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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김정은 비위 맞추느라 우리 기업 재산권은 뒷전?


입력 2019.11.15 09:56 수정 2019.11.15 10:18        박영국 기자

1998년 11월 개시…2008년 관광객 피격으로 11년째 중단

금강산 시설 철거통보에 '대의 위한 희생' 강요하는 모양새

통일부 장관, 현정은 회장과 면담서 해법 제시 못해

1998년 11월 개시…2008년 관광객 피격으로 11년째 중단
금강산 시설 철거통보에 '대의 위한 희생' 강요하는 모양새
통일부 장관, 현정은 회장과 면담서 해법 제시 못해


금강산 관광 시설을 현지지도 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금강산 관광 시설을 현지지도 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대의를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는 지금 시점에서는 현실을 외면한 논리다. 그 논리를 앞세운 독재정권에 의해 우리 국민들은 경제성장률과는 무관하게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고,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을 견디며 살았다.

그 시절에 국민들에게 강요한 희생을 바탕으로 희희낙락하며 살던 기득권 세력이 있었고, 그런 부조리함에 대한 반발 심리를 바탕으로 탄생한 이들이 과거의 386세대이자 지금의 586세대다. 비록 ‘조국 사태’를 거치며 더럽혀졌지만 적어도 ‘저항의 시대’때 그들은 정의롭게 그려졌었다.

지금의 정부는 과거 ‘대의를 외치며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던 정부’에 저항하던 세력을 지지기반으로 세워졌다. 비록 포퓰리즘과 적폐청산 논리에 빠져 경제를 망치고 국가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최소한 자신들이 증오했던 자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 명분 하나만큼은 철저히 지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문재인 정부의 업적을 화려하게 장식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민간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양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금강산 시설을 철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지난 11일 보냈지만 남측이 묵묵부답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직접 금강산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3일 금강산 관광시설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은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고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지하다시피 금강산에 들어선 관광시설은 현대그룹이 소유권을 가진 민간 자산이다. 현대그룹은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전 국민의 열망인 통일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금강산 시설은 소떼 방북이 이뤄졌던 해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관광을 위해 현대그룹이 조성한 호텔과 여객선 터미널 등 기반시설이다. 금강산 관광 시작과 함께 현대그룹은 북측으로부터 해금강-원산지역 관광지구 토지이용에 대한 50년 사업권을 얻어냈고, 오는 2047년까지 29년이 남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막대한 투자를 대가로 본인의 부친이자 전임자가 현대그룹에 부여한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자 사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우리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접어두고 북한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생각해보면 10층짜리 건물 중 1층을 전세로 내줬는데 지난 10여 년 이상 장사도 안하고 문도 안 열고 임대료도 안 내고 아무것도 안 한 상태지 않느냐”며 “북의 입장에선 이 사업을 할 건지 말건지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수석대변인이 현대그룹의 자산인 금강산 시설 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북한의 입장이 옳다고 전 국민 앞에서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홍 대변인의 발언은 이번 사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나아가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14일에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휘하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불러 면담을 가졌다.

현대그룹이 자산을 통째로 날리게 된 상황이라 정부에서 해줄 역할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김 장관이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면담 전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재산권 보호를 최우선해왔다”면서도 “합의에 의한 해결이라는 원칙 아래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의 재산권 보호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보다 북한과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이뤄진 두 사람의 면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 회장은 면담 이후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똑같은 이야기”라고 답해 정부가 금강산 시설 문제와 관련해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정부가 대북정책의 성과에 목매고 있고, 북한은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수장인 김 장관이 현 회장을 만나 해법 제시 없이 정부 입장만 늘어놓았다는 것은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현대그룹이 희생해달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했던 ‘대의를 외치며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던 정부’의 치졸한 논리를 답습하는 모양새다.

아직까지는 정부가 현대그룹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짢아하니 금강산 시설을 포기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하지는 않은 상태다. 하지만 최근 정부와 여당의 분위기를 보면 눈치가 보여 말을 못할 뿐 현대그룹에서 ‘알아서 기어’ 주길 원하는 듯하다.

기왕 눈치를 볼 것이면 계속해서 눈치 있게 행동하는 게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과거 독재정권에 대해 ‘대의를 외치며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만행’을 비난하던 그들의 외침이 ‘위선’이었음을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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