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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데일리안 시론] 옳음을 향한 길은 닫힌 적이 없다


입력 2020.01.01 05:00 수정 2020.01.01 08:40        데스크 (desk@dailian.co.kr)

사술로 의회정치 타락시키다니

승리하고 싶다면 양보와 단합을

사술로 의회정치 타락시키다니
승리하고 싶다면 양보와 단합을


지난해 12월 20일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뒤로 떠오르는 해ⓒ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포항 호미곶 '상생의 손' 뒤로 떠오르는 해ⓒ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사술로 의회정치 타락시키다니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는가? 이런 질문으로부터 새해를 시작해야 하는 마음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혼란과 혼동의 시대다. 옳고 그름의 구분이 모호해져 버렸다. 저마다 자신의 정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정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 속에 갇힌 기분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어림조차 안 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온갖 소리가 넘쳐난다. 그러나 길을 가르쳐 주는 목소리는 없다.

차라리 주저앉아 버리는 게 나을까? 어차피 세월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저 해괴한 생각을 괴기스럽게 형상화한 사람들도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권세도 금방 끝나고 만다. 그 때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런 허황한 기대를 안고 그저 눈 감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는 이해할 길이 없다. 왜 일정 수의 국민 대표 자리를 특정 정당들을 위해 따로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인가. 국민의 지지를 많이 받는 정당일수록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는 참여하지 못해야 하는 까닭은 또 뭔가. 정당들이 의회 내에서 행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라면 또 모른다. 삼권분립의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 왜 정당위주의 의석 배분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인지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준 연동형이라는 건 또 뭔가. 스스로 무리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 기형적인 제도를 만들어 냈다. 억지를 부리니까 계산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결국 입법자 자신들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지난 3월 17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으로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했던 말이 그것이다.

“선거제도가 숫자로 보면 굉장히 복잡하다. 산식(算式)은 아무리 복잡해도 컴퓨터로 처리하면 되는데,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그게 당시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이 담합해 내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설명이었다.

“(비례대표 의석 배정) 산식은 여러분은 이해 못 한다. 산식은 과학적인 수학자가 손을 봐야 한다.” “국민은 산식이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할 때 컴퓨터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컴퓨터 부품이 어떻게 되는 건지까지 다 알 필요가 없다.”

심 대표는 당당하게 그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반의회적 의식이고 행위인지를 기자들은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끝까지 그 문제를 파헤쳤어야 했다. 그러나 금방 관심이 심드렁해졌다. 기자들도 복잡한 것을 싫어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닌가? 그래서 여당+준여당(혹은 위성여당)과 야당(자유한국당)간의 대결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러는 가운데 말도 안 되는 이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버린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이라는 것도 해괴하고 희귀하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도대체 문재인 정권이 왜 이런 기관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의 호기심도 아니고, 새로운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욕구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 초 검찰적 수사 및 기소 기관을 원했는지는 문 대통령 자신이 언젠가 ‘운명’적으로 입을 열 때까지는 수수깨끼로 남을 것 같다.

시중의 추측대로 문 대통령과 그의 권력실세들이 임기 후를 염두에 두었을까? 아니면 정말 원도한도 없이 권력을 과시하고 행사해 보고 싶었을까? “대통령의 힘, 통치자의 힘이란 바로 이건 것이다!” 이렇게 외치는 꿈을 늘 꿔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이 괴기스러운 기관을 만들기 위해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준여당들에게 미끼로 내밀었다. 의석수에 굶주렸던 군소정당들은 이 미끼를 덥석 이를 물었고, 이후 일은 문 대통령의 구상대로 이뤄졌다. 양측, 그러니까 정권 측과 의석을 탐한 군소정당 모두 이런 억지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한번이라도 진지한 고민을 해봤을지 궁금하다. 이것도 ‘산식’이 복잡해서 아예 고민 않기로 했을까?

#승리하고 싶다면 양보와 단합을

정권 측의 이 혼성부대에 맞서 싸워야 하게 된 자유한국당은 전략부재를 드러냈다.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과거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의 행태를 흉내 내다 말았다. 절실함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다. 홍수가 져서 둑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집 안에서 아랫목 다툼이나 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판에 친박‧비박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거듭거듭 패배하고서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 무치(無恥)에는 기가 질릴 지경이다. 어쩌면 한국당 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 보수정치세력의 속성이 한국당을 통해 전형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의원직 총사퇴’ 운운하는 모습이 더 한심하고 처량하다. 그런 결심은 진작 했어야 했다. 그 카드는 지난 4월 여당과 준 여당들이 패스트트랙 폭거를 저지를 때 꺼낼 일이었다. 당내에 있는 몇 사람에게 직접 또는 들리라고 이야기했더니 어떤 이는 공감을 했지만 힘을 가진 측은 때가 아니고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민주당이나 문희상 의장이 반대하면 사퇴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가볍게 넘겨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퇴서를 내면 당장 의원회관 방을 빼라는 요구부터 할 텐데…”라고 겁내는 이도 (실제로) 없지 않았다. 딸린 식구(보좌진)가 많다는 점도 부담이 될 법은 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들에겐 자기희생의 경험과 각오가 부족했다.

정기국회를 앞둔 시점에, 차기 대선 출마를 꿈꾸는 인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국민 속으로’ 행보를 주문하기도 했다. 무슨 ‘민생탐방’식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냥 들메끈 조여매고 남대문을 나서보라는 것이었다. 국민에게서 지혜를 구하는 도보 여행이 될 터였다. 정처(定處)가 필요할 리 없다. 그냥 발걸음 가는 대로 가면 된다. 즐겁게 걸으면서 반갑게 만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었는데 실천하는 사람은 없었다.

패스트트랙이나 공수처보다 더 무서운 상대는 보수세력(필자는 이 난의 2019년 1월 1일자 칼럼부터 ‘보수파’ 대신 ‘자유우파’로 쓰기 시작했다. 근대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자유이고, 좌파의 반대편에 우파가 있기 때문이다)의 분열이다.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법제화되자 비례대표 의석을 노린 정당의 설립이 이곳저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은 당연한 대응이다. 상대가 변칙으로 나오면 이쪽도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 밖의 자유우파 비례정당 창당은 자제되어야 한다. 좌파 정권, 좌파 정치세력의 발호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고 조건이다. 자유우파의 분열은 좌파 득세에 동력을 제공해줄 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벌써 한국당 비례정당 창당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기 시작했다. 아마 이런 공세는 갈수록 더해질 것이다. 객관성 공정성을 주장하겠지만 이런 조사를 한다는 자체가 의도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당방위라는 게 있다. 세상에 유례가 없는 해괴한 선거법을 만들어 좌파정당들이 연대해서 의석을 독점하겠다는 판이다(이에 비하면 게리멘더링은 얼마나 순진한 억지인가).

자유우파에게 요구되는 것은 양보와 단합이다. 적어도 내년 총선에서만은 욕심을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지혜다. 어차피 모두가 의원이 될 수 없고 모두가 대선 주자가 될 수 없다. 자유우파 시민들의 책무는 보다 훌륭한, 기량이 남다른 대표선수를 찾아내 그들을 결전장에 내 보내는 일이다.

확언컨대 고난이 닥치면 그걸 넘어설 길도 반드시 생긴다. 또 하나 우리가 함께 확인해야 할 것은 정의로 통하는 길은 결코 막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옮음을 향한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다만 우리가 찾지를 못했거나 찾을 의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일 뿐이다.

자유가 곧 정의다. 그 정의는 우파에게 있다. 이제 옳음에로 난 길을 함께 걸을 때다. 승리를 확신하면서….

(2020년 새해에 모든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원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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