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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일단 낚고 보자'식의 광주형 일자리


입력 2018.12.07 11:29 수정 2018.12.07 12:37        박영국 기자

여당 표밭관리·광주시 실적쌓기 급급해 본래 취지 벗어나

5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중회의실에서 '광주형 일자리' 협상 잠정 합의안을 수정 결의한 노사민정협의회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5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중회의실에서 '광주형 일자리' 협상 잠정 합의안을 수정 결의한 노사민정협의회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여당 표밭관리·광주시 실적쌓기 급급해 본래 취지 벗어나

투자 유치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제안자가 최초 제안 내용을 뒤엎고 더 나쁜 조건을 내미는 일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투자자 입장에서 기존보다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는 일은 있어도 기존보다 불리한 조건에 투자를 진행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 진행 과정을 보면 이런 기본 상식도 모르는 이들이 일을 추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핵심은 ‘반값 임금’이다. 지자체가 복지를 책임지고 노동계를 설득해 낮은 임금 유지를 보장할 테니 공장 설립에 일부 지분을 투자하고 생산물량을 공급해달라는 게 기본 취지다.

현대차가 사업 참여 검토에 나선 것도 이런 조건이 제공된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이미 국내공장 생산능력이 포화된 상태에서, 기존과 같은 비용이 들어가는 방식이라면 지리적 연관성이 전혀 없는 광주에 추가로 공장을 설립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반값 임금’ 공장이라면 경차와 같이 연봉 1억원에 육박하는 고임금 공장을 운영해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는 제품 정도는 생산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사업 검토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광주시는 최초 제안 조건을 뒤엎었다. 노동계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협상안 중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는 내용에 노동계가 반발하자 이를 빼고 ‘조기 경영 안정 및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문구로 바꿨다.

‘단체협약 유예’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핵심이다. 이 조항이 빠진다면 광주시가 약속한 임금 경쟁력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매년 ‘경영 안정’ 여부를 놓고 노사가 힘겨루기를 하다 언젠가는 일반 자동차 공장 수준으로 임금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현대차에 울산이나 아산공장과 같은 자동차 공장을 광주에 하나 더 설립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 조건을 들고 현대차와 다시 협상을 진행하고 조인식까지 할 생각을 했다는 무모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일련의 과정을 역으로 되짚어 보면 애초에 ‘반값 임금’은 ‘미끼’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애초에 광주에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고 싶었으나 대기업 총수를 불러다 겁박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니 일단 ‘반값 임금’을 미끼로 기업을 끌어들여 놓고 인원을 채용해 공장부터 돌리고 보자는 식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협상안에 새로 넣은 ‘안정’, ‘고려’ 등 모호한 문구들을 보면, 일단 기업이 투자를 하고 생산물량까지 배정을 해놓으면 발을 빼기 힘드니 그 뒤로 임금이 오르건 말건 나 몰라라 하겠다는 의도가 느껴진다.

결국 ‘광주형 일자리’는 경제부양 성과를 실적으로 쌓으려는 광주시와 2020년 총선에 대비해 표밭을 관리하려는 정부·여당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탄생한 ‘낚시터’에 불과해 보인다. 여기서 미끼를 잘못 물었다가는 기업만 낭패를 보는 상황이 우려된다.

자동차 대기업 근로자들의 절반 임금만 받고도 열심히 일하겠다는 이들은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게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기본 취지다. 이 취지에서 벗어난다면 사업 자체가 의미가 없다.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거나, 아예 사업을 접거나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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