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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주년 앞두고 다시 조명받는 대한제국과 명성황후의 죽

    [데일리안] 입력 2006.11.2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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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한영우의 <명성황후, 제국을 일으키다>

‘을미사변-아관파천-대한제국 성립.’ 학교 국사 시간에 외워서 모르는 이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중요한 사실이 빠져 있다. 바로 고종의 황제 즉위와 대한제국 성립의 발단이 된 명성황후의 죽음과 그 파장이다.

충격적인 을미지변乙未之變을 당한 고종은 근대적 ‘민국民國’을 세우기 위해 백성들과 함께 여러 방면에서 노력했고, 미뤄온 황후의 국장도 자신의 주도로 준비했다. 이 일련의 흐름이 대한제국의 성립과 궤를 함께 한다. 결국 황후의 죽음이 대한제국을 일으킨 셈이다. 1919년 1월 고종의 붕어崩御가 3·1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대한제국(1897~1910)은 1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개화도 척사도 아닌,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지향했기에 국내 세력과 일본으로부터 동시에 견제받았던 고종. 그가 정치적 동반자 황후의 처참한 죽음을 딛고 ‘자주독립’의 결의를 보여준 대한제국의 성립 의의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고종은 정치적으로는 민본사상에서 진일보한 민국民國,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추진했고, 을사조약을 반대해 퇴위를 강요당했지만, 망국 이후에도 국권회복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구본신참舊本新參. 옛 제도를 바탕으로 새 것을 더함과 동도서기東道西器, 전통 사상을 지키되 서구 기술은 받아들임를 구현했던 대한제국은 이후 일제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고 지워졌다.

왕조에서 제국으로 국체가 바뀌는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복합적인 역사 인식이 필요하며, 명성황후의 죽음에 대한 재인식이 그 출발이다.
2년 2개월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궁중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21895년 10월 8일 경복궁에 난입한 일본 자객이 무참히 학살해 시신마저 불태운 명성황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고종은 다섯 차례나 장례를 늦추며 상복을 벗지 않았다. 온국민은 분노와 동시에 자각했고 이를 계기로 국가를 혁신하려는 의지가 뜨겁게 달아올라 대한제국 성립의 명분이 되었다.

아관파천 뒤, 고종은 김홍집 일파가 주도하던 왕비 재간택과 황후 폐위에 관한 조칙을 모두 무효로 돌리고 명성황후의 국장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는 1897년 10월 12일 고종의 황제 즉위와 그 시기를 같이 한다. 황후의 국장은 그해 11월 21일에 거행됐다.

무려 3,634쪽에 이르는 방대한 의궤儀軌와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명성황후의 국장 진행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 이 책은 2년 2개월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궁중 생활을 생생하게 담았다. 의궤를 통해 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 성립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힌 데 그 가치가 있다.

대한제국의 의궤나 반차도班次圖를 들여다보면 제국으로서의 존엄이 느껴진다. 이 의궤는 당대의 눈으로 대한제국을 바라보게 한다. 당대의 눈으로 본 대한제국은 자주국가로서의 기강을 확립하려던 나라였다. 나라와 백성의 이런 의지에는 명성황후의 비극적 죽음이 발단이 됐다. 저자는 이런 인식에서 명성황후의 장례 절차를 하나하나 따져나간다. 행적을 다시 짚어보고 황후의 죽음이 갖는 의미와 영향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1부에서는 명성황후의 죽음에서 대한제국 성립까지의 과정 및 국장의 이모저모를 다룬다. 특히 황후의 빈전殯殿을 경운궁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그린 반차도와 발인發靷 반차도에 나타난 인물의 복장, 들고 가는 각종 의장儀裝, 상여의 모습을 통해 국장의 규모와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고종의 황제 즉위식을 위해 옥보玉寶를 환구단?丘壇으로 가져가는 행렬의 반차도도 실려 있다.

2부에서는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국장 진행 과정), 『홍릉산릉도감의궤洪陵山陵都監儀軌』(산릉 조성 과정), 『빈전혼전도감의궤殯殿魂殿都監儀軌』(시신을 모신 빈전, 위패를 모신 혼전에 관한 보고서), 『홍릉석의중수도감의궤洪陵石儀重修都監儀軌』(홍릉의 석물石物 설치 보고서) 등 황후의 국장과 관련된 네 종류의 의궤를 소개한다.

대한제국에 대한 본격 논의의 시작
이 책은 명성황후의 죽음과 대한제국의 성립을 연관지은 최초의 연구로 2001년 출간되어 대한제국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고 문제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대한제국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인지, 애써 외면하려는 학계 분위기 탓인지 논의를 불러 일으킬 만큼 전혀 진전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1판이 나오고 5년이 지나서야, 간헐적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장정을 새롭게 하고 더욱 함축적인 제목을 지어 2판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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