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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에 묻혀 있던 셰르파의 등반 이야기

    [데일리안] 입력 2006.10.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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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조너선 닐의 <셰르파, 희말라야의 전설>

이 책은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셰르파들의 등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인 조너선 닐은 그동안 히말라야 등반에서 조연으로만 인식됐던 셰르파를 당당한 주역으로 복권시켰다. 그는 어떤 히말라야 거봉들의 등정도 셰르파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엔 그전의 다른 등반 책들이 담아내지 못했던 셰르파들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 개월간 셰르파 마을에 거주하여 셰르파 말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익혔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인 등반에 참여했던 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수차례씩 인터뷰했다. 그런 만큼 그의 셰르파에 대한 이해는 다른 어느 작가보다 깊으며, 그는 이 책에서 셰르파들의 여과되지 않은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히말라야의 위대한 정복자들, 하지만 그들 혼자 산을 올랐을까?
조지 맬러리, 에드먼드 힐러리, 모르스 에르조그, 헤르만 불…… 히말라야 거봉을 오른 유명한 등반가들, 세상은 그들을 놀랄 만한 인내와 용기, 도전 정신과 인간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눈사태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뒤틀린 크레바스와 빙벽 등 온갖 위험이 가득한 산에 도전하고 정상에 오른 등반가들의 모습은 모든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들 혼자서 산을 올랐을까? 고소 등반에 필요한 산소통은 하나당 10킬로그램이 넘는다. 산을 오르는 몇 개월 동안 먹을 음식도 가져가야 한다. 눈 위에서 자고 싶지 않다면 텐트와 침낭도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자일과 피켈, 하켄 같은 장비 없이 산을 오르는 것은 자살 행위에 다름없다. 히말라야 원정엔 어마어마한 양의 물품이 필요하다. 누가 이 모든 짐들을 날랐을까?

등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답을 알고 있다. 등반대에 고용된 현지의 셰르파들이 날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쨌거나 셰르파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며, 산을 오른 주인공은 그들을 고용한 등반가들인 것이다. 모든 등반 관련 저술과 TV 다큐멘터리, 영화는 등반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을 위해 짐을 나르는 셰르파는 배경처럼 깔릴 뿐이다. 하지만 셰르파 없이 히말라야 등정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셰르파들을 주연으로 한 색다른 등반 이야기이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백인 등반가 곁에는 셰르파들이 있었다
셰르파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백여 년 전부터였다. 히말라야의 존재가 서구에 알려지면서 유럽인 등반가들이 산을 오르려 인도와 네팔, 티베트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등산에 필요한 짐을 운반하기 위해 인근 주민들을 고용했다. 가난한 셰르파들이 이 일을 맡게 되었다.

원래 셰르파는 티베트에서 살다가 네팔로 넘어오면서 집단을 이룬 부족의 이름이다(셰르파는 ‘동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뿌리가 없는 이방인이었고 가난했다. 계급으로 구분된 당시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에 속했다.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도 백인들을 위한 짐꾼이나 인력거꾼 정도였다. 산을 오르는 일은 위험하긴 했어도 다른 일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산을 올랐다. 백인들은 명성과 야망을 위해 산을 올랐지만 셰르파들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산을 올랐다. 하지만 그 일은 말할 수 없이 혹독했다.

당시 히말라야 등반은 백인 신사 계층의 스포츠였다. 정상에 근접한 높이에 마지막 캠프를 세우고, 정상 정복을 시도하는 등반가 둘을 위한 물품을 옮기기 위해선 산더미 같은 보급품을 날라야 했다. 그리고 그 짐은 모두 셰르파들의 몫이었다.

셰르파들은 백인들이 산을 오르는 데 필요한 식량, 의복, 텐트, 산소, 연료, 의약품 등 한 사람당 2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의 짐을 졌다. 그 덕분에 등반가들은 아무 짐도 지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등반가들은 등반 중에 셰르파들이 운반한 고기, 치즈, 설탕 등을 맘껏 먹을 수 있었지만, 셰르파들은 빵으로 만족해야 했다. 때로는 그것조차 부족했다. 등반가들은 옷을 여러 벌 껴입고 두터운 외투까지 걸치고 산을 올랐지만 셰르파들의 옷은 얇았으며 맨발로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악천후에 짐을 나르다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럼에도 셰르파들은 결코 등반대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자일이나 피켈처럼 등반에 필요한 도구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셰르파가 없었다면 어떤 등반대도 산을 오르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등반대가 셰르파를 고용한 사실이 그 증거이다.

백인들은 셰르파가 없으면 자신들이 산을 오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가 과거의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이었다.

셰르파가 일구어낸 위대한 성취
이 책은 그런 혹독한 상황에서 셰르파들이 점차 일구어낸 성취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34년 낭가파르바트 등반이었다. 그때 무시무시한 눈보라로 낭가파르바트의 길고 긴 능선 위에 열여섯 명이 고립되었다. 등반을 이끌었던 독일 등반가들은 셰르파족과 약해진 등반가들을 버려둔 채 스키를 타고 도망쳤다.

남은 이들이 내려오는 동안 추위와 굶주림으로 모두 아홉 명이 사망했다. 그후 셰르파들은 산에서 유럽인들을 마냥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셰르파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

1939년 K2에서 최초로 셰르파가 정상 공격조의 일원이 되었다. 정상 등정엔 실패했지만 셰르파가 백인 등반가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하산 과정에서 미국 등반가 울프가 내려오지 못하고 홀로 남겨졌다.

다른 모든 백인 등반가들이 그를 포기했을 때 셰르파들만이 그를 구하러 올라갔다. 셰르파의 주도로 인명 구조가 행해진 최초의 순간이었다. 비록 구조엔 실패하고 올라갔던 셰르파 셋 모두 다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그들은 셰르파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리고 1954년, 텐징 노르가이의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은 이런 변화의 결과이자 셰르파가 히말라야 등반의 상징이 된 결정적 순간이다. 텐징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되었고 셰르파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주변으로부터 괄시받던 최하층 계층인 셰르파가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끊임없이 산을 오르며, 자신들의 등반 능력을 키우고, 다른 이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셰르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셰르파들의 등반 여정은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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