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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2년째 청와대에 새치기 당한 경제계 신년인사회


입력 2019.01.04 13:41 수정 2019.01.04 14:07        박영국 기자

경제계 신년인사회 참석 대신 청와대 신년회에 4대 총수만 불러

'정부가 경제 주도' 아집 단적으로 보여줘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신년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신년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제계 신년인사회 참석 대신 청와대 신년회에 4대 총수만 불러
'정부가 경제 주도' 아집 단적으로 보여줘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정책이 지금 경제난의 주요 원인이다. 경제는 경제 주체들에게 맡겨야 한다.”

경제계에서 끊임없이 지적해 왔던 사안이다. 하지만 정부와 청와대는 여전히 자신들이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놓고 벌어진 잡음은 현 정권의 이런 아집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신년회를 열고 4대 그룹 총수들을 불러 모았다. 경제계 최대 신년 모임인 ‘2019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열리기 바로 전날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리 4대그룹 총수들의 상견례 자리를 마련해 준 덕분(?)에 다음날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는 이들의 불참이 예견됐다. 그나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막판 참석을 결정하면서 가까스로 ‘4대그룹 총수 전원불참’ 사태를 막았다.

지난해 ‘2018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날 열린 청와대 신년회에 4대그룹 총수들을 소집(청와대의 초청을 거부할 강심장은 없을 테니)하면서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김 빠진’ 행사가 됐었다. 경제인들의 최대 신년 모임이 2년 연속 청와대에 ‘새치기’를 당한 꼴이다.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지난 1962년부터 50여 년간 경제계를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해 왔다. 매년 초 주요 기업인들 뿐 아니라 정부 각료, 국회의원, 주한 외교사절, 사회단체, 학계, 언론계, 노동계 주요 인사들까지 모여 우의를 다지고 새해 대한민국의 경제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도 일종의 관례였다. 과거 대통령들은 자신이 주재하는 신년회에 주요 기업 총수를 초청하는 대신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그들과 만남을 가졌다. 간혹 다른 일정으로 불참한 사례도 있었지만 적어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앞서 청와대 신년회에 주요 기업 총수를 소집해 초를 치는 일은 이전 정권까지는 없었다.

매년 1월 2일은 각 기업들의 신년회나 시무식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나마 지난해는 청와대 신년회가 오후에 있었지만 올해는 오전에 행사를 진행하면서 초청 받은 총수들은 자사 시무식을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여의도로 달려가야 했다. 심지어 이 때문에 시무식을 오후로 미룬 곳도 있었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대우.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탈권위’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지만, 경제인들을 상대로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권위를 챙기는 모습이다. ‘어디 경제인들 모이는 자리에 대통령을 함부로 부르느냐. 대통령 주재 행사에 경제인들이 집합해야지’라는 의도로 비쳐진다.

물론 전날 청와대 신년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다음날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최태원 SK 회장의 경우 두 행사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국내외 현안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총수들에게 이틀 연속 신년인사회를 챙기라는 것은 무리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대통령과의 새해 첫 만남’에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과거 기업인들의 ‘대통령에게 얼굴 비추기’는 혹시 있을지 모를 특혜를 기대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고, 그런 걸 기대하는 기업인도 없다. 다만 수만 명의 임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기업 총수로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각종 규제기관을 거느린 권력자와의 자리에 빠질 만큼 용감하기 힘든 게 그들의 위치다.

경제인들의 모임에 대통령이 참석해 인사를 나누던 반세기의 관례를 뒤엎고, 자신이 주재하는 행사에 핵심 경제인들을 불러 모으는 문 대통령의 소통방식은, 지난 20개월 간 이어진 경제지표 악화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스스로 경제를 주도하겠다는 아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단순히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동안의 ‘선무당 경제 잡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경제계는 더 서글프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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