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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데일리안] 입력 2006.10.2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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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토니 모리슨의 <러브>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 수상작가인 토니 모리슨. 그녀의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미국 내에서만 보통 1천만 부가 팔린다. 그녀는 문학성과 대중성은 함께 갈 수 없다는 독자들의 고정관념을 일거에 무너뜨린 대단히 힘센 작가다. 또한 그녀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미국 사반세기 최고의 NO.1 소설, 『빌러비드』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토록 위대한 작가가 한국에서만 유독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녀의 이름 앞에 붙어 다니는 ‘흑인 여성’이라는 수식어 때문이 아닐까? 흑인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흑인 사회와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여성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헤친 흑인 여성 소설가 등등. 이것이 우리의 편견을 더 단단하게 옭죄는 장애물이 아닐까?

어느 작가든 자신이 가장 깊이 천착하는 문제를 형상화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토니 모리슨은 흑인이고, 흑인 여성이고, 흑인 여성 작가다. 그녀에게는 흑인 사회가, 흑인 여성의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이므로 그녀의 작품은 흑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택한 하나의 창Window에 불과하다. 독자들은 작가가 내다보는 고유한 창을 통해 삶의 진실과 감동을 느낀다.

토니 모리슨이 말한다.
“흑인 여성의 문제는 결코 편협하거나 사사로운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토니 모리슨은 사랑을 작품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인생을 구원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녀가 그리는 사랑은 『빌러비드』의 지독한 사랑, 『재즈』의 강박적 사랑이다. 존재감마저 뒤흔드는 이 사랑에는 배신, 증오, 경멸, 자기혐오가 배어 있다. 이것은 흑인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노예시대부터 인권운동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역사가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위협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토니 모리슨의 사랑은 모성애, 동경, 우정 등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순수한 욕망을 위협하는 사회와 자기모순에 빠진 인간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2003년에 출간된 그녀의 최신작 『러브』도 사랑 이야기다. 『빌러비드』의 지독한 사랑, 『재즈』의 강박적인 사랑이 『러브』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 소설은 ‘열한 살에 인생이 바뀌어버린 두 여자의 삶과 그들의 삶을 불행으로 이끈 한 남자의 욕망’을 다룬다. 이 지극히 통속적인 이야기를 위대한 작가 토니 모리슨은 과연 어떻게 풀어갔을까?

비평가들은 한목소리로 ‘음탕한 이야기를 서정시로 완성한’ 모리슨에게 ‘경이롭다’는 찬사를 바쳤다. 『러브』는 가장 토니 모리슨다운 작품이며, 그녀야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극찬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친절하게도 토니 모리슨이 쓴 묵직한 감투가, 그녀를 둘러싼 견고한 틀이 버거워서 그녀의 소설들을 아직 읽지 못했다면 『러브』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사랑은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추운 겨울 소년원에서 출소한 주니어가 모나크가 1번지를 찾아온다. 한때 호텔을 운영하며 그 지역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던 코지의 집이다. 그는 죽었고, 그 저택에는 코지의 아내 히드와 손녀 크리스틴이 살고 있다.

두 여인은 20여 년간 각자의 공간을 차지하고 서로 죽기를 바라며 잔인한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히드가주니어를 고용하자 크리스틴은 불안에 떤다. 메뉴에 끼적거린 유언장밖에 남기지 않은 코지. 코지의 아내 히드는 주니어를 고용해 유언장을 조작하려 하고, 코지의 손녀 크리스틴은 ‘피까지 갈아치우려 한다’며 분노한다. 주니어는 그들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해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주인공도 여자다. 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빈민가 출신인 히드는 코지에게 선택된 순간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키려고 절친한 친구였던 크리스틴에게 등을 돌린다.

크리스틴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 코지와 그에게 복종하는 어머니 메이에 의해 집 밖으로 내몰린다. 그녀는 자신을 구원해줄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그런 노력은 그녀의 이력에 범죄기록만 추가할 뿐이다.

평생을 노예처럼 코지에게 봉사한 메이는 코지의 재혼으로 모든 것을 빼앗길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히드를 괴롭히고 딸인 크리스틴을 떠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이 여자들을 불행으로 이끈 가부장이자 탐욕스런 권력자는 과연 행복했을까? 코지의 아버지 다크는 경찰의 끄나풀 노릇으로 돈을 모았으나 그 돈을 너무나 숭배한 나머지 가족을 외면했다.

코지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자 호텔을 짓고, 다크가 저주하던 것들에 돈을 흥청망청 쓴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한 아내는 코지의 돈이 얼마나 피에 절었는지를 알고는 마음을 닫아버린다.

아내가 죽은 뒤 온갖 정성으로 보살피던 아들은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코지는 마지막으로 ‘더러운 유전자’를 갈아치우기 위해 히드를 선택한다. 다크의 회색 눈을 가진 손녀 크리스틴을 내치면서까지 선택한 히드는 그에게 아이를 낳아주지 않는다.

토니 모리슨은, 이들의 삶이 불행한 것은 뿌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다운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히드를 단돈 이백 달러에 팔아버린 아버지, 시아버지를 위해 크리스틴을 집에 들이지 않는 어머니. 이 과거의 부모는 90년대의 주니어까지 이어진다.

주니어는 자신을 떠나버린 아버지, 무관심한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발을 뭉개버린 삼촌을 피해 탈출하지만 그녀가 안착한 곳은 소년원이었다.

마지막에 이 불행한 여자들은 버려진 코지의 호텔에서 맞닥뜨린다. 히드는 유언장을 조작하기 위해, 크리스틴은 그것을 막기 위해, 주니어는 히드가 조작한 유언장을 다시 조작하기 위해. 누군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그 침묵 속에서 세 여자는 삶을 건 선택을 한다. 과거의 빛나던 사랑은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증오만이 빛을 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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