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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권 성립의 연원


입력 2018.09.10 08:15 수정 2018.09.10 14:51        데스크 (desk@dailian.co.kr)

<칼럼> 북한은 소련이 만들어놓은 꼭두각시

남북협상 뒷전에서 헌법 확정…병영국가 속성 바뀔 기미 없어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북한은 소련이 만들어놓은 꼭두각시
남북협상 뒷전에서 헌법 확정…병영국가 속성 바뀔 기미 없어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이 전쟁은 과거의 전쟁과는 같지 않습니다. 누구나 한 영토를 점령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사회제도를 그 곳에다 강요합니다. 누구나 자기의 군대가 그렇게 할 힘을 가지는 한 자기 자신의 사회를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밀로반 질라스, 스탈린과의 대화, 류재갑, “6‧25전쟁과 북한의 통일정책” 재인용 : 2차 대전 중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부당수로서 사절단원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했던 밀로반 질라스에게 스탈린이 한 말이다).

소련이 만들어놓은 꼭두각시

“견고한 평화를 세우려는 동맹 제국, 특히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소련은 조선이 또 다시 극동에 있어서의 전쟁 위협의 불씨가 되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었다.……소련은 조선이 진정한 민주주의적 국가로 되고 침략주의적 세력이 조선을 또 다시 우리나라를 침범하기 위한 근거지, 연병장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는 것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부 스모렌스키, “조선임시인민정부의 창립문제에 관하여”, 1946년 6월 3일자 프라우다紙, 하기와라 료, 한국전쟁, 최태순 역, 재재인용).

북한체제 성립의 연원을 짐작케 하는 기록들이다. 소련은 한반도 내의 상황이나 사람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괴뢰정권을 세우기에 바빠서 김성주를 하바로프스크에서 데려 와야했던 것이다.

1945년에 귀국한 그는 한동안 김영환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다 10월 11~12일께 소련군 정치사령부 로마넨코 소장의 주선으로 평남인민정치위원회(위원장 조만식) 지도부를 평양시내 일본 요리점 ‘다마야’에서 만났을 때 김일성으로 소개됐다. 이어 14일 평양 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김일성 장군 환영 평양시 군중대회’를 통해 ‘김일성 장군’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이어 12월 17일에 개최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제3차 확대 집행위원회에서 소련 군정의 뜻에 따라 책임비서로 선출되면서 정치전면에 나섰다(류재갑, 앞의 글).

일설에는 서울에 있던 소련 영사 사부시나가 박헌영을 공산당 책임자로 추천했으나 소련 내무성 연해주지구 경비사령관 스티코프가 자기 품안에서 훈련시킨 만주의 공산당 유격대 출신 한인 중에서 지명해야 한다고 베리야 제1부수상 겸 내무상에게 건의했다고 한다(하기와라 료, 앞의 책).

소련은 46년 2월 9일 북한지역에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을 선포했다. 그해 8월 15일 김일성은 이 위원회를 ‘전체 인민의 의사와 리익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중앙주권기관’이라고 선언했다(김일성 선집 제1권, 양호민 “남북분단에 대한 북한의 인식”에서 재인용). 사실상의 정부수립 선언이었던 셈이다. 그때는 아직도 미소공동위원회가 존속하고 있던 때였다. 소련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진다. 반면 미국은 3년간의 군정을 통해, 그리고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전 과정에서 괴뢰정권 수립을 획책한 바 없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1월 3일 선거절차를 거쳐 47년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되었다. 임시가 아닌 정식 인민위원회가 된 것이다. 소련은 47년 11월 18일 북조선 인민회의 재3차 회의에서 조선임시정부 헌법초안 작성을 결의케 했다. 48년 2월 6일 소집된 인민회의 제4차 회의는 헌법제정위원회의 헌법초안을 ‘전인민적 토의’에 회부토록 했다. 이 회의는 조선인민군 창설방침도 결정했다(이틀 뒤 2월 8일 인민군 창설).

남북협상 뒷전에서 헌법 확정

헌법초안은 스티코프, 레베제프, 로마넨코 등 소련 군정 지도층의 지휘 하에 친킨, 피츠호프, 바르사노프 등이 기초했고, 이를 강(姜)미하일, 박태섭, 임하 등 조선계 소련인들이 번역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은 4월 29일 인민회의 특별회의의 승인을 통해 ‘헌법’으로 확정됐다. 이로써 북한정권 수립은 완성됐다. 남한의 제헌국회 총선이 실시되기 훨씬 전이었다.

북한은 김일성 정권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전조선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全朝鮮政黨社會團體代表者連席會議)’라는 것을 4월 19일부터 26일까지 일정으로 열었다. 김구, 김규식을 필두로 한 남측 대표단이 대거 참석해서 거수기 역할을 했다. 이 기간 중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南北諸政黨社會團體指導者協議會 : 南北要人會談)도 27일부터 30일까지 열렸고 김구‧김규식과 김일성‧김두봉 4인 간의 회담도 있었다(송남헌, 한국현대정치사1). 김일성 집단은 남북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헌법을 재확정 것이다.

북측은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정부수립을 기다렸다가 8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9월 2일부터 10일까지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가 열렸다. 이미 시행되고 있던 헌법은 약간의 손질을 거쳐 8일 채택됐고, 9일 엔 내각 구성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에 따라 9일이 북한정권 수립일이 된 것이다. ‘9‧9절’이라는 게 생겨난 연유가 이상과 같다.

북한 정권은 출생부터가 상식과 통념에 반하는 기형적인 것이었다. 그 정권의 유지에 폭력은 필수적 수단이다. 폭력이 배제된 북한 정권은 존재할 수 없다. 주민들에 대한 공포심 주입이 정권의 일상 업무다. 정치범 수용소를 없애지 못하는 까닭을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군대 창설일은 물론 정권 성립일에 까지 군사퍼레이드를 벌이는 데서 체제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바로 병영국가라는 뜻이다.

언론들은 9일 열병식에 ICBM이 등장하지 않았고, 김정은의 연설이 없었으며, 핵무장 언급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던데, 정말 중요한 것은 열병식이 포기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다.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폭력정권의 속성도 달라지지 않는다. 김영남은 이날 연설을 통해 “공화국은 외부 세계의 공격위협과 침략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당의 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 선군정치 강성대국 노선을 포기하는 순간 김정은의 권력기반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다. 이는 분명한 결론이다. 다만 포기할 것처럼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자신들의 조종 가능 범위에 들어왔다고 여길 법하다. 미국이 문제이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김정은 같은 종신집권자가 아니다. 밀고 당기기 식 협상전략을 고수하면서 때로는 벼랑끝 전술로, 때로는 사슴눈 술책으로 시간을 끌다가 보면 트럼프의 시간은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게 전공인 북한 정권이 이제 와서 그런 효과적 기만책을 포기하려 할 까닭이 있겠는가.

병영국가 속성 바뀔 기미 없어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행을 고집하고 있다. 18일부터 20일까지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갖기로 특사단을 보내 합의했다. 저들이 우리 측의 ‘알현’으로 표현하는 그런 방식을 이번에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하는데 일조하기로 한 인상이다. “목적이 숭고한데 까짓 체면 좀 구긴들 무슨 대수랴!” 그런 생각일까?

거기 가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결행할 의지에 차 있다. 그건 단지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특사단 귀환보고에서 말했다. 대수롭잖은 형식적 선언인 만큼 심각히 생각할 것은 없다고 우리 국민과 미국 정부를 설득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일인데 왜 북한 정권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집요하게 요구해 왔을까.

미국 측이 남북관계 진전은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문 대통령과 그 안보참모들은 오불관언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미 그렇게 선언했다. “‘우리민족끼리’ 친하겠다는데 외세인 미국의 간섭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뜻의 쐐기를 박은 것이다.

남북정상이 종전선언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그건 정치적 선언에 그칠 수가 없다. 북한은 즉각 유엔군사령부 해체, 한미동맹 폐지, 주한미군철수를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미국이 이를 비핵화 문제와 엮으려 해도 명분에서 밀리고 만다. 선언일 뿐 협정이 아니라고 우겨봐야 소용이 없다. 정상 간의 합의라는 점에서 북한은 주장할 명분을 얻고 국제사회도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어이 김정은과 종전선언을 하겠다면,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김을 믿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설명해 줘야 한다. 공포정치로 버티고 있는 김정은 집단이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애로 대하리라고 믿는다 해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자신이 다스리는 주민에게도 그처럼 잔인한데 70여년 적대관계를 지속해온 우리에겐 착한 이웃이 된다? 자신이 다스리는 주민은 짐승처럼 학대하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은 살뜰히 챙겨야 할 민족으로 대한다? 이런 환상을 우리에게 심어주려 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소련의 꼭두각시로서 한반도의 북쪽을 장악하고, 그 여세를 몰아 남쪽까지 점령해 이른바 ‘국토완정’을 이루겠다는 야망으로 온갖 반민족적 작태를 거듭했던 저 집단에 대해 왜 갑자기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며 친근감을 과시하게 됐는지를 정직하게 말해줘야 한다. 이념적 근친성 때문인가? 보수와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기 때문인가. 그게 진보좌파 일부의 오랜 숙원이었기 때문인가. 국민에 대한 의리보다는 이념에 대한 의리를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인가. 국민의 안전보다는 김정은 체제의 안전이 더 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혹시 아닌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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