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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정치의 한계


입력 2019.02.25 09:00 수정 2019.02.25 08:34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전통적인 의미의 덕목들 외면

정책 잘못 판명돼도 수정 거부…선동엔 능하지만 대안은 빈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전통적인 의미의 덕목들 외면
정책 잘못 판명돼도 수정 거부…선동엔 능하지만 대안은 빈곤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여야 5당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의장-여야 5당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아주 단순하면서 실효성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의지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일단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그들의 정책은 앞서 대중의 분노를 몰고 온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중략)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많은 나라들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한 포퓰리스트가 실패하면 유권자들은 다른 포퓰리스트를 뽑거나(그리하여 완전한 독재체제를 초래하거나), 기성 정치인에게 의지하거나 할 가능성이 반반이다(야스차 뭉크, 위험한 민주주의, 함규진 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포퓰리즘 정치인, 그리고 이들의 정치 리더십과 행태 등이 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치적 경쟁자들에 대해 마음껏 비난하고 조롱하고 이죽거려왔다. 확인되지도 않은 상대방의 비리를 단정적으로 들춰내 공격하는가 하면 감옥행을 위협하기까지 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덕목들 외면

역사적 통념으로서 정치인 및 정치과정에 대해 요구되는 인격 차원의 덕목을 나열하자면 대개 다음과 같다.

준법 합리 도덕 예의 정직 정의 책임 양보 사랑 존중 체면 체통 포용 이해 관대 희생 봉사 모범 품격 예지 온화 온건 선공후사….

이런 인격형과 부합되는 정치구조는 어떤 것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이 분류한 정체 가운데 하나였던 귀족정치(aristocracy), 고대 중국의 유가(儒家)가 제시했던 군자(君子)정치가 가장 근접성을 가진 것처럼 생각된다. 이는 포퓰리즘과 거리가 아주 먼 정체다. 포퓰리즘은 민주정치가 키운 한 경향이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정치 덕목은 외면한다. 포퓰리스트는 대중적 호소력을 가진 언어로, 그들이 좋아할 내용만을 강조한다.

물론 현대적 현상만은 아니다. 고대 민주정의 발상지이자 개화지(開花地) 아테네에도 포퓰리스트들은 있었고 그들이 정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의 배경에도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이 있었다. 그래서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폭민주의(mobocracy)로 타락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빈민정치(oclocracy)로의 변질을 우려했다. 광장의 대중, 즉 군중의 정서에 너무 휩쓸리면 민주정치는 그렇게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포퓰리스트는 군중(광장이나 사이버 공간에 모인 대중)에 영합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다. 군중의 심리를 적절히 또 교묘히 자극하고 조종하여 자신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로 만들려는 성향이 뚜렷하고 그 기술에 능한 정치인이 바로 포퓰리즘 정치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선전선동의 기술자라고 하겠다.

“지난해 11월 퇴임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104억여 원의 재산 내역을 공개했다. 2017년 5월 취임했을 때 93억여 원과 비교해 약 11억 원이 늘어났다.”

지난 22일 언론에 실린 기사다. 그는 2015년에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의 책 소개 마지막 문단이 특히 인상적이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불평등이 해소될 것 같지 않은 현실. 저자는 그 해법을 기성세대에서 찾기보다는 미래 주역인 청년세대에게 제시한다. 이 책은 미국과 유럽처럼 교정할 수 없는 재산 불평등의 문제가 아닌 얼마든지 정책과 제도로 교정할 수 있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임을 밝혀낸 연구 결과다.”

정책 잘못 판명돼도 수정 거부

특히 눈길을 끄는 게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재산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 불평등의 문제’라고 단정한 대목이다. 부자(富者) 장 전 실장은 어느 쪽에 속할까? 재산이 갑부 수준인데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소득 면에서는 “이게 나라냐”고 묻는 사람들에 당당히 섞일 수 있을 정도인가. 그런데 이걸 어쩌나. 18개월간의 소득이 11억 원이나 됐다는 것 아닌가.

그가 이끈 경제정책이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다. 서민들의 소득수준을 높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소득이 성장을 견인하며, 그것이 다시 소득을 증대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포부였는데, 적어도 현재까지는 악순환 쪽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장 전 실장 같은 사람들이 소득을 과점하는 구조 하에선 소득불균형이 심화될 수밖에!

포퓰리스트들은 정책의 수정을 거부한다. 뒤에서 미는 군중에게 밟히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대북정책에서도 외길만을 고수한다.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기분을 정부 안의 누군가는 느낄 법도 한데 문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문 대통령을 포퓰리즘 정치인이라고 하면 격분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 듯하지만,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공언한 것만으로도 그는 포퓰리스트이기에 충분하다. 그건 단순한 정치적 언설이 아니라 광화문에 몰려든 군중에 대한 선동이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다”(대통령 취임사).

‘이건 나라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화가 난 청년들, 실직한 중장년들, 자녀들 대학보내기에 지친 어머니들은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의 그 같은 인식은 황당하다. 이야말로 대중주의적 언어라고 하겠다. 아닌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신도 못 만들 나라를 그는 당당히 공약했다. 지켜질 수는 없지만 대중의 정서에는 착착 감길 법한 언어다. 그의 취임사는 아주 화려하고 정감이 뚝뚝 떨어지는 표현으로 엮여졌다. 그러나 그가 다짐하고 약속하고 과시한 과제들 가운데 뚜렷이 지켜지거나 실현된 것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뻔하다.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는 데는 발군의 재주를 발휘했지만 국가경영의 비책(祕策)은 없었다. 대중들로 하여금 자유우파 정권에 대해 분노하게만 하면 정권은 자기들의 몫이 될 터였다. ‘기업의 자유’를 확대해서 산업 활력화, 해외 투자 활성화를 꾀할 수가 있겠으나 그건 좌파 정권의 정체성에 반하는 대책이다. 좌파적 마인드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소득주도 성장론’이었다. 그런데 이는 소득이 생겨나는 조건에 대한 고려 없이 허공에 지은 집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대신 대북정책에 승부를 거는 인상이다.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된다’는 인식이 대를 이어 깊이 박힌 때문인가. “남북화해로 경제협력의 물꼬가 트이면 거대한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식으로 국민에게 환상을 심어주려 안간힘이다. 그 거대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까지 감당해야 할 수십 년 간의 엄청난 혼란과 부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한다. 핵을 가진 김정은과 공존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화해를 통한 평화구조 정착’이란 추상적 설명뿐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의 ‘모르쇠’는 이 뿐이 아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불법적 인터넷댓글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1심에서 법정구속 당하는 사태가 빚어졌는데도 대통령은 말이 없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관련 1심 유죄 및 법정 구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공익 제보, 이재명 경기도 지사 재판에다 문 대통령 딸 가족의 동남아 이주 관련 의혹까지 정치‧사회적 논란거리가 쟁점이 되어 있지만 청와대는 자기 정당화에 열을 올리지 않으면 아예 입을 다문다.

선동엔 능하지만 대안은 빈곤

게다가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어깃장 놓기, 억지 부리기를 작심한 인상이다. 당의 유력자들이 김경수 1심 재판 담당 판사에 대한 ‘탄핵’을 들먹이는가 하면 당 차원에서 ‘판결문 분석 간담회’ ‘대국민 토크 쇼’라는 식으로, 사법부에 대해 공공연히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북한군의 대대적 5‧18 개입’ 주장을 펼쳐 온 지만원 씨 초청 토론회를 주선했다고 해서 의원직 제명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때는 이때다’ 해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신설된 ‘세상에 없는 법’이 이름도 정겨운 이름의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입법화 문턱에 이른 것이다.

민주당의 오만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당 소속의 설훈, 홍익표 의원이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20대의 지지율 급락현상과 관련,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교육을 잘못 받은 탓이라고 우겼다. 그 위세 좋은 전교조는 어디서 뭘 했기에 당시 정권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도록 했다는 것인가. 20대에 대해 모욕 치고도 이런 모욕이 없겠는데, 이들은 태연히 교육 탓을 했다.

오만의 절정은 100년 집권론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21일 당사에서 열린 ‘40‧50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2022년 대선에서 재집권함으로써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년 8월 당대표 경선에서 ‘20년 집권론’을 제시했고 9월엔 ‘50년 집권론’을 운위했다. 그의 점증법적 화법을 따라가면 곧 ‘영구 집권론’이 나올 것도 같다.

민주화를 전가보처럼 휘두른 끝에 집권한 세력의 유력자가 이런 말을 하다니! 이것이 대중주의 혹은 군중주의 정당의 진면목인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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