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T

한시를 21세기에 만나다

    [데일리안] 입력 2006.10.21 02:13
    수정

[베스트셀러] 김풍기의 <삼라만상을 열치다>

24절기 자연의 운행을 담은 주옥같은 한시 작품들을 골라 엮은 국문학자 김풍기 교수의 한시 에세이 『삼라만상을 열치다-한시에 담은 24절기의 마음』이 도서출판 푸르메에서 출간되었다. 24절기마다 저자 김풍기의 어린 시절 추억과 에피소드로 편안하게 시작, 절기에 걸맞는 한시 명편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취해 읽는 맛을 돋웠다.

『삼라만상을 열치다』를 관통하는 중요한 흐름은 ‘절기’이다. 불과 얼마전까지야 절기는 따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생활 그 자체였지만, 도시 생활을 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절기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강원도 벽촌에서 태어나 ‘농사꾼의 피가 흐르는 촌놈’을 자처하는 저자는 늘 달력을 들추며 절기를 가늠하곤 한다. 시골에서 자란 저자에게 24절기란 아직도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 유전자 깊숙한 곳에는 농부들의 힘찬 숨소리가 원형질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절기를 잊고 사는 것은 우주에 뿌리박은 우리 몸을 잊은 거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비록 지구 곳곳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의 원형질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에 뿌리내리고 살던 삶의 기억을 찾음으로써 정신이 행복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록된 한시들은 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한시들이다. 저자가 고등학생 시절 매료되었다는 ‘도연명’과 ‘구양수’ ‘두보’에 이르는 중국 시인들로부터, ‘이달’ ‘유방선’ ‘이규보’ ‘정약용’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대문호까지 다양한 시인들의 절편 80여 편이 해설과 함께 수록되었다.

사실 한시란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 24절기와걸맞는 한시를 너덧 편씩만 뽑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넘나들며 계절과 절기가 주는 서정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한시들을 선별해 적재적소에 배열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그 학문적 깊이까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한시를 읽고 싶지만 왠지 모를 부담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에게는 맞춤격인 교양서이다. 한시를 자주 접해왔거나 한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시인의 여러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선집이 될 것이다.

굳이 한시가 아니더라도 계절이 바뀔 때쯤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 같은 한시집으로 이 책 『삼라만상을 열치다』를 자신있게 권한다.

한시의 대중화 선언
한시를 소개한 책이라고 해서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는 추측은 금물이다. 최근에 번역한 『옥루몽』(전5권)을 비롯,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고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저자 김풍기 교수의 이번 신간은 한시와 에세이의 접목이다.

즉, 인간미 넘치는 풍속화를 보듯 따뜻한 문체로 부드럽게 읽히는 에세이와 절제된 언어 예술인 한시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게 이 책의 묘미다.

한겨울 눈 덮인 독에서 잘 삭힌 홍시를 하나씩 정성스레 꺼내듯 풀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어귀에서 잘 다듬어진 한시를 만난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중심으로 저자가 서술한 이야기들 속에는 기억에서는 잊혀져가지만 여전히 건강한 숨을 토해내는 절기의 시간이 생생히 살아 있고, 한 편 한 편이 절편인 한시 속에는 빠르게 몰아치는 세파에 지친 현대인에게 전하는 푸근한 대자연이 펼쳐져 있다.

고향의 기억을 가지고 현대를 사는, 늘 안주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정신적 유랑자’인 현대인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따뜻한 책이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0
0

관련기사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좋아요순
  • 최신순
  • 반대순
데일리안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