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자신은 정치할 생각 없다지만
문재인정권 임기후가 무사하려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등판과 동시에 2위를 차지했다. 놀라운 현상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32.2%로 선두를 달렸고 윤 총장이 10.8%로 뒤를 이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0.1%에 그쳤다. 일견컨대 이 전 총리 독주를 막기에 황 대표는 역부족이라는 자유우파 국민들이 윤 총장에게 기대를 거는 양상이다. 이 전 총리 지지기반은 탄탄한데 비해 황 대표의 그것은 푸석하다는 인상을 주는 조사 결과라고 하겠다.
황 대표로서는 이 궁지를 어떻게 벗어날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결정적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허약한 예비주자’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릴 수 있다. 물론 여론 조사 지지율은 등락을 거듭한다. 언제든 역전될 수 있는 것이고, 또 아직은 2년 후 상황을 예상하기가 이른 시점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뇌리 속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잊히는 쪽으로 밀려날 소지가 없지 않다.
자신은 정치할 생각 없다지만
역시 눈길이 가는 쪽은 윤 총장의 점핑이다. 스스로 원한 것은 아니지만, 민심이 기대를 드러내 보였다. 첫 등판에 이처럼 놀라운 지지세를 보인 예가 달리 있었을까 할 정도로 높다. 보수 측이 내세울 만한 대선 주자감이 마땅치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자유우파 국민들의 보수정당에 대한 경고로 읽히기도 한다. 윤 총장 같은 사람이 야권의 주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와 안타까움의 표현일 것 같기도 하다.
윤 총장 자신은 아마 당혹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법하다. 그리고 여야 정치권으로서는 의외의 한방을 먹은 셈이다. ‘세계일보’가 재미삼아 시도했는지, 정색을 하고 알아보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미가 적지 않은 시도였음에는 틀림없다.
윤 총장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부정 양 갈래로 나뉜다. 우선 부정적인 측면은 윤 총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공격 거리를 만들어 줬다는 사실이다. 정권측이 이를 이용할 수도 있다. “봐라, 윤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맞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는 저런 배경이 있었던 것 아니냐.” 이런 공격이 계속되면 이미지 훼손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에 정권 측의 윤 총장 공격에 대한 방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국민들의 윤 총장에 대한 기대치가 단번에 제1야당 대표를 넘어섰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로 윤 총장 몰아세우기는 주춤해지지 않을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이 여론조사 결과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흥미롭다.
“풉, 이 분, 출마한다고 하면 바로 1위가 될 겁니다. 근데 정치할 분 아니죠. 그러니 이분, 자꾸 정치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넣지 마세요, 추미애 장관님. 행여 이 분이 대통령이 되시면 너희들 다 죽음입니다.”
정권 담당자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겠지만 마음이 편하기야 하겠는가. 만약 “그래,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 나가고 싶다”라는 의사를 밝히고 나선다면 바로 1위에 오를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만만하게 대할 상대가 아니게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나 추 법무장관이나, 윤 총장을 비난하고 몰아세우기만 하는 게 능사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 결과가 보도된 31일 “검찰은 잘못을 스스로 고쳐내지 못했기 때문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었다. 이날 오전 정세균 국무총리,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추 장관으로부터 권력기관 개혁 후속조치를 보고받고 했다는 말이다.
문재인정권 임기후가 무사하려면
윤 총장이 들으라고 더 강조했을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이 ‘스스로 고쳐내지 못한’ 게 어떤 것인지를 왜 밝히지 않을까? 박근혜 정권 무너뜨리고 감옥에 보낸 그 일 부터가 잘못됐다는 것인지, 윤 총장이 들어선 이후의 행태가 마뜩찮다는 것인지를 말해줘야 뭘 고치라는 것인지 알 게 아닌가.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 대통령의 절친 등을 무더기로 기소한 데 대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면, 그래서 공수처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대통령의 상황 난독증이다. 윤 총장을 비난하고 검찰을 무력화시키면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걸까?
검찰에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는 논리는 이해가 된다. 적절한 제어장치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공직자범죄수사처라는 이상한 조직의 신설을 정당화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경찰의 비대화라는 역기능이 예상됨에도 우선 수사권조정부터 법제화한 까닭은 또 뭔가. 검찰을 무력화시키는 게 곧 국민 인권의 강화라는 논리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권력을 더 강화하고 싶다. 그러자면 산하 정부기관에 대한 장악력 견인력 지휘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도는 아닌가? 검찰 권한 축소,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이 다 그에 부응하는 조치로 기획된 것처럼 보인다. 경찰 조직의 전면적 개편도 약속은 하고 있지만 경찰이 대통령에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는 동안에는 서두를 것 같지 않다.
어쨌든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정권 실세라는 사람들, 그 주변의 유력자로 자처하는 사람들 모두 분명히 기억해둘 것이 있다. 권력의 칼자루를 쥔 손은 머지않아 바뀐다. 문 대통령은 임기 후에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자면 언제나 자신이 앉은 자리를 깨끗이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잊히고 싶어도 잊히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윤 총장 자신은 정치에 뜻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여론조사 대상에도 올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진심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는 윤 총장의 의지와는 별개다. 인기가 높아지면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여론조사회사나 언론사의 조사 자체를 막을 방법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대안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전 총리가 유력한 차기 주자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인물이 그 사람뿐인 것은 아니다. 윤 총장의 예에서 보듯 대항마가 부상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정부 여당,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할 까닭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