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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세대를 돌아보다-상] 최빈국에서 '10대 경제대국' 성장 이끈 도전정신


입력 2020.01.22 06:00 수정 2020.01.21 21:2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무에서 유 창조

위기때마다 과감한 결단으로 방향 제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최종현 SK그룹 창업주. ⓒ각사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왼쪽부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최종현 SK그룹 창업주. ⓒ각사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1960년대 초만 해도 국민소득과 국내 총생산이 우리나라보다 높았던 아시아 국가들이다.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 중 국내 총생산이 세계 20위권에 드는 나라는 없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서 언급한 국가들은 우리보다 넓은 국토와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시작도 우리보다 빨랐지만 우리에겐 있었으나 그들에겐 없었던 존재가 있다. 바로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 최종현, 신격호와 같이 맨주먹으로 시작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창업 1세대들이다.


대한민국 산업 태동기인 1960년대는 이들 창업 1세대들이 소규모 사업체를 본격적인 기업으로 확장해 설립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1967년 고(故) 정주영 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기둥인 현대자동차를 설립했고, 2년 뒤인 1969년에는 고 이병철 회장이 우리나라를 전자·IT 강국으로 만들 삼성전자를 창립했다. 이보다 앞선 1947년에는 고 구인회 회장이 LG화학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웠고, 1958년에는 LG전자를 창립했다.


이때를 전후해 조선, 건설, 중공업 등 국가 기간산업을 지탱할 기업들이 창업 1세대들의 손에 세워졌다.


이들의 업적이 칭송받는 것은 해당 산업 분야에 경험은 물론 앞선 선례나 롤모델 조차 없었던 시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불굴의 도전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하나같이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정신을 앞세워 기업을 통해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역경을 견뎌내고 삼성, 현대, SK, LG, 롯데라는 굴지의 기업들을 일으켰다.


이들은 산업 발전의 주요 분기점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우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 포드와의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고유 모델 ‘포니’를 통해 국산화의 길에 들어선 것이나 이병철 회장이 다들 안 된다고 뜯어말리던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 그리고 SK 창업주인 최종현 회장이 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일본에 맞서 사채까지 써가며 연구개발비를 조달해 세계 5번째로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에 성공한 것은 정부도, 집단지성도 내릴 수 없는 과감한 결단이자 도전이었다.


이같은 도전정신은 창업 2세대, 3세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기업이 위기에 처했거나 경영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변곡점마다 총수의 과감한 결단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한국 특유의 기업문화로 자리잡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기업의 명운을 건 도전은 오너의 결단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을 때 삼성이 과감하게 스마트폰 사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 내에 스마트폰 시장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집단지성의 결정이 아닌 오너의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창업 1세대들은 국익을 위한 정부 정책이라면 기업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발 벗고 나섰다. 정주영 회장은 국가적으로는 중대 인프라 구축 사업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돈도 안 되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흔쾌히 나섰고 남북통일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소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었다.


경제 부흥의 중요한 계기가 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도 이들 1세대 창업주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이들은 개별 기업을 넘어 경제계 전반을 이끌며 후배 기업인들의 멘토이자 우산이 돼 주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은 196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의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으며, 정주영 회장은 1977년부터 11년간 전경련을 회장으로 재임하며 대한민국 경제계를 이끌었다.


창업 1세대들은 은퇴 후에도 재계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을 마지막으로 창업 1세대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비통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허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지금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에 처해 있고, 회장님의 경륜과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며 “묵묵히 한국경제를 이끄셨던 회장님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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