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T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당신에게 묻고 싶다

    [데일리안] 입력 2006.11.06 09:37
    수정

[신간소개] 오기와라 히로시의 <내일의 기억>

이야기는 한 광고 대행사의 경합 프레젠테이션을 대비한 기획회의 자리에서 시작된다업부 부장인 사에키는 올해 나이 쉰으로, 스스로만 아직도 제일선에서 팔팔하게 일할 나이라고 여긴다.

다른 사원들, 실제로 아직 팔팔하게 일할 나이의 젊은 사원들은 사에키 부장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구석기인이 던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쯤으로 생각한다. 아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루하다고 대놓고 표현하는 광고 대행사만의 프리한 회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장면 전개.

분명 이 소설은 독자를 울리는 최루성 스토리를 표방하지만, 작품 곳곳에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생생한 위트와 세련된 유머 또한 살아 있다. 이러한 점이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만의 매력이 아닐까.

주인공 사에키 부장에게는 25년을 함께한 부인 에미코와 몇 달 후 결혼식을 치를 예정인 딸 리에, 예비사위 와타나베, 그리고 리에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미래의 손주까지 총 5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있다.

특별한 구성원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이들과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 특별한 구성원은 오히려 몇 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개성 강한 회사 동료들과 노골적으로 카바레 접대를 바라는 능글맞은 거래처 과장 가와무라가 그 역할을 차지한다.

오랜만에 경합 프레젠테이션에서의 승리도 맛보고 나름 영업맨으로서 뿌듯한 일상을 보내던 사에키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나타난 불면증, 건망증 같은 불길한 증상들. 처음에는 그저 과로의 탓이겠거니 하고 넘겨보지만, 이제 그도 건강을 자신할 수만은 없는 나이다. 큰맘 먹고 대학병원을 방문한 그에게 자신보다 열 살은 어려보이는 담당의사는 초등학생에게나 해당할 듯한 IQ 테스트를 하는데…. 며칠 후의 검사 결과는 약년성 알츠하이머.


“아무렴, 대단한 그릇은 아니지만 나는 쉽게 깨지지 않아.
이대로 깨질 수는 없지!”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억에 내려진 사형선고.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는 불치의 병으로 환자에 따라 그 진행 속도에 차이가 있지만, 빠르면 4,5년 내에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병.

더구나 사에키의 아버지 또한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그 과정의 처참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있기에, 사에키는 더욱 좌절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다. 기억은 기약 없이 그의 몸을 찾아온다 해도, 내일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우선 출근시간을 앞당긴다. 누구보다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여, 하루 동안 진행할 업무 상황 체크와 미팅 약속, 거래처 관리 등의 중요한 사항들을 메모지에 기록한다.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속기록 실력과 주머니를 가득 채우는 메모지만으로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주요 거래처인 기가포스와의 미팅이 있던 오전, 그는 결국 시부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데…. 매일 만나던 동료의 얼굴과 이름을 잊고 매일 다니던 출근길과 거래처를 잊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은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한 느낌을 오기와라 히로시는 이 ‘시부야 미아 장면’을 통해, 보는 이로부터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배고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은 사에키만이 아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같은 모습으로 헤매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을까.

“싸구려 드라마 같은 말 하지 말아요.
난 절대 최종회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에키의 기억은 지루한 홈비디오처럼 리와인드되어 가고 그와는 반대로 다른 이들의 인생은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딸의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 너무도 예쁜 손녀의 탄생, 직장동료들과의 작별 인사 등 그도 마지막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결국 그의 병명을 알게 된 가족과 직장동료들이 차분히 수용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에키도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아니 오히려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예행연습일까.

아내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개호시설을 둘러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에키. 약년성 알츠하이머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오히려 알츠하이머인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것. 그런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모진 생각도 하지만, 그의 몸이 마음에게 말한다. 살아라, 라고.

젊은 시절의 우정과 사랑의 추억이 깃든 가마터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산길을 내려오던 사에키는, 결국 지금까지 힘겹게 잡아온 기억의 끈을 놓치고 만다.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아내를 맞이하게 되는 라스트신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2005년 야마모토 주고로상 수상, 서점대상 2위
2006년 와타나베 켄 주연 영화화, 일본 최고의 화제작 드디어 국내 출간!

인간의 ‘기억’ 속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당신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치의 병으로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내일의 기억>은 저자 오기와라 히로시의 2004년 작품으로, 발표 당시에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주목을 받았지만, 2005년 야마모토 주고로상 수상, 2005년 서점대상 2위라는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독자들로부터 더욱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영화배우 와타나베 켄이 영화사에 영화화 기획을 적극 추진, 직접 주연과 프로듀서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후 1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올해 5월 영화 <내일의 기억>이 개봉되는 동시에 다시 한 번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우며, 50만이 넘는 독자들 가슴에 잊지 못할 눈물을 남긴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원작과 영화가 동시에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 내 알츠하이머 환자 가족모임이 잇달아 생겨났고, 환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센터도 설립되었다. 한편 일본 후생노동성은 10년 만에 중년치매(64세 이하에 나타나는 치매)의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불러일으킴으로써, 소설의 소재가 사회현상으로까지 확대되는 폭발적인 반향을 얻었기에 이 작품이 갖는 의미가 더욱 빛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영화와 드라마 소재로 자주 등장하면서 약년성 알츠하이머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작은 소설 한 편이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한국 내 소외된 알츠하이머 환자와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조용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인생을 통째로 복습하는 한 남자, 그 7개월간의 기록
<내 머릿속의 지우개>보다 지독한 사랑, <투명인간 최장수>보다 뜨거운 눈물
2006년 남자를 울릴 문제적 소설

2004년 개봉되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일본 YTV의 <퓨어 소울 pure soul>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된 주제는 기억이 퇴행하는 병, 약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주인공과 연인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 <내일의 기억> 역시 약년성 알츠하이머를 다룬 작품이다.
일본의 중년판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평도 듣고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인생의 찬란한 시기에 있는 꽃다운 청춘들이 아니다. 올해 쉰 살의 광고 대행사 영업 부장 사에키가 그 주인공. 매력적인 꽃미남, 미녀들이 등장하는 청춘물은 아니지만, 그들 못지않은 열정과 사랑으로 빛나는 중년의 인생드라마는 누구에게나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또한 주인공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는 발병 과정을 일인칭시점으로 서술해 가는 스토리 전개는 마치 독자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듯한 감정이입을 통해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무엇보다도 논픽션 이상의 리얼리티가 문장 곳곳에 살아 있기에 독자들의 무른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작품의 라스트신은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의 한 문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장면인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의 시작인지, 마지막 한 문장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독자에게 그 판단을 미루고 싶다.

경묘한 필치, 세련된 유머, 인생의 애환이 감도는 문장
타고난 휴머니스트, 오기와라 히로시 장편소설 국내 첫 출간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주인공과 독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잊은 채 살아왔던 것들에 대한 향수와 공허함을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소설의 소재인 약년성 알츠하이머는 실제로 40대에 발병률이 가장 높다는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50대의 주인공 사에키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약년성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남자의 삶의 궤적과 발병, 그리고 그의 인생을 함께 이끌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이 책은 단순한 병의 투병기가 아닌,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보여주는 ‘인생드라마’라 할 수 있다. 병세의 진행 과정이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많은 것들이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
0
0

관련기사

전체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좋아요순
  • 최신순
  • 반대순
데일리안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