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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피플라운지] 박혜림 대표, 통역사부터 비즈니스 영어까지 "뒤늦게 찾은 천직"


입력 2019.04.12 06:00 수정 2019.04.12 09:07        이은정 기자

무작정 통번역사 '앓이'...낯선 환경에서 낯선 공부 시작

황반원공 판정에도 돌파구 찾아...'헤이두유' 브랜드까지 출범

실전 비즈니스 영어 개척자로 나서

무작정 통번역사 '앓이'...낯선 환경에서 낯선 공부 시작
황반원공 판정에도 돌파구 찾아


박혜림 유니콘즈 대표. ⓒ유니콘즈 박혜림 유니콘즈 대표. ⓒ유니콘즈

“갑자기 머릿속이 진공상태가 되고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그래 이거다!’ 마침내 원하는 직업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죠.”

성균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박혜림 유니콘즈 대표는 졸업 후 대기업 경영관리본부에 입사했다가 통역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퇴사했다. 결국 5개월 만에 미국 몬트레이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해 유학을 떠났다. 영어 전공자도 아니었고, 어린 시절을 영어권에서 보낸 적도 없었다. 그 흔한 어학연수 한번 간 적도 없었던 그가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통역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

- 당시 총괄 본부에서 일하다 보니 계열사 대표나 실무 책임자들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르는 걸 보곤 했어요. 하루는 정보통신 계열사 대표님이 저한테 앞으로 어느 계열사로 가고 싶냐고 물었어요. 저는 영어를 좋아해서 국제 관련 업무를 하고 싶다고 답했죠. 그랬더니 대표님이 '일본에 출장을 갈 때마다 도와주는 일본어 통역사가 있는데 정말 멋지다, 워낙 여러 회사랑 일하니까 다양한 분야와 주제에 대한 지식이 준전문가 수준이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였어요. 제 ‘통번역 앓이’가 시작된 게.

▲유학 생활은 어땠나.

-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덜컥 겁이 났어요. ‘만에 하나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면 어떡하나’란 생각이 엄습했어요. 이민 가방 두 개만 달랑 들고 온 저에게 미국은 온통 낯선 것 투성이었어요.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 심지어 집도 구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알아서 되겠거니 생각하면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지요. 부딪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집을 구하는 전쟁 같은 시간이 지나고 학교 수업이 시작됐는데, 기본기가 부족했던 데다 통번역 스킬까지 익히려니 절망적이었죠. 공부도 어려웠고, 마음고생도 심해서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어요.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막상 통역사 일을 바로 시작하지 않았던데.

- 2년간 갈고 닦은 통번역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졸업 뒤 통번역사로 일한 건 겨우 4개월 정도였어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세 군데에 지원했고, 두 곳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어요.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통역사로 일하고 싶었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죠. 서울시 정보화기획단에 잠시 근무했고 곧바로 스위스에 본사를 둔 외국계 인력관리회사로 옮겨 3년간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일했어요. 애널리스트 업무가 밀려 들었고 주말이나 연휴를 반납하는 건 예삿일이었지요.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 진급까지 빠르게 했지만,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건강이 나빠졌어요.

박혜림 유니콘즈 대표. ⓒ유니콘즈 박혜림 유니콘즈 대표. ⓒ유니콘즈


박 대표는 2010년 5월 황반원공 판정을 받았다. 황반은 망막에서 시각세포가 밀집돼 있어 빛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이곳에 이상이 생긴 것인데, 수술한다고 해도 반드시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수술한 후에는 안압이 올라가지 않도록 엎드려서 생활해야 했어요. 무리가 가지 않게 등산이나 운동, 비행기 탑승도 할 수 없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누워서 처지를 비관하는 것뿐이었어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죠.”

▲‘뷰티워’라는 방송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데.

- 수술 후에 한 달 정도 휴식한 끝에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잠깐의 휴식으로 더 열심히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앞만 보고 달려왔었는데 때마침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런데 수술한 지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지나니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통번역사로 돌아가자니 손을 놓고 있던 기간이 너무 길어 자신이 없었어요. 일단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는데 원했던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에 우연히 피부미인을 가리는 ‘뷰티워’라는 서바이벌 형식 프로그램의 광고를 보게 됐어요. 평소라면 관심조차 없던 프로그램인데, 자신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에 과감히 지원했어요.

▲최종 3인에 들고 화장품 화보까지 찍었던데.

- 예선 첫날엔 정말 집에 가려고 했어요. 11명을 뽑고 매주 2명씩 떨어지는 방식이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탈락하기 싫더라고요. 기를 쓰고 열심히 해서 운 좋게도 최종 3인에 들었어요. 나중에 제작진 얘기를 들어보니 황반원공 수술이나 통역사 이력 같은 스토리가 매력적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슈퍼스타K 통역사로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었어요. 출연 계기가 있나.

- 슈퍼스타K 통역을 맡게 된 건 ‘뷰티워’ 작가와 인연이 닿아서였어요. 크리스라는 미국인 참가자의 통역을 맡아서 생방송에 출연했는데 그 뒤로 방송 출연 제의와 강연 요청이 많아졌어요. 슈퍼스타K의 경험은 저한테는 귀중한 단련의 시간이었어요. 이후 미란다 커 등 해외 유명 인사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통역 경험은.

- 아무래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일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치위에서 일하면서 30개국을 다녔는데 처음으로 갔던 1월 이탈리아 출장이 기억에 남아요. 친콴타이 회장의 영어 발음은 이탈리아식 억양이 심해 알아듣기가 어려웠거든요. 말이 막히거나 표현이 생각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지?’라는 눈빛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해서 정말 당황했어요.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건 4월 런던에서 총 8시간 릴레이 통역을 한 날이에요. 항상 제 통역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하셨던 특임 대사님이 처음으로 ‘오늘 통역 아주 좋았어’라고 칭찬해주셨죠.

▲최근에는 비즈니스 영어 ‘헤이 두유’의 대표 강사이자 유니콘즈 대표로 활동하고 있던데.

- EBS, 삼성멀티캠퍼스, 능률영어 등과 함께 비즈니스 영어 강좌 원고를 집필하고, 강연하게 됐는데 기존의 비즈니스 영어 교육 콘텐츠가 실전에서 무용지물인 내용이 많았어요. 공급자 위주로, 가르치기 편한 주제로 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현장에서 원하는 수요자 위주의 교육과정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오피스 토크부터 영어로 이메일 작성하는 법, 미팅과 프레젠테이션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원스쿨’ ‘스피킹맥스’ ‘야나두’ 등 온라인 영어회화 교육업계가 포화 상태다. 이들과의 차별화된 점은?

- 시원스쿨이나 야나두 등은 왕초보를 대상으로 하는 강좌라서 헤이 두유와는 성격이 조금 달라요. 헤이 두유는 비즈니스 특화 강좌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경쟁상대는 아닙니다. 비즈니스 영어는 극소수를 대상으로 하는 것 아니냐, 사업성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어른의 영어는 모두 비즈니스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행 가는 것 빼고는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게 되니까요. 아주 기초 단계를 벗어난 경우에는 그다음 비즈니스 영어라는 맥락에서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야나두나 시원스쿨 왕초보 단계에서 잘 배운 다음 비즈니스 영어로 넘어오시는 건 어떨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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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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