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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품 불매운동 자살골이다


입력 2019.07.04 08:20 수정 2019.07.04 08:18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반일 분위기를 일본인 자극 혐한 마케팅에 이용

<하재근의 이슈분석> 반일 분위기를 일본인 자극 혐한 마케팅에 이용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터넷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 목소리가 크게 나타난다.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고, 불매운동을 촉구하는 1인시위에 일본 여행 취소 인증샷들도 등장했다. 일본의 천인공노할 태도 때문에 누리꾼들의 분노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우익은 과거 잔혹한 식민통치로 우리에게 가해행위를 해놓고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비인도적 강제징용으로 참혹하게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마저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피해국인 한국을 때리며 혐한몰이를 하는 등 2차 가해를 반복하고 있고, 심지어 자신들의 식민통치 때문에 일본에서 살게 된 재일 한인들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런다고 우리가 일본을 누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큰 일본과 강대강으로 맞서봐야 우리만 피해를 본다. 그래서 우리 국력이 일본에 비해 더 약해지면 일본은 우리를 더욱 우습게 보고 능멸할 것이다.

한국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 일본 우익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반일 분위기를 일본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일본인들을 자극하는 혐한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다. 한국의 증오가 일본의 증오를 부채질하고 그것이 다시 한국의 증오를 키우는 악순환 속에서 일본 우익의 덩치만 커진다. 아베가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한국을 때리는 것도 그렇게 양국 사이의 증오가 커지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표 결집을 위해 한국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거기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니까, 불매 운동이나 반일적 표현을 대놓고 크게 내세우는 건 자살골이다. 불매 같은 것은 각자 알아서 조용히 해야 한다. 일본 관광도 각자 알아서 조용히 안 가면 된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을 우방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일본의 논리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얼마 전에도 한 보수 정치인이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소멸됐다는 주장을 했었는데, 이런 발언들이 일본 우익에게 이용된다. 한국이 부당하게 보상을 요구한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한 변호사가 ‘국가 간의 협정을 통해서 개인 청구권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제법의 원칙’이라고 인터뷰한 일도 있고, 일본 정부 인사도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었고, 일본 정부도 자국 원폭 피해 문제에 대해 국가협정과 개인 청구권을 별개로 접근하는 마당에 우리 국내에서 엉뚱한 얘기가 나오는 건 문제다.

근본적으로 일본이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국력을 길러야 한다.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일본 의존이 심각하고, 이 부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 벌써 수십년 째다. 어떻게 아직까지 변화가 없는지 황당하기만 하다. 말로 하는 반일 백날 하는 것보다 이런 쪽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화학과 금속, 세라믹 등 ‘200대 소재·부품 기술분야’에서 미국은 211개, 일본은 102개, EU는 68개의 최고 기술을 보유한 반면 한국은 단 1개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은근히 제조업을 경시하고 금융, 서비스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소재, 부품 산업은 주로 중소, 중견 제조기업이 담당하는데 그런 부문이 세계적 기술력을 기르도록 육성해주지 못했다. 어떤 불편함과 단기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술을 국산화해서 우리 제품을 쓴다는 결기도 많이 사라졌다. 싸고 좋은 외국 제품 공급받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우세해졌다.

하지만 외국이 언제나 중립적인 제품 공급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자신들의 제품을 언제든 무기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명줄을 내맡긴 것과 같다. 이젠 기술개발이 안보라고 생각하고, 정말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각오로 기술독립을 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 달에 소재·부품·장비산업을 비롯한 제조업을 지원해 제조업 르네상스를 이룬다는 비전을 내놓으면서, 소재·부품·장비 부문에 6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지난 수십 년 간 성과가 미약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적으로 비록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국산품을 사주는 기풍이 생겨야 한다. 그래야 국내 제조산업이 발달한다. 기술도 자꾸 써줘야 발전한다. 70~80년대에 그런 식으로 산업을 발전시켰던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그런 문화가 사라져버렸다.

동북아시아의 대립축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을 때리면서도 최근 중국엔 손을 내밀었다. 중국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냉정하게 국익 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일본의 잘못을 잊지 않으면서도 분노를 갈무리하고 일본에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결기를 품고 기술독립에 나서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산업혁명을 훨씬 일찍 했고 인구도 훨씬 많은 대국이다. 그런 나라와 대등하게 맞상대하려면 갈 길이 정말 멀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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