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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 독재자의 말 심부름을 하다니


입력 2018.10.22 06:00 수정 2018.10.22 06:05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좌파가 말하는 ‘민족’ 누구인가

유럽 각국 정상은 CVID 역설…“5‧24 해제엔 미국 승인 불필요”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좌파가 말하는 ‘민족’ 누구인가
유럽 각국 정상은 CVID 역설…“5‧24 해제엔 미국 승인 불필요”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박3일간 평양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월 20일 삼지연 공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의 환송을 받으며 공군 2호기로 향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박3일간 평양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월 20일 삼지연 공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의 환송을 받으며 공군 2호기로 향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은 ‘민족자주’, ‘민족자결’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한반도 문제는 자신이 이끄는 한국정부와 김정은이 군림하고 있는 북한 지배집단 양자가 함께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긴 국민의 정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것은 일제였다. 해방 후 내셔널리즘은 퇴색될 법도 했으나 오히려 맹위를 떨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이를 부여잡고 집요하게 보수세력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진보좌파에게 ‘민족’은 정치적 사고의 핵심을 이룬다. 사회주의적 가치의 추구는 오히려 뒷전이다.

좌파가 말하는 ‘민족’ 누구인가

정치 외교 안보분야에서 ‘민족’은 거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있다. 문 대통령과 그의 핵심참모들도 ‘민족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여전히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유권자들의 ‘반민족적 작태’라는 것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적 우월성을 과시한다. ‘민족’을 독점해 버린 것이다. 지구촌 시대라는 지금에 와서도 ‘민족’은 좌파의 공격무기이자 방어무기로 위력을 자랑하고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73년 전에 이뤄졌다. 미군정 3년을 거쳐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그들의 ‘민족주의’도 의미와 궤도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대표상표를 포기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들은 분단상황에서 ‘민족주의’를 되살릴 가능성을 봤다. 통일이 될 때까지 진정한 해방과 광복은 없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통일이 된 후에나 민족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겠다.

앞으로도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를 고수하는 한 좌파의 민족주의적 투쟁은 계속되게 마련이다. 가장 효과적인 구호가 ‘민족공조’ ‘우리끼리’다. 그들은 친일 인명사전이라는 것을 기어이 만들어냈지만 6‧25 전범(戰犯)들과 동조세력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주의, 혹은 유사 이념에 대한 충성심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렸다. 수백만 명의 남북 동포, 우리 군과 유엔군의 희생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 좌파 정권이 말하는 ‘민족’은 누구인가. 김정은을 필두로 한 북한의 지배계급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정권끼리의 어두운 담합이라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 주민을 말하는 것인가. 북한 주민들이 우리의 동포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북한의 지배집단과 일반주민을 한 묶음으로 ‘민족’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피지배자들일 뿐 김정은과 동렬의 ‘민족 구성원’이 아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이른바 백두혈통으로서 일반주민과는 계통이 다르다. 그 혈통을 배경으로 북한 2,500만 주민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김정은에 대한 협력을 ‘민족공조’라고 주장하면 이야말로 반민족적 작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동포 혹은 민족은 북한의 피지배 주민들이다. 이들을 외면하면서 ‘백두혈통’의 영구집권을 거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는 민족 배신행위가 되고 만다. 독재정치의 비용을 감당해 줌으로써 주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이다.

유럽 각국 정상은 CVID 역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만 당하고 말았다. 그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막아주었다. 이에 힘입어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그 선대 김일성보다 더한 폭압통치를 일삼았다. 물론 지금도 그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 만약 김정은이 개과천선해서 북한 주민의 인권과 복리를 신장시키고 보장한다고 하면, 그 순간 김정은의 권력체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 대통령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다. 그는 지난 13일부터 21일까지 유럽을 순방하면서 북한을 대신해서 제재완화를 역설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비핵화보다는 제재완화에 무게가 실린 주문이었다.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문 대통령이 부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제재는 풀린다. 그런데 왜 그처럼 집요하게 북한의 외교부장 역할을 자임했을까? 누가 그 속을 알겠는가.

방문국 및 아셈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의 정상들은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강조했다. 아셈 정상회의 폐막과 함께 발표된 의장 성명 역시 CVID 원칙을 재확인시켰다. 아울러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극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촉구했다.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유럽순방이 ‘성공적’이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오히려 실패 쪽에 가깝다. 유럽 각국 정상들은 문 대통령의 설명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론은 CVID였다. 아셈 정상회의의 결론도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라는 사람은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 완화를 통한 비핵화 촉진의 필요성을 공론화한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억지스럽고 궁색한 말재간이다.

문 대통령이 대표하는 대한민국은 북한 핵 및 미사일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어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어느 국가의 원수보다도 더 단호한 목소리로 북한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유럽 각국의 지원과 협력을 호소할 일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오히려 김정은의 편을 들어 제재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50회 넘는 정상회담을 했습니다만 외국 정상들의, 북측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노릇 또는 변호인 노릇을 했고 때로는 얼굴을 붉혔던 일도 있습니다.”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합의해 발표한 ‘4‧27판문점 선언’은 ‘10‧4공동선언’의 내용을 그대로 담았다. 하긴 그 때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만큼 두 선언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고 해서 이상해 할 일은 아니겠다. 문제는 그 때나 지금에나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랬으면서도 정권측은 합의내용을 국회가 비준해야한다고 압박을 가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을 유난히 공격하던 사람들이 막상 정권을 잡자 무소불위의 괴력을 뽐내고 있다. 이게 좌파적 정치행태인가.

문 대통령은 17일 이탈리아를 방문했고 그 다음날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그는 교황에게 김정은의 초청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김정은의 정식 초청장이 오면 방북을 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5‧24 해제엔 미국 승인 불필요”

문 대통령은 어느새 김정은의 충실한 메신저 겸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사는 처지이면서도 미국과 유럽 각국에 대해 제재완화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정말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에게 김정은의 방북 초청의지를 전한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교황으로서는 문 대통령의 메신저 역할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직접 서한을 보내오면 될 일인데 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시켜 초청의사를 전했는지, 누구나 의아해할 일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의 말 심부름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대개 문 대통령에 앞서서 대외정책 가이드 역할을 하는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이럴 때 말 않고 넘어갈 리 없다. 그는 18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5·24 조치 해제’와 관련 “미국 정부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24 조치 해제는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지적한 데 대한 반박이었던 셈이다.

그는 또 남북 군사분야 합의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항의한 것과 관련 “중요한 건, 비무장지대(DMZ)는 유엔사 소관이므로 우리는 유엔군사령부와 협의를 한다는 점”이라며 “유엔사와 미국 간 소통 문제는 그들의 문제이지 우리 문제가 아니다. DMZ 관련 사업은 우리가 미국과 협의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미국 소관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미국 측 간섭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군사동맹관계라면 군사적 사항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데 문 특보는 이 상식을 일부러(아마도) 비켜갔다.

“북한은 패전국이 아니다. 미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전쟁을 벌였다가 인명과 재산에 엄청난 손실을 입고 패퇴했다면 그 자체로 ‘패전’이다. ‘동등’하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 “왜 미국이 같은 핵보유국인 북한에 대해 예의를 차리지 않는가 라고” 따지는 표현이다. 우리는 핵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 상대가 못 된다는 말인 것처럼도 들린다. “핵을 갖지 못했으니 협상할 생각은 말고 경제적 지원이나 통 크게 할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의 이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대통령 특보는 미국을 견제하기에 온갖 논리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서 멀미를 느끼게 된다. 도대체 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어 가려는지, 방법론에 문제는 없는지,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는 김정은과 정말로 평화공존을 할 수 있다고 믿는지, 그가 폭압정치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기나 한지, 정부의 누군가는 말해줘야 한다. 그게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고 도리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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