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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감정 부추겨 풀 수 있는 문제 아니다


입력 2019.07.09 09:00 수정 2019.07.09 08:16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민주,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 같다”…역사문제 아니라 삶의 문제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민주,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 같다”…역사문제 아니라 삶의 문제를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의 로고가 붙어 있는 상자를 밟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제품의 로고가 붙어 있는 상자를 밟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에 맞서 '일본 경제보복 대응특위(가칭)'를 구성했다. 이 특위의 위원장을 맡은 최재성 의원이 위원회 구성작업을 하면서 했다는 말이 이렇다.

“청와대가 방어만 하다가 피해 액수나 계산하고 말 일이 아니다. 언론도 (우리가 입게 될) 피해 상황만 부각해선 안 된다. 피해만 걱정하다 지금까지 나온 해결책이 무엇이냐. 운명을 걸고 해결해야 한다.”

비장감이 뚝뚝 듣는 말이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경제 보복의 피해만 생각한다면 빨리 (일본에) 항복하고 끝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 경제 침략 상황이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 정치인들이 주판알만 튕길 때가 아니다.”

민주,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

조금 더 나가면 “이제 선전포고를 할 때다”라는 데까지 이를 기세다. 바로 이런 선동적 언어가 국가의 외교역량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특위가 이런 의식을 가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면 정당차원의 해결은 무망하다. 일본이 그 말에 겁을 먹고 보복조치를 거둬들일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황당하다.

민주당의 당 대표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그는 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정·청이 일본의 비상식적 수출규제 움직임에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오늘 최고위에서 대응특위를 출범시켰고, 금요일 현장최고위에서 수출규제 관련 기업의 생산현장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독전(督戰)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될 뿐 더러 오히려 불난데 기름 끼얹는 격이 되고 만다. 일본이 왜 그러는지를 파악해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이 취한 조치이니 무조건 ‘비상식적’이다? ‘단호하고 철저하게 대응’ 한다는 건 또 뭔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걸까? 이런 여당을 믿고 청와대와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기를 정말이지 간절히 바란다.

국가 간의 갈등과 마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충동적으로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감행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선 그 이유나 배경을 찾아서 면밀히 분석 검토하는 게 순서다. 우리 스스로 성찰할 부분이 있으면 이에 인색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은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니까 작년 10월 대법원이 내린 일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불만스러운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청구권문제는 완전 해소됐다고 일본 측은 인식하고 있다. 반면 우리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당시의 신일본제철)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나자 한국의 징용피해자들은 신일철주금, 미쓰비시 등에 대한 재산압류 움직임까지 보여 일본 측을 더 자극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수출 규제 조치가 이와 무관치 않음을 공언했다.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 같다”

‘한일위안부합의’의 사실상 파기도 핑계 혹은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 한·일 양국정부가 서명한 이 합의를 명시적으로 파기하지는 않되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징용배상과 위안부합의 외면에 대해 일본은 약속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는 교역상 백색국가로서의 혜택을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외교적 과제다. 당연히 외교 역량을 발휘해 이 문제를 호혜적으로 풀어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외교부는 뒷전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일성이 ‘WTO 제소’였다. 지극히 비외교적인 대안을 반사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후속 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여태껏 외교부는 뭘 했기에 이제부터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인가.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외교부의 수장이다. 더 뭘 기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그간 기회 있을 때마다 배일, 반일, 혐일의 인식을 드러내곤 했다. 김정은 편향 정책의 과속에 쏠릴 수 있는 국민의 시선을 ‘항일전선’(말하자면)쪽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개최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2015년 11월 서울회의 이후 중단됐다가 작년 5월 재개됐으나 다시 기약이 없게 됐다. 한·일 양국의 셔틀외교라는 것도 없어졌다.

문 대통령은 계기 때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을 드러냈다. 지난 2월 26일 백범 기념관에서 국무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는 “친일(親日)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 최고 심의, 의결 기관인 국무회의를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투사, 임시정부 요인들의 높은 위상과 불굴의 의지가 서린 뜻깊은 장소에서 하게 되니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승만 주도로 건국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뜻이었을 수 있지만 일본인들은 그 말에서 문 대통령의 대일(對日) 적개심을 읽었을 것이다.

그는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도 “일제는 독립 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고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해방된 조국에서도 일제 경찰 출신이 독립 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았다. 정치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변형된 ‘빨갱이’와 ‘색깔론’은 하루빨리 청산할 친일 잔재다”라고 역설했다“(3·1절 100주년 기념사). 그 사흘 후 청와대에서 열렸던 ‘해외 거주 독립 유공자 후손들과의 오찬’ 때는 ”'친일 하면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있었다“며 개탄했다.

역사문제 아니라 삶의 문제를

문 대통령은 『친일인명사전』이라는 걸 기어이 출판했던 사람들과 이념적 정향(定向)이 유사하거나 그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북한 전체주의 체제와 그 폭군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6·25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동족(남의 나라 젊은이들까지)을 살상하고 학살하고 납치해간 죄악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법이 없다. 아예 모르쇠다. 그러면서도 일본과 친일인사들을 공격하는 데는 집요하다. 그것으로 민족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고, 이념적 반대자들을 공격한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정권의 핵심부를 형성하고 있다면 앞으로도 한·일 관계는 회복되기 틀렸다. 일본은 일단 뽑아든 칼을 소득 없이 집어넣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일본에 숙이고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관계가 악화되고 기업들이 비명을 지를수록 정부의 입지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 굴하지 않는, 용맹하고 열렬한 민족주의자’로 스스로를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민족대단결’도 가속도가 붙을지 모른다. 어쨌든 문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겐 별로 밑지지 않는 게임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은 경제대국이다. 미국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확실히 일본 편에 서 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전략적 가치를 과거처럼 부여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미국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국인데, 어느 쪽으로부터건 확실한 신뢰를 받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이제라도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경제적, 국제적 위상은 허상일 수도 있다. 미국·일본이란 지지대를 제거해 버릴 경우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고 말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국가 간의 관계는 역사적 은원(恩怨)이나, 심리적 허장성세나, 이웃의 투정 같은 것에 좌우되지 않는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빚을 졌으니 우리가 어떻게 대하든 마땅히 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생각일 뿐이다. 국가의 자존심을 접고 일본을 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불필요한 만용을 뽐내는 건 백해무익이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원수 일본’이 아니라, 우리보다 ‘경제력이 월등한 일본’과의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분개한다고 해서 일본이 숙이고 들어오겠는가. 이럴 때 ‘큰 소리 지르는 용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면 비웃음이나 살 뿐이다. 대등한 입장에서, 당당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 했다. 확실한 대안도 없이 종주먹질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점을 제발 명심하시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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