 거의 300살 가까이 어리다.

그럼 스웨덴은 어떨까? 스웨덴 지폐 20크로나의 모델은 우리에게는 ‘말괄량이 삐삐’로 알려진 동화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다. 1907년생이니 112살이다. 50크로나의 모델은 스웨덴의 시인이자 민중 가수로 유명한 에베르트 타우베다. 1890년생으로 129살이다. 100크로나 모델은 스웨덴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그레타 가르보. 1905년생 114살이다.

200크로나의 모델은 영화 ‘화니와 알렉산더’, ‘제7의 봉인’ 등의 세계적인 거장 잉마르 베리만이다. 그는 1918년 생으로 딱 100살이다. 그리고 500크로나의 모델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 그는 잉마르 베리만과 동갑내기다. 마지막 최고액권인 1000크로나 모델은 제2대 유엔사무총장을 지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는 스웨덴의 외교관인 다그 함마르셸드다. 1905년생 그레타 가르보와 동갑인 114살이다.

미국보다 훨씬 젊다. 111.5살이다. 타우베를 제외하고는 모두 20세기의 인물들이다. 게다가 모델들의 직업이 독특하다. 동화 작가와 가수, 영화배우와 영화감독, 그리고 성악가와 직업 외교관. 다그 함마르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화계 인사다.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릭스방크. EU 국가이면서도 EU의 간섭을 받지 않는 복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유로가 아닌 자국 화폐를 고집한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의 중앙은행인 릭스방크. EU 국가이면서도 EU의 간섭을 받지 않는 복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유로가 아닌 자국 화폐를 고집한다. (사진 = 이석원)

조금은 독특한 스웨덴 지폐의 모델들 얘기로 벗어났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최근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나 벨기에 등 EU의 중심 국가들이 EU 탈퇴를 선언하거나, 내부적으로 EU 탈퇴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도 스웨덴은 강력한 EU 지지국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오래된 자국 화폐를 고집하는 걸까? 이유가 한두 가지는 아니겠지만, 스웨덴 내에서는 가장 큰 이유로 스웨덴의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03년 유로 도입에 관한 국민 투표가 실시됐을 때 스웨덴의 시민들은 유로 대신 자국 화폐인 크로나를 선택했다. 만약 스웨덴이 유로를 사용하게 되면 독자적인 재정 운용이 어려워지게 돼 스웨덴 고유의 복지 정책에 손상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공통의 통화를 사용하면 비슷한 수준의 복지 예산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스웨덴의 복지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EU 평균치로 조정될 경우 스웨덴의 복지 정책은 대대적인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심지어 국민투표 이후 스웨덴은 고의적으로 ‘유로존 가입 조건’ 중 일부를 충족시키지 않고 있다.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극히 일부의 정치세력의 압박이나 스웨덴의 유로존 가입을 종용하는 주변 다른 나라들의 참견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즉, 스웨덴은 자국의 복지를 최상의 가치로 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1930년대 사민당의 장기 집권이 시작됐을 때부터 시작해 1970년대 올로프 팔메 총리 집권 시 완성된 복지 정책이 손상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웨덴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일 중 하나는 사민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은 물론,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집권했던 보수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들도 이런 기조에는 대부분 동의를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총선에서부터 부상하기 시작해 최근 제법 의석수를 많이 늘린 극우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 정도가 이런 부분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지만, 그래도 다른 제 정당들이 유로 가입에 반대하는 이유가 ‘단일 대오’인 탓에 스웨덴은 ‘복지를 유지하기 위한 유로 기피’는 큰 흔들림이나 갈등이 없는 것이다.

현재 크로나의 위상은 종교보다 더 우위의 가치를 지니는 스웨덴의 복지를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확고한 의지이고, 신념의 표상이다. 복지의 가치를 그 복지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부여하는 것은, 복지는 권력자 등 정치인이나 정당 간의 이념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게 스웨덴의 크로나인 것이다.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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