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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불법주차 사태에 나타난 김여사, 여성혐오


입력 2018.09.01 07:20 수정 2018.09.01 07:36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 tv> ‘00녀’ 조리돌림이나 ‘김여사’ 조롱은 여성혐오의 일종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이번 주 인터넷을 달궜던 이른바 ‘송도 불법주차’ 사태가 차주의 사과로 일단락됐다. 차주가 직접 나서서 공개 사과를 하진 않았지만, 입주민대표단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고 주민들이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누리꾼의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사과를 했다는 기사에도 수천 개의 비난 댓글이 달렸을 정도다.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사과문만 전한 것이기 때문에 사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차주를 성토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언론 카메라까지 있는 가운데 나타날 경우 자신의 신상이 드러날 것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신상을 털어 공개하겠다는 누리꾼들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신을 드러내긴 어렵다.

이 차주가 한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며칠에 걸쳐 국가적 범죄자 수준으로 집중 질타를 받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세상엔 수많은 범죄 및 사회적 구설수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 사건보다 훨씬 심각한 사안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사건에 누리꾼들이 집중한 이유는 뭘까?

이것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이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댓글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비난하는 댓글 중에는 차주의 성별을 명시한 것이 많았다. 그 차주의 성별을 명시하면서 비난하거나, 아니면 차주가 여성인 것을 빌미로 여성 일반 또는 여성 운전자 일반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나타났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음주교통사고로 크게 물의를 빚은 황민 사건에선 그가 남성인 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사안의 경중을 따져보면 송도 불법주차 사건은 사람이 사망한 황민 음주운전 사고에 비해 경미함에도 불구하고 훨씬 큰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면서 차주가 여성이란 점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그 전부터 어떤 여성이 경미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00녀’라고 하면서 흉악범 이상으로 질타하는 것이 한국의 인터넷 문화였다. 여성을 인터넷상으로 조리돌림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다. 또, 여성 운전자를 ‘김여사’라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문화도 있다. 과거 유명 셰프가 다른 차량의 통행을 막을 정도로 주차를 잘못 해놓은 차의 사진을 SNS에 올리며 ‘김여사님들 파이팅!’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차의 운전자가 누군지, 성별이 어떻게 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덮어놓고 ‘김여사’라며 조롱한 사건이다. 이럴 정도로 김여사 조롱은 우리 인터넷에서 뿌리 깊은 문화다.

‘00녀’ 조리돌림이나 ‘김여사’ 조롱은 여성혐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송도 불법주차 사건은 누가 보더라도 차주가 잘못한 일인데 마침 그 차주가 ‘아줌마’ 연령대의 여성이란 점이 ‘김여사’에 딱 들어맞았고 여성이니까 ‘00녀’ 코드에도 맞았다. 워낙 확실하게 잘못한 일이기 때문에 강도 높게 비난하기에도 적당했다. 이런 요소들이 작용해 인터넷에서 악플 폭탄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그 차주는 당연히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공동체도 왜 이런 정도의 사건에 국가중대사급으로 집중하며 인터넷에 이상 열기가 나타났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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