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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되살아난 여풍당당 정희왕후

    [데일리안] 입력 2007.04.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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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박정희’의 작가, 황천우 신작 ‘여걸 정희왕후’

역사의 변방에 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팩션의 즐거움 선사

‘소년 박정희’와 ‘변명’의 작가 황천우가 신작 ‘여걸 정희왕후’를 들고 돌아왔다.

<데일리안>에 인기리에 연재중인 ‘여걸 정희왕후’(파란나비)는 ‘일체의 패거리 문학을 거부하겠다’는 작가의 고집처럼 여느 역사소설과는 차별화를 지향하고 있다.

인간냄새 나는 글을 쓰겠다던 그의 바람이 그대로 실린 ‘여걸 정희왕후’는 묵직하지만 버겁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빠른 전개와 강약의 엇박자가 숨쉬는 호흡으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입력이 ‘팩션’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한편, 현재와 과거를 오버랩해 성찰거리를 안겨주어 일본의 사회파추리소설처럼 재미와 교훈의 2마리를 토끼를 잡고 있다.

특히 수양대군의 아내인 파평 윤씨 정희왕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역사의 변방으로 소외됐던 여성을 정치권력의 중심에 뒀다는 점에서 거센 여풍(女風)이 부는 현실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역사적으로 왕권강화를 이뤘으나 ‘패륜’ ‘권력욕에 심취한 야망가’로 그려지는 수양대군의 이면과 공과를 다룬다.

그는 수양대군이 아닌 그의 조력자이자 반려였던 정희왕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녀의 인간적 고뇌와 냉혹할 정도의 통찰력, 과감한 결단을 그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작가는 수양대군이 ‘패륜’의 오명을 무릅쓰면서까지 권좌를 잡는 선택을 했는가를 주변사람들의 경멸과 냉소, 정희왕후가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를 세밀하게 쫓아가면서 보여준다.

‘여걸 정희왕후’가 평범한 역사소설로 읽혀지지 않는 이유에는 인물들의 선택과 고뇌, 갈등과 대립, 세력 간 결집 등이 12월 대선을 앞둔 현재의 정국과 비슷하기 때문.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외교통인 한확(인수대비의 아버지), 집현전의 중신 정인지, 시대의 책사 한명회과의 의도적 결혼을 성사시키고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그녀의 인맥관리는 현대의 정치가 못지않은 치밀함 그 자체이다.

여기에 수양대군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변함없는 신뢰를 보내며 계유정난을 성공적으로 이끈 정희왕후의 담대함, 자신의 어리석고 무능한 아들 예종과 조선의 미래 사이에서 갈등하다 조선의 미래를 택한 과감한 결단은 권력에 대한 야심을 넘어 정치가가 지녀야 할 책임의식과 소명을 새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의 리더들보다 능수능란한 정치가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더욱이 이념과 계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정계의 모습과는 달리 독실한 불교신자이면서도 정치에서는 철저히 종교를 배격하는 그녀의 냉정함은 ‘물러날 때와 나설 때’를 아는 ‘아름다운 뒷모습’의 영웅을 그리워하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님, 사람이 말입니다, 특히 권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오면.”
“나아갈 때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물러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물러날 때를 실기하면 나아가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요.”

‘조금만 손을 뻗으면 손이 바닥에 닿을 듯했다. 그 생각에 손을 물속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닿을 듯 닿을 듯이 보이는 모래 바닥이 전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 속에 있던 손을 천천히 물 밖으로 향했다.’


정치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난 정희왕후가 광릉 가는 길에 김수온과 나누었던 대화내용은 실질적인 왕권을 쥐고 흔들었으나 대의를 가지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통치력의 안정이 행복한 민생의 기반이라는 확고한 소신을 펼쳐낸 정희왕후의 지도자 면모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상의 일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정희왕후, 술수와 구상·계획의 차이를 보여준 정희왕후는 시작의 3월, 마음의 조급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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